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시장의 사랑 누가 말려?

‘입맛대로 용역보고서 → 지역 언론사 찬양 기사 → 예산 이미 집행됐으니 중지는 안 된다’ 지역정부가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170억원짜리 사업에 풀뿌리의 목소리는
등록 2015-05-01 12:42 수정 2020-05-02 19:28

과천시는 행정구역상 경기도지만 전화번호는 02를 쓰는 특이한 지역, 정부청사가 자리잡았던 인구 7만 명 정도의 전원도시다. 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진보적인 지역 분위기라 장담하기 어렵지만 젊은 세대가 많고 소각장이나 송전탑 반대운동과 생협·공동육아·대안학교 등 지역운동의 경험이 있어 마을정치의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과천시에서는 2001년 주민들의 서명으로 보육조례개정안이 시의회에 발의돼 통과됐고, 2004년에는 주민들이 직접 방과후 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시민 후보와 20대 민주노동당 후보가 당선됐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이들이 재선돼 시의회 의장단이 되었다. 그리고 2014년 지방선거 때는 이 두 후보가 각각 정의당과 녹색당의 시장 후보로 경합을 벌이기도 했다.
지방선거에서 녹색당 후보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시민이 직접 의원을 만들자는 ‘과천풀뿌리’의 후보 두 명이 모두 시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과천풀뿌리는 “자연생태적·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를 구현하기 위하여 시민이 스스로 지역 생활정치에 참여, 실천, 연대하면서 시민이 주인 되는 정치를 실현하고, 나아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신과 가치의 회복”하겠다고 선언하고 새로운 지역정치 모델을 만들고 있다.

‘환경파괴·예산낭비하는 승마체험장·캠핑장 반대 시민대책위’가 발행한 과천 승마장 캠핑장 설립에 반대하는 홍보물. 환경파괴·예산낭비하는 승마체험장·캠핑장 반대 시민대책위 제공

‘환경파괴·예산낭비하는 승마체험장·캠핑장 반대 시민대책위’가 발행한 과천 승마장 캠핑장 설립에 반대하는 홍보물. 환경파괴·예산낭비하는 승마체험장·캠핑장 반대 시민대책위 제공

‘새로운 지역정치 모델’ 과천의 요즘 숙제

보통은 선거를 준비하는 것이 단체의 역할이고 선거가 끝나면 다들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과천풀뿌리는 선거 이후에도 바쁘다. ‘풀뿌리열린광장’을 통해 시민들에게 과천시의 예산을 설명하고 마을정책도 연구한다. 최장기 투쟁사업장이던 코오롱 노동자를 돕기도 하고 다양한 모임도 개최한다. ‘선거 이후’가 마을정치에 더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과천풀뿌리의 숙제는 과천시의 말축제와 승마체험장, 캠핑장이다. 숙제는 새누리당 여성 전략공천을 받아 당선된 새누리당 과천시장이 냈다. 거리예술로 유명한 과천축제를 말이 퍼레이드 하는 말축제로 바꾸고, 시민들이 즐기던 야생화단지와 밤나무단지를 캠핑장과 승마체험장으로 바꾸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지만,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드는 대통령과는 다른 사람임을 증명하려는 걸까? 시장은 시의원과 시민들의 반대에도 시장 공약이라며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 필요하다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합리적으로 잘 따져보고 추진한다면 말이다. 과천시의 캠핑장 기본계획은 수의계약을 따낸 환경 컨설팅을 하는 업체가 작성했다. 지방정부의 일반계약은 보통 공개입찰을 통하는데 2천만원 이하의 사업인 경우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그래서 수의계약으로 만들어진 계획서나 용역보고서들은 지방정부의 입맛에 맞춰진다는 의혹을 받는다. 캠핑장 기본계획 계약은 2014년 12월30일에 체결돼 2015년 2월17일에 끝났다. 승마체험장 기본계획도 수의계약으로 체결돼 2014년 12월29일부터 2015년 2월16일까지 만들어졌다. 약 170억원의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의 계획이 두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시민들의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업체의 손에서 마련되었다. 과천축제를 말축제로 바꾸는 근거가 됐다는 설문조사 역시 ‘동물, 미술, 과학, 놀이, 전통, 말’ 중에서 대표 이미지를 뽑는 황당한 과정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말축제와 승마체험장, 캠핑장, 이런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과천시장이 2014년 11월30일에 한국마사회와 ‘말 산업과 연계한 상호 협력과 상생 발전을 위한 협약식’을 체결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과천시장의 말 사랑이 남다른 탓이다. 그렇지만 시장이 말을 사랑한다고 시민들도 말을 사랑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일단 삽만 뜨면 된다고 생각하는 공무원

시장이 이런 사업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지만 이렇게 대충 하라고 뽑은 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시장만이 아니라 시의원들도 공약을 내니 둘의 의견이 충돌하면 그 정당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더구나 그 돈은 시민의 돈이 아닌가. 만약 개인의 돈이라면 사업이 그렇게 허술하게 준비될까? 얼마나 어떻게 써야 할지 따져보고 다양한 의견도 들어보고 두들겨보며 돌다리를 건널 것이다.

그런데 지방정부의 사업에는 이런 과정이 없다. 다른 지역에서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업들이 마구 추진된다. 단체장이 어디선가 듣고 툭 던지면 형식적인 용역보고서가 나오고 지방정부와 연결된 지역 언론사들이 찬양 기사를 도배하면 사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중간에 문제점이 드러나도 이미 많은 예산이 들어갔으니 어쩔 수 없다며 버틸 수 있으니 공무원들은 일단 삽만 뜨면 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살던 용인시도 이런 과정으로 경전철을 만들었다가 큰 손해를 보았고 지금도 골치를 앓고 있다. 과천시의 미래는 다를까?

과천시가 주최한 사업설명회에는 많은 주민이 참석했고, 언론 보도만 보면 많은 시민이 사업에 기대감을 비쳤다고 한다. 이런 사업들을 좋아하는 시민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과천시 내에도 당연히 지방정부와 연결된 관변단체와 각종 이익집단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정부종합청사가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매상이 줄어든 자영업자들의 요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하는 시민도 많다. 말을 싫어하는 시민도 있고 자연을 그대로 두고픈 주민도 있다. 예산은 한정된 것이라 170억원을 쓰려면 다른 곳에 들어갈 예산을 줄여야 하는데, 보통 시민들의 복지가 건설사업에 희생된다. 소소하게 쓰면 시민의 편리함을 더해줄 수 있는 예산이 뭉텅이로 사라지니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을 수 없다.

물론 누구도 사랑을 말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장의 말 사랑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라면 협약을 맺은 한국마사회의 예산을 따오거나 경마장 시설을 활용하면 된다. 과천시의 과(果)자가 밤을 뜻한다고 하는데, 시장이라고 해서 과천을 마천(馬川)으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눈엔 자연이 공터로 보이겠지만 이미 많은 생명이 살고 있는 곳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생명의 터전을 함부로 파괴할 권리는 없다.

‘시 정책에 반하는 행사’ 통보

찬반이 갈리면 시간을 넉넉히 잡고 의견을 충분히 듣는 게 상식이다. 시민배심원제도나 공론조사, 시나리오 워크숍 등 갈등을 풀어가는 방법도 많다. 무리한 사업은 주민들의 갈등만 부른다.

이런 사업들을 반대하는 시민대책위원회가 과천시민 대토론회를 시청 대강당에서 개최하려 했더니 ‘시 정책에 반하는 행사’라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시장은 시청사도 자신의 것으로 아는가보다. 누가 가서 시 예산과 시청은 시장의 것이 아니라 시민의 것이라고 알려줘야 할 것 같다.

하승우 땡땡책협동조합 땡초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