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충북 옥천 읍내를 지나다 방문간호사들이 돌리는 전단지를 받았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경로당을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건강을 돌보던 방문간호사 8명은 지난해 12월31일자로 옥천보건서에서 계약 종료를 통보받았다. 전단지를 작성한 방문간호사는 2010년 11월부터 2014년 12월 말까지 4년 동안 지역의 소외 가정을 찾아다니고 관계를 맺어왔는데, 아무런 대책 없이 해고된 것이다.
기간제 노동자들의 처우는 옥천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충청북도 내의 다른 지방정부는 기간제 노동자들을 무기직으로 전환하거나 공무원으로 특채했다. 옥천군만 유독 총액인건비를 빌미로 보건소의 기간제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원래 총액인건비제도는 중앙정부가 총액인건비를 산정하면 지방정부가 그 액수 내에서 자율적으로 기구를 편성하고 운영하라는 자치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그 취지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왜 다른 지역에서 가능한 일이 옥천군에서는 불가능할까?
공교롭게도 그 다음날인 화요일엔 ‘공공성’을 주제로 강연하러 광주 광산구청을 찾았다. 광산구청의 민형배 구청장은 2011년 초에 일찌감치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겠다고 선언했던 사람이다. 2011년 3월16일, 광산구청에 소속된 비정규직 노동자 60명 중 34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고, 옥천처럼 방문간호를 하던 사람들은 상시근로계약을 체결해 고용 안정을 보장받았다. 이때 광산구청은 총액임금제나 총정원제를 피해가기 위해 구청과 공무원노조 양쪽이 합의한 공인노무사의 컨설팅을 받았고 대안을 마련했다.
두 지방정부의 재정 상황이 달라서일까? 행정자치부가 운영하는 ‘내고장알리미’(www.laiis.go.kr)에 따르면, 광산구의 2014년 재정자립도(지방세+세외수입)는 19.83%, 재정자주도(지방세+세외수입+지방교부세+재정보전금+조정교부금)는 30.28%, 예산 규모는 약 4080억원이다. 그리고 총액인건비 기준 인력 대비 정원은 2011년 기준 101.6%로 전국 자치구의 평균 100.42%보다 조금 높지만 총액인건비 대비 인건비 비율은 2011년 95.62%다. 반면 옥천군의 2014년 재정자립도는 9.43%로 광산구보다 낮지만 재정자주도는 59.51%로 훨씬 높고 예산 규모는 약 2628억원이다. 그리고 총액인건비 기준 인력 대비 정원은 2011년 기준 95.87%로 전국 군 단위 평균 99.45%보다 낮고, 총액인건비 대비 인건비 비율도 96.93%로 군 단위 평균 97.12%보다 낮다. 광산구의 인구가 약 40만 명이고 옥천군의 인구가 약 5만 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옥천군의 재정 여건이 광산구보다 좋지 않다고 판단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런데도 왜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단체장의 의지가 있다면 지방정부 차원에서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동안 공공성과 관련해 여러 자리에서 강연한 적이 있지만 지방정부로부터 직접 강연 요청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광산구청은 민선 6기의 목표인 ‘더불어 따뜻한 자치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2015년의 목표를 ‘공공성 확장’으로 잡았다고 한다. 구청장은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공공성이 사라진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의 자치 역량을 강화해 마을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 공공성에 역행하는 낡은 관행과 제도, 불합리한 관계를 고치겠다고 올해 초에 밝혔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광역-기초단체 인사 교류 관행 시정, 돌봄 분야 시설 국공립 전환 추진, 아파트 경비노동자 같은 준공공부문 생활임금제 정착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 한다. 이렇게 보면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도 공공성의 중요한 보루가 될 수 있다.
성과 냈어도 예산심의 거치며 예산 반토막주민들이 이런 결정을 지지하고 정부의 지원만 바라지 않고 자기들 몫도 내놓으며(애초에 정부 예산도 주민의 세금 아닌가) 공유의 몫을 늘린다면 재정 상황이 열악한 지방정부도 공공성의 핵심 축이 될 수 있다. 보통 공공성은 정부가 보장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공공성은 정부와 시민이 함께 만드는 것이다. 아니, 원래 ‘공공성’(公共性)이란 단어의 취지에도 그것이 맞는다. 예전에는 ‘국가·시장·시민사회’,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했지만 거버넌스, 사회적 경제, 주민 자치 같은 개념의 등장은 이런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많은 지방정부들도 주민 자치 역량을 강화하는 데 큰 힘을 쏟고 있다. 지방정부와 주민이 진정한 파트너가 된다면, 정부의 힘만으로 가능하지 않은 공공성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광산구에도 구청이 운영하는 4곳의 주민 참여 플랫폼이 있다고 한다. 말이 좀 낯설지만 주민들이 모여 논의하고 활동하도록 지원하는 공론장으로 보면 될 듯하다. 그중에서 ‘아름다운 송정씨’라는 구도심의 마을카페 겸 회의 공간과 신도심에 위치한 공익활동지원센터에 들렀는데 공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특히 공익활동지원센터는 지방정부에서 최근 유행하는 마을만들기나 사회적 경제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자료를 보니 6명의 적은 인원이 2014년에만 138회의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313회의 마을공동체 및 사회적 경제 컨설팅을 했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열심히 활동한 곳의 2015년 운영비·사업비가 구의회 예산심의를 거치며 반토막 났다는 점이다. 광산구의회 홈페이지에서 회의록을 검색해보니(한국 지방의회의 ‘수준’이 궁금하신 분들은 지방의회 홈페이지에 가면 회의록이 공개되니 그 수준을 감상하시라. 다만, 혈압이 오르는 걸 조심하시길), 구의원들은 자원봉사센터와 공익활동지원센터를 비교하며 활동 경력과 참여 회원 수를 문제 삼아 운영비 5천만원, 사업비 7천만원을 각각 1천만원, 2천만원으로 삭감해서 자원봉사센터와 동일하게 만들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몇 개의 센터가 나눠서 대대적인 지원을 받으며 하는 일을 홀로 담당하는 곳인데, 왜 그랬을까?
지방의회가 자치단체에 비해 무기력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그곳은 지역의 주요한 권력 공간이기도 하다.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고 난 뒤에 지역의 토호들이 재빨리 장악한 곳도 바로 지방의회다. 이들은 지역사회에서 자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새로운 세력이 만들어지는 걸 두려워한다. 주민의 자치 역량이 강화되고 공공성이 확대될수록 자신들의 기득권이 무너지리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두려워하는 바로 그 지점을 공략해야 한다. 그래야 마을이 대안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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