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가정에서 이사할 때 맨 마지막에 만나고, 이사한 집에 맨 먼저 들이는 사람이 통신노동자다. 거의 모든 가구에 인터넷이 설치돼 있고 케이블방송 가입자 수만 전국 1500만 명에 이르니 통신노동자가 다녀가야 비로소 이사도 마무리되는 셈이다.
“평가지표로 인한 스트레스로 죽을 것 같다. 영업 압박만 없어도 좀 낫겠다. 수수료를 인상해줬으면 좋겠다. 4대보험이 됐으면 좋겠다. 쉬고 싶다.” 하루 평균 9시간, 주 52시간 이상 근무, 휴일 월 2~3일, 시간외수당·4대보험·퇴직금도 없이 일해야 월 200만원 정도를 손에 쥐는, 우리가 이사할 때 마주하는 통신노동자들의 절박한 호소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최근 2년 사이 티브로드, 씨앤앰,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통신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싸우고 있다. 이 투쟁에 꾸준히 연대한 까닭에 평상시에도 소통하는 조합원이 생겼다. 며칠 전, 2번에 걸친 파업투쟁을 마치고 현장에 복귀한 티브로드 조합원에게서 회사의 젊은 팀장한테 50대 노조 간부가 폭행당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연락을 받고 서울 강북센터 앞에서 열린 규탄집회에 다녀왔다. 조합원 수십 명이 멀리 인천과 경기도 안산·안양 등에서 퇴근하고 저녁밥도 거른 채 달려왔다. 발언 요청을 받고 마이크를 잡았다.
“요샌 동물을 때려도 처벌하는 세상입니다. 하물며 회사 팀장이 조합원을 폭행했는데도 센터장은 ‘흔한 일’이라며 폭력 팀장을 비호합니다. 우린 자본에 하루 중 몇 시간 노동력을 맡겼을 뿐 우리의 인격, 존엄, 영혼은 맡기지 않았습니다. 자본과의 싸움은 우리 노동자가 짐승, 기계, 노예가 아니라 사람임을 선언하는 숭고한 투쟁입니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처럼 자본의 핍박과 동료의 아픔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득달같이 달려오는 동료들의 단결만이 승리를 보장해줍니다.”
우리는 왜 자본과의 싸움에서 자꾸 지는 것일까? 정답이 ‘단결’이라는 걸 뻔히 알지만 현실에선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이다. 위기에 처한 들소 한 마리가 살기 위해 덤벼보지만 금세 상황이 역전돼 사자의 밥이 되고 만다. 자신도 언제 생사의 위기에 처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함께 살기 위해 발을 구르는 들소가 많아져야만, 풀숲으로 도망치던 들소 가운데 엉덩이를 돌리는 들소가 많아져야만 다 같이 살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정말 어렵다. 나서는 사람만 깨지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고 있고, 아무리 손 내밀어도 그 손을 잡아줄 이가 없거나 많지 않으리라는 두려움이 오감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쉽고 가벼워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라설령 일순간은 지더라도 단결의 경험이 있으면 다시 싸움에 나설 수 있지만 고립됐던 경험이 있는 노동자는 주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순간의 승리보다 지더라도 단결이 중요하다. 이유유외(易攸畏), ‘쉽고 가벼워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라’는 뜻이겠으나 ‘기본에 충실하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노동조합운동의 기본이 바로 ‘단결’이다. 규탄집회에 다녀온 며칠 뒤 폭력 팀장이 퇴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파업에서 승리하고 각자의 일터로 복귀했음에도 자본은 노조 결성 이전 상황으로 되돌리려고 사업장별로 도발을 계속할 것이다. 비록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파업 때가 아니더라도 사업장을 뛰어넘는 일상의 단결이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더 큰 싸움을 기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라는 걸 신생 통신노동자 조합원들이 깨우쳐가고 있다. “단결만이 살길이오, 노동자가 살길이오” 그날 함께 불렀던 노래에 답이 있다.
이은탁 데모당 당수*이은탁의 ‘노 땡큐!’를 이번호로 마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독자와 수고해주신 필자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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