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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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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나도 한때는 ‘왕재수’ 였을까

등록 2001-11-14 00:00 수정 2020-05-02 04:22

서울 동대문 밀리오레에서 ‘밤타임 풀’로 옷을 팔며 손님들을 관찰하다

벌써 네벌째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손님은 처음엔 상의와 치마, 바지로 이뤄진 짙은 회색 ‘쓰리피스’를 고르더니, 옅은 회색, 검은색, 스프라이프 무늬까지 그것도 사이즈를 바꿔가며 입어본다. 나는 입으로는 계속 “언니, 색깔이 잘 받네. 제대로 화장하면 정말 정장이 받는 스타일이야” 등등을 나불대지만, 속으로는 연신 만화책에 나오는 말풍선을 그린다. ‘살 거야, 말 거야. 안 살 거면 빨리 가.’ ‘66 입어도 끼는데 왜 자꾸 55를 찾니?’ 입을 만큼 입어보았는지, “한번 둘러보고 올게요”라는 말을 남긴 채 미련없이 사라진다. 남은 건 산더미처럼 쌓인 흐트러진 옷뭉치.

진상? 진짜 왕재수!

미처 정리할 새도 없이 이번에는 10대 후반쯤 돼보이는 앳된 손님들이 들이닥친다. 한명이 마네킹에 입혀진 연한 체크무늬 모직코트를 고르더니, 뒤가 터져서 야하다, 생각보다 비싸다, 뚱뚱해 보인다…, 트집잡기 시작이다. 몇집 건너에서 친구가 부르자 인사도 없이 옷을 팽개치고 떠난다. 마네킹에 입힌 옷들은 가장 작은 55사이즈를 그것도 뒤를 집게로 집어 걸어놓은 것이다. 마네킹보다 마른 사람이 없는 이상, 당연이 ‘기대하는 그림’보다 뚱뚱할 수밖에.

나는 슬슬 성질이 나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판매원 최정림(30)씨가 한마디 거든다. “진상이야, 진상.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몇번씩 와서 계속 입어보기만 하거나 가격을 터무니없이 깎고선 그냥 가는 애들도 많아.” 진상은 ‘진짜 왕재수’란 뜻이다. 순간, 평소의 ‘내 행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며 이마 위로 땀이 찍 났다.

앞뒤로 설렁설렁 일한 날들을 빼면, 내가 동대문 밀리오레에서 저녁 8시부터 새벽 4시40분까지 ‘밤타임 풀’로 옷을 판 날은 11월7일 밤이었다. 밀리오레 의류판매원들이 ‘마의 수요일’로 부르는 날이다. 오는 사람은 많아도 사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주변 판매원들 말로는 “주말도 아니고, 주초에 필요한 걸 찾는 것도 아니고 밤새 시간 때우러 돌아다니는 이들이 많아서”라고 한다. 이날은 수능시험 끝내고 몰려온 학생들까지 가세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하지만 실적은 전날의 3분의 2에도 못 미친다.

밀리오레에서 옷을 파는 일은, 원래 박순빈 전 경제팀장의 아이디어였다. 사내 인사가 있어 박순빈 선배는 <한겨레21>을 떠났지만, 일은 남았다. 박 선배가 옷을, 그것도 여자옷을 팔겠다고 나섰을 때 난 내놓고 비웃었다. 대체 고뇌하는 지식인 혹은 담임선생님 같은 그를 보고 누가 옷을 사겠는가. 소비의 현장에서 한국경제의 미래를 보겠다는 의도는 존중하나 박 선배는 여성옷 사이즈도 제대로 모른다. “선배, 차라리 제가 할게요.” 그러나 자칭타칭 ‘쌈마이’과에 속하는 나 역시 첫날은 버벅댈 수밖에 없었다. 옷먼지를 뒤집어쓰는 만큼 후회가 밀려왔다. ‘그냥 박 선배 하게 둘걸. 그렇다면 한국경제의 미래라도 읽을 수 있었을 텐데.’

“척 보면 살지 안 살지 안다”

내가 일한 곳은 밀리오레 1층 39호. 여성 기본정장을 취급하는 매장이었다. 처음에는 “옷 보세요”, “한번 입어보세요” 등의 기본단어 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사람들은 옷을 보지 판매원을 보는 게 아니니, 아무리 친절하고 사려깊은 표정을 지어도 봐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 39호의 판매원 정림씨를 흉내낼 수밖에.

그에겐 모두가 언니였다. “언니야, 보고 가. 잘해줄게.” 반말이면 됐다. 벌써 2년째 밀리오레에서 일하는 정림씨는 “척 보면 살지 안 살지 안다”고 했다. 살 사람이면 가격도 ‘좋게’ 부르고, 안 살 사람이면 ‘쎄게’ 부른다. ‘존심’이라도 지켜야 하니까. 밀리오레에서는 이렇듯 모든 단어가 줄임말이다. 화장실은 장실, 비상구는 상구, 신상품은 신상, 바탕색은 탕색, 색깔은 깔…. 처음에는 정림씨가 “이거 신상이야” 할 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날 새로 들어온 상품이라는 뜻이다.

이날 저녁 8시 되기 5분 전 출근길. 밀리오레 앞에서는 고3 수험생을 위한 이벤트가 한창이었다. 사회자가 한 청소년을 불러다 마이크를 들이댄다. 그는 시키는 대로 크게 외친다. “밀리오레 사랑해요!” 밀리오레(Migliore)는 이탈리아어로 ‘더 좋은’이란 뜻. 10대가 밀리오레를 비롯한 동대문 쇼핑몰로 몰리는 이유는 볼거리가 많기도 하지만, 밤새 문을 여니 돈없고 갈 곳없는 처지에서는 시간을 보내기에 적당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은 더 좋아졌을까? 화려한 외양의 밀리오레는 아이들에게 비상구다. 이곳에서는 꿈과 희망으로 포장한 소비의 욕망을 서슴없이 맛볼 수 있다. 남자아이들은 짝퉁(모조품) 손가방에 짝퉁 코트를 입고, 여자아이들은 속눈썹을 붙이고 머리를 부풀리고 숙녀복을 빼입고 다닌다. 그러나 삼삼오오 떼지어 몰려 있는 아이들 중에는 당장 하룻밤 잠자리가 어려운 이들이 많다. 그들은 속절없이 밀리오레를 쏘다니다 첫차를 타고 빈 친구집을 찾아가거나, 그냥 그대로 인생의 길을 잃기도 한다.

“쿵….” 자정이 조금 지났을까. 손님들이 뜸한 사이 화장실에 가려고 매대를 넘다 옷에 발이 걸려 나는 복도로 쓰러지듯 떨어졌다. 제풀에 놀라 주위를 살펴봤으나 다행히 지나가던 손님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매장 앞 매대는 한벌이라도 더 쌓아두려고 사람 드나들 통로없이 막아놓았다.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매대를 넘어다녀야 한다. 신상품을 많이 들여온 날엔 매대를 넘는 게 담을 넘는 형국이다.

자정이 가까워지면 대중교통 이용객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우리는 8층 식당가에 밥을 주문했다. 대략 30분 전에는 주문해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 비상구로 나갔다. 담배연기로 꽉 찬 층계는 판매원와 배달원들의 유일한 휴식공간이다. 배달중인 음식들이 쟁반째 놓여 있었다. 시간당 2500원에서 3천원씩 받는 어린 배달원들이 쭈그려 앉아 담배 피우는 동안 음식은 속절없이 식어갔다. 매장을 비울 수 없으므로 판매원들은 배달음식을 매장 안쪽에서 쭈그리고 앉아 먹어야 한다. 이때 ‘진상떠는’ 손님이 오면 정말 밥맛 확 달아난다. 이날도 그랬다.

화끈한 ‘나가요’ 언니들

김치볶음밥과 김밥을 먹고 있는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두명이 회색 정장을 가리켰다. 맞는 사이즈를 꺼내 입는 걸 도와주고 거울을 들어 비춰줬더니, 옷은 보지 않고 자기 얼굴만 한참 뜯어보았다. 그러더니 다른 옷을 또 꺼내달라고 해놓고는 “아이, 별로다”라는 말만 남긴 채 가버렸다. 옷을 입어보는 것은 당연하다. 안 사도 된다. 다만 이것저것 트집잡을 때, 터무니없이 가격을 깎을 때, 그리고 인사도 없이 떠날 때 정말 섭섭하다. 판매원들도 사람인 이상, 정중하게 굴거나 호주머니돈과 맞지 않아 망설이는 이들에게는 팍팍 깎아준다. 하지만 밥 먹는 도중에 와서 한참 옷시중 들게 해놓고 그냥 떠나는 손님은 야속하다. 그러는 사이 밥에는 먼지가 다 앉아버린다.

20대 중반의 한 ‘언니’에게 ‘쓰리피스’ 한벌을 9만원에 팔았다! 매장을 몇번씩 들여다보고 가던 그는 옷을 고르는 데 시간은 걸렸지만 현금으로 계산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5천원 깎아줬다. 대략 마진을 50%쯤은 남기는 걸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도매시장에서 4만원에 들어온 옷을 6만∼7만원선에 파는 정도다.

계속 서서 일을 하니 금방 배가 출출해졌다. 관리단에서 밀리오레 건물 안에 있는 음식만 사먹도록 통제하므로 판매원들은 군것질도 맘껏 하지 못한다(경비용역업체를 거느린 시설관리단은 사사건건 트집이다. 사진 플래시가 터지자 무전기를 든 경비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19층 운영위원회로 올라가 사진취재를 허락받았다. 두어 시간 남짓한 촬영 동안 경비 한명이 사진기자를 내내 졸졸 따라다녔다). 경비들에게 얼굴이 안 알려진 내가 돈을 추렴해 밖으로 나가 귤과 쥐포, 군밤 등을 사왔다.

77사이즈 이상을 취급하는 매장은 그리 많지 않다. 큰 사이즈는 맞춰야 한다. 도무지 77사이즈도 안 맞는 한 손님은 내가 88사이즈도 맞춰준다고 말하자, “88을 입느니 안 입고 만다”고 돌아선다. 그럴 경우 꼭 덧붙여야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옷이 원래 한 사이즈씩 작게 나와요.” 그러자 가던 그가 다시 돌아섰다. 정림씨는 남녀가 함께 와서 “난 55면 돼”라며 옷을 사간 뒤 다음날 꼭 바꾸러 오는 이들도 있다고 귀띔한다. 사이즈 강요사회의 분위기는 판매원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밤근무자들은 건강관리와 몸매관리를 위해 근무가 끝나면 상당수는 헬스장에 들렀다 퇴근한다. 정림씨도 그렇다. 다만 “하룻밤만 지나도 목이 칼칼하도록 먼지를 마시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차례 정도는 돼지고기 안주에 술을 마신다”고 한다.

새벽 3시 전후. 멋쟁이들이 몰려왔다. 영업 끝내고 온 이른바 ‘나가요’ 언니들. 이들의 특성은 절대 진상떨지 않는다는 것. 손가락으로 옷을 딱딱 가리키고 꺼내주면 겉옷만 걸쳐본 뒤 수표로 계산하고 떠난다. 화끈하다. 대신 바지 길이가 안 맡거나 수선이 필요하면 “다음에 올게요” 하고 사정없이 떠난다. 이들은 당장 입을 옷을 찾기 때문에 수선비를 빼준다 등의 거래가 먹히지 않는다.

뉴욕테러 이후 판매고 절반으로 뚝

비슷한 또래의 손님과 판매원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누구는 하룻저녁에 망설임 없이 수표를 쓰고 누구는 월요일만 뺀 한달 내내 다리가 붓도록 밤근무를 해도 65만원부터 받으니. 판매원들은 경력에 따라 임금이 다르다. 초임은 대체로 65만∼70만원, 베테랑급은 130만원선. 매출에 따라 인센티브도 있고 낮근무와 밤근무 월급도 차이가 난다. 연령도 경력도 다양한 판매원들은 저마다 꿈이 있다. 맞은편 매장인 33호에서 일하는 박고영(21)씨는 고향인 전북 장수를 떠나 미용기술을 배우다 석달 전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꿈 역시 언젠가는 자기 매장을 갖는 것. 일하기에 따라 매장별 매출이 서너배씩 차이가 나니, 두팔 걷어붙이고 나설 만하다. 내가 일한 39호도 괜찮은 날이면 하룻밤새 100만원 이상 매상을 올린다.

밀리오레 옷매장은 모두 950여개, 식당가와 잡화점까지 합하면 1700여개가 8층에 걸쳐 포진해 있다. ‘벽다이’, ‘코너다이’, ‘박스다이’로 매장을 분류하는데 매매가와 권리금도 천차만별이다. 일단 사람들이 크게 동선을 그리기 때문에 벽에 붙은 매장쪽이 장사가 잘되고 코너매장도 괜찮다. 박스 형태의 중간 통로에 있는 매장은 차별성 있는 물건을 가져다놓아야 시선을 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밀리오레는 ‘화수분’으로 불렸으나, 점주들 중 30%는 돈을 벌고 30%는 본전이고 30%는 손해보고 떠난다고 한다. 뉴욕테러사건 이후 판매고는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그래도 빈 매장은 없다. 매장 매매가는 기본 2억5천만원에서 출발해 매대를 두개 붙인 매장이나 엘리베이터 주변의 ‘코너다이’ 등은 4억원도 호가한다. 만약 세를 얻어 장사를 하려면 권리금과 피(웃돈), 물건 채우는 비용까지 대략 5천만원 정도를 들인다고 한다. 세입주일 경우 한달 월세는 250만원선이다.

매점에서 600원짜리 커피를 주문해 마시며 잠을 쫓는 동안, 최악의 진상들이 들이닥쳤다. 남자 둘, 여자 둘로 짝지워진 그들은 다짜고짜 “언니, 이거 좀 버려주세요” 하고 빈 커피캔 두개를 들이밀었다. 이 정도로 박력있으면 옷을 사려나보다 싶어 나는 냉큼 받아 비닐봉투에 넣었다(매장 안에는 휴지통이 없다). 한 여성이 정장을 골라 입는 족족 파트너로 보이는 남자가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애도 낳은 게 어딜 싸돌아다니려고 그런 옷을 찾냐.” 내가 듣거나 말거나 상관없는 듯했다. ‘이런 싸가지 없는…’이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지만 이번에도 말풍선으로 그쳤다. 나는 옷맵시를 칭찬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두벌쯤 입어봤을까, 남자가 계속 잔소리를 하자 여자는 미련을 가득 담은 눈으로 떠난다. 나는 남자의 뒤통수를 째려봤다. 갑자기 남자가 휙 돌아서더니 내게 다가왔다. 순간 움찔했는데, 그의 용건은 휴지를 버려달라는 것이었다. ‘정말 골고루 하는군.’

새벽 5시, 물건을 떼러 가다

새벽 4시가 가까워지자 손길이 바빠졌다. 이날 매출은 6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옷을 파는 틈틈이 매출전표와 시세(잔돈)를 맞추고, 제품별 재고량과 사이즈를 기록해놓아야 한다. 돈계산하는 정림씨를 대신해 걸레를 빨러 갔다. 화장실 밖까지 줄지어 있다. 밀리오레에서 손님이 가장 적은 화장실은 지하 1층 화장실. 거의 항상 휴지도 비치돼 있다.

디제이가 빠른 노래를 틀어주기 시작했다. 폐점시간이 다가왔다. 건물 중앙의 에스컬레이터가 내려오는 쪽만 작동했다. 4시40분, 마침내 그룹 터보 버전인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음악이 경쾌하게 들린다. 시계를 바라보며 초읽기를 하던 우리는 매장에 천을 씌운 뒤 쏜살같이 건물을 빠져나왔다. 동대문 일대는 거대한 파도처럼 사람들이 흘러넘쳤다. 자가용과 택시들이 뒤엉켜 경적 소리를 냈다. 이때부터 낮근무가 시작되는 오전 10시까지 밀리오레는 출입이 통제된다.

마지막 날인 11월9일 금요일 새벽 5시. 39호 주인 서승윤씨와 함께 인근 청평화시장으로 물건을 떼러 갔다. 매장을 3개 갖고 있는 그는 자정 무렵과 마감 때 매장을 한 바퀴씩 돈다. 주문서를 넘기면 도매상이 매일 오전 주문품을 택배로 배달해주고, 양이 적은 날에는 주인이 손수 들고 온다. 청평화시장은 밀리오레가 문을 닫은 직후인 5시부터 문을 연다. 지게꾼들의 느린 움직임에 왁자한 목소리가 뒤섞였다. 대목날이었으므로 어느 가게든 주문량이 많았다.

이른 아침 퇴근길. 지하철역에는 몸에 잘 맞지 않는 정장에 하이힐을 신은 10대 몇몇이 밤새 돌아다니느라 지쳤는지 서로 기댄 채 졸고 있었다. 물건을 한 아름씩 뗀 소매상들도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지하철이 도착했다. 출근하는 시민들 사이로 몸을 섞었다. 긴 밤이었다.

글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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