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C기업 영업전략3팀 대리, 미스터 K는 기지개를 억지로 짜내며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22세기를 앞두고 폭등해버린 각종 세금 폭탄(부가가치세·공과금)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5년을 이어온 독신 생활의 거친 흔적들만이 그를 반기지만, 그래도 오늘은 감회가 새롭다. 오늘은 그가 몇 달을 준비해온 영업전략3팀 기획안을 직접 발표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기획안만 통과하고 과장으로 승진만 한다면, 그동안의 모진 고통조차 스스로 용서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아침부터 운수가 얄궂다. 5년 사이 40%나 올라버린 ‘수도세’를 아낀답시고 받아둔 빗물에 세수하려고 하니, 어제까지 잠잠하던 눈 다래끼가 심술이다. 각종 ‘가스세’ ‘전기세’ 폭탄을 피해볼 겸, 생트집 ‘비만세’도 피해볼 겸 으레 거르던 아침인데 오늘따라 뱃속에선 트위스트 삼매경. 최근 세수 부족을 메운다며 시에서 도로에 부과한 ‘보행세’가 아까워, 한강 산책로를 따라서 출근하다가 초행길에 넘어져 무릎을 다친 것도, 모두 컨디션 난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고난 역시, 오늘 기획안만 통과된다면 한낱 추억이 되리라!
오늘 기획안만 통과하면점심시간을 이용해 무릎 상처에 바를 약이라도 사려고 했으나, 회사 동기 한 놈이 자신을 잡고 하소연을 해대는 통에 실패했다. ‘싱글세’ 피하려고 위장결혼을 했더니, 애가 없다며 ‘별거세’를 매기길래, 홧김에 아이를 셋이나 낳았더니 이번엔 ‘교육세’ 폭탄이 돌아온다며, 너는 결혼하지 말라며, 너는 성욕을 멀리하라며 눈물까지 흘리던 동기 녀석이 짠하기는 했으나, 미스터 K는 동기 녀석이 점심으로 대접한 된장찌개에서 건져낸 된장을 무릎 상처에 바를 수 있어서 오히려 기쁘다. 요즘 의원들 사이에서 ‘창조세금’ 법안 발의하는 게 아무리 유행이라지만, 그래서 ‘종교인 과세’ ‘무속인 과세’까지 한다지만, 빨간약 대신 된장이라는 민간요법에까지 과세할 순 없으리라. 된장아, 오늘 기획안 발표 때까지만 날 도와다오!
오후 4시. 드디어 발표 시간. 미스터 K는 자랑스럽게 기획안을 발표한다. “흥분시 증가하는 심박수에 매겨지는 ‘산소세’가 무서워 섹스를 멀리하는 가엾은 연인들을 위해, 위기의 순간에 자동적으로 염불이 흘러나와 성욕을 억제하는 ‘부처님 콘돔’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간부들의 반응은 차갑다. “부처님 얼굴 모양으로 디자인해야 할 텐데, 그러려면 위인 초상에 매겨지는 ‘위인세’를 피할 수 없다”는 반론. 이때다 하고 비집고 들어온 건, 미스터 K의 경쟁자 L 대리였다. “차라리 섹스할 때만 쓸 수 있는 일회용 산소통을 시판해보는 건 어떨까요?!” 간부들의 환호 속에서, 미스터 K가 ‘그것도 원래 내 기획이었다…’라고 말하지 못했던 것은, 갑자기 부어오르는 눈 다래끼 때문이었다.
기획안을 빼앗기고, 승진마저 좌절된 미스터 K, 그동안 ‘죄악세’도 아낀답시고 멀리해온 술·담배를 퍼먹다가 자정을 넘긴다. 오랜만에 마신 술이 더욱 쓰다. 그러나 ‘유류세’ 폭탄을 피해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불법개조 오토바이에 그가 치인 것은, 그가 무릎에 발라놓았던 된장에 스스로 미끄러졌기 때문이다.
사망세 피하려 인공심장 주문했더니새벽 2시. 미스터 K가 응급실로 옮겨졌을 때, 그는 이미 간헐적인 심정지 때문에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그러나 의사가 ‘사망세’ 이야기를 꺼냈을 때, 이미 생을 포기하고 있던 그의 뇌리를 스쳐지나간 것은, 자신이 죽고 난 뒤에 더 큰 납세 부담을 져야 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가족의 얼굴이었다. 미스터 K는 마지막 넋줄을 잡고, 인공심장을 주문한다. ‘사망세’보다는 ‘부활세’가 더 싸기 때문이다(다행히 의료 민영화 덕택에 면세 혜택 쿠폰 10장을 공짜로 얻었다).
그러나 그렇게 부활한 미스터 K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생명세’. 죽다 살았으니 신생아들도 지불하는 ‘생명세’를 내라는 것이다. 게다가 ‘생명세’는 천부적 의무이니, 납세 행위에 대한 세금인 ‘세금세’의 이중과세 면책이 없다는 통보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다행히 ‘생명세’ 폭탄을 20년 할부로 끊어준 이 나라에 감사하며, 미스터 K는 오늘도 출근한다. 그리고 그는 깨닫는다. 나는 나에게 부과되는 모든 세금을 갚기 위해서 살아나가는 존재라고. 나의 존재 의미는 바로 그 ‘존재세’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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