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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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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소풍

등록 2014-10-30 15:59 수정 2020-05-03 04:27

지난 10월19일 데모당원들이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으로 가을소풍을 다녀왔다. 을 부른 뒤 열사들에게 하늘로 수학여행 떠난 세월호 학생들을 잘 돌봐달라는 뜻을 담아 준비해간 노란리본 120여 개를 열사들 묘 앞에 하나씩 꽂았다. 서로 먼저 꽂으려고 이리저리 뛰고, 개인적으로 관심이 더 가는 열사에게 자기가 하겠다고 다투고(?), 빠뜨린 곳을 찾으면 보물을 찾은 듯 소리를 질렀다. 엄마와 아들이 리본을 함께 꽂으며 열사의 삶이 요약된 비문을 읽는 모습은 가을 하늘만큼이나 눈부셨다.

최초의 사설 공원묘지, 열사들의 묘지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마석 모란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공원묘지다. 1970년 전태일 열사가 그곳에 잠들었고, 1986년 박영진 열사를 안장하기 위해 한 달여에 걸친 투쟁으로 30여 명이 구속되기도 한 곳이다. 최근에 성유보 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이 묻혔다. 현재 민족민주열사묘역엔 민주주의, 노동해방, 생존권 사수, 통일을 위해 투쟁하다 돌아가신 노동자·농민·빈민·장애인·학생 등 120여 명이 모셔져 있다.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고 외치며 산화한 전태일, 자식(전태일) 곁으로 가는 순간까지 1천만 노동자의 어머니로 산 이소선,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끔찍한 물고문을 받으면서도 조직과 동지를 지키고 마침내 1987년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1988년 온도계 제조공장에서 일하다 수은 중독으로 사망해 우리 사회의 직업병 문제에 경종을 울린 15살 노동자 문송면, 평생을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산 김진균, 민주주의와 통일운동의 별 늦봄 문익환과 봄길 박용길, 의 저자이며 영원한 민중의 변호인인 조영래, 1991년 5월 범국민대회에 참가했다 백골단과 전경의 곤봉과 방패에 숨진 김귀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장에서 분신으로 항거한 허세욱, 1988년 노조탄압에 맞서 “광산쟁이도 인간이다”라고 외치며 스러져간 광산노동자 성완희, 2005년 여의도에서 열린 쌀개방 반대 농민대회에서 경찰 방패에 맞아 숨진 농민 전용철, 흰 고무신과 작업복 바지 차림으로 민주화운동 현장을 누비며 반독재 투쟁에 헌신한 계훈제, 2010년 국가인권위원장 퇴진 점거농성 중 급성폐렴으로 생을 마친 장애인 자립생활운동가 우동민, 기아차동차 비정규직 해고자로 복직 투쟁 과정에서 하늘로 간 청년 노동자 윤주형, 지난해 10월 ‘무노조 괴물’ 삼성과 싸우다 동지들 곁을 떠난 별이 아빠 최종범….

열사는 산 자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산다고 했다. 그 기억이 투쟁으로 계승될 때 비로소 열사는 현실에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게 된다. 기계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정리해고와 노조탄압에 맞서 싸우는 비정규직, 10년 전 전용철 열사가 외치던 ‘쌀개방 반대’를 지금도 외쳐야 하는 농민, 산업재해와 직업병으로 1년에 수천 명이 죽어나가는 노동자, “우리도 인간이다”라고 외치는 장애인,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과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준 정권의 반민주성과 무능에 분노한 시민, 철도·의료 등의 사유화로 생존권을 위협받는 민중, 미래의 비정규직 학생들이여, 이번 가을 모란공원으로 소풍을 떠나 열사들을 불러내 한바탕 놀자. 또 열사들의 염원을 가슴에 안고 돌아와 거리에서 신명나게 투쟁을 노래하자.

겨울꽃이 피기 전에

“겨울꽃이 되어버린 지금/ 피기도 전에 시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향기를 위해/ 내 이름은 冬花라 합니다// 세찬 눈보라만이 몰아치는/ 당신들의 나라에서/ 그래도 몸을 비틀며 피어나는 꽃입니다.”(박래전, ‘동화’(冬花)의 일부)

1988년 6월 “광주학살 원흉 처단, 군사파쇼 타도”를 부르짖으며 숨진 박래전 열사(당시 숭실대 인문대 학생회장, 인권운동가 박래군이 열사의 형이다)의 시(‘冬花’)를 만나러 지금 모란공원으로 가자.

이은탁 ‘데모당’ 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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