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경찰이 집회 참가자를 원거리에서부터 미행했다. 지하철 승강장까지 경찰이 배치돼 있었고 경복궁역의 청와대 방향 출구에는 철제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거리에서는 경찰이 ‘검문 중’ 입간판을 세운 채 통행하는 시민들의 신분증을 조사하고 가방을 열게 했다. 택시를 세우고 버스에 올라 매서운 눈초리로 승객을 훑었다. 예정된 집회 장소엔 경찰이 몇 겹으로 배치돼 알박기를 했다. 청와대 앞에서 ‘만인대회’가 열릴 예정이던 지난 6월10일 서울 안국동·청운동·삼청동 주변 상황이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청와대와 경복궁 인근 61곳에 집회신고를 했지만 정부는 집회를 전면 금지하고 경찰 수천 명을 동원해 계엄 상황을 방불케 하는 작전을 펼쳤다. 이날 거리의 민주주의 시계는 1970~80년대 군사독재 시절에 멎어 있었다.
<font size="3">백악관도 그렇게는 안 한다</font>
심지어 총기 소유가 허용되는 미국도 백악관 앞 집회와 시위를 보장한다. 그곳에선 1년 365일 소수자의 다양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2003년 우리 헌법재판소는 “자신이 계획한 집회를 어디서 할 것인지 누구나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만 집회의 자유가 비로소 효과적으로 보장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하지만 법도 주먹(경찰)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지금 청와대 앞은 우리 법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치외법권의 성역인 셈이다. 조선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에서 유생들이 시위할 때도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식의 대응은 하지 않았다. 경찰 대응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학생들이 몇 시간째 비를 맞으며 삼청동주민센터 앞 인도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라” “이윤보다 인간을”이라고 외치자 새벽 1시께 부상자까지 무차별 연행했다. 연행자를 태운 호송버스가 움직이려는 순간 그냥 보낼 수 없어서 난 버스 앞을 막고 차 밑에 몸을 디밀었다가 연행돼 이틀간 유치장 신세를 졌다. 설령 막지 못하더라도 연행되는 학생들에게 당신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알리고 싶었다. 지난 2개월 동안 세월호와 관련해 ‘잊지 않겠다, 행동하겠다’고 외치다 연행된 사람이 500명에 달한다. 6월28일에도 경찰은 올해 처음 물대포를 쏘며 22명을 연행했다.
“분노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용기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다. 저항해야 할 때 침묵을 하면 굴종은 습관이 된다.”(법정스님의 중) 집회·시위 등 거리의 민주주의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민주주의 시계가 고장난 사회다. 그 시계를 수리해 제대로 작동케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를 누볐던 우리 시민들에게 있다. 용기를 다스려 침묵을 깨는 것이 굴종의 습관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font size="3">“어딨는지는 앙께 살겠다” </font>유치장에서 이틀을 보내고 출감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접속했더니 누나가 남긴 메시지가 있었다. “너 잡혀서 구치소·교도소로 갔을 때 엄마가 하신 말씀이, ‘도망댕길 땐 어딨는지 모르니께 속 터져 죽겄드만 인자 어디 있는지라도 앙께 살겄다’라고 하셨는데 SNS 덕에 니 어딨는지 앙께 나도 살겄다.” 우린 지금 거리만이 아니라 가족의 가슴속 시계도 살벌했던 1970~80년대를 벗어나지 못한 세상에 살고 있다. 결론이 뭐냐고? 침묵은 똥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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