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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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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선장

등록 2014-05-13 17:05 수정 2020-05-03 04:27

사람들은 박근혜 선장을 이준석 선장에 비교하기 시작했다. 위기의 순간에서 허둥지둥하던 이준석 선장의 무능력과, 희생자들과 교감하지 못하는 듯한 그의 무뚝뚝한 표정이, 박근혜 정부와 닮아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두 선장이 모두 탈출의 귀재라며, 이준석 선장은 침몰하는 배와 맹골의 거센 파도를 탈출하기 위해서 ‘나는 선장이 아닌 양’하는 유체이탈 신공을 발휘했고, 박근혜 선장은 침몰하는 재난 대응 시스템과 비난의 거센 물결을 탈출하기 위해서 ‘나는 책임자가 아닌 양’하는 유체이탈 신공을 발휘했다며.

할 게 통제밖에 없는 선장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하지만 나는 반대하련다. 선장이라고 다 같은 선장이 아니다. 무책임이라고 다 같은 무책임이 아니다. 박근혜는 이준석이 아니다. 감히 어디다 비교를 하나. 가장 큰 차이는 이준석 선장은 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임시직이고 계약직이며, 심지어 그날도 대타였다. 그는 애초부터 배의 세세한 부분까지 장악하는 왕이 될 수 없었던 운명이다. 그는 해운사와 해경 등 각 관계기관들의 그릇된 유착과 관행의 한 부속품이었지, 결코 그것을 통제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박근혜 선장은, 2인자와 분권을 허용하지 않고, 자신의 말 한마디에 모든 기관장이 우르르 변침하는, 그러다보니 본인이 각 세부 부처에 일일이 깨알 지시를 내려야 할 만큼 장악력이 좋은, 급이 다른 선장이다. 박근혜 선장은 제왕이다. 그녀는 할 게 통제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이 때문에 유체이탈도 급이 다르다. 이준석 선장의 유체이탈은 매우 소극적이다. 승무원이 아닌 척 입을 다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구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선장의 경우 각 부처의 기관장, 행정관료와 기술관료를 모두 문책하고 엄벌하겠다고 호통치는, 나를 빼고 다 잘라버리겠다는 식의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유체이탈을 구사하신다. 이준석 선장의 유체이탈은 침묵할수록 좋고, 박근혜 선장의 유체이탈은 떠들수록 좋다. 연기 콘셉트가 다른 것이다.

그래서 가장 큰 차이는 조연들에게서 나온다. 이준석 선장의 경우, 소극적인 분위기에서 연기하다보니 조연들은 으레 매우 정숙하고 협조적이다. 실제 이준석 선장의 조연들은, 일사불란하게 구조선에 올라타고 질서정연하게 배와 승객들을 버림으로써, 유체이탈에 군말 없이 동참했다. 하지만 박근혜 선장에겐 너무나도 화려한 조연들이 있다. 그들은 곧 주연이 되리라고 들떠 있는 조연이고 신스틸러이기 때문에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저마다의 애드리브(즉흥연기)를 날린다. 영향력드립(김문수)과 사발면드립(서남수), 북괴지령드립(한기호)과 시체장사드립(지만원), 기상천외한 선동드립(권은희)과 6만원알바드립(정미홍)…. 조연들의 지나치게 현란한 애드리브가 정작 주연의 유체이탈을 방해하는 셈이다. 어쩌면 박근혜호의 승무원들은 박근혜 혼자서 탈출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들이 입을 열면 열수록, 진심을 말하면 말할수록, 박근혜호의 침몰은 가속화되니 말이다. 박근혜에게 시련을 주어 더욱 뛰어난 선장으로 단련시키려는 스파르타 조교가 아니라면, 그들은 분명히 박근혜호에 위장 취업한 지능적 안티다(얼마 전 내 기고글에 ‘공직자들이여, 할 말은 하고 냉철한 정신을 유지하라’고 충언한 듣보 편집장도 지능형 안티다. 이건 변희재 모르게, 우리끼리만의 비밀로 하자고요. 윙크 찡긋).

누가 심판하는가

물론 가장 큰 차이는 이 유체이탈극을 심판하는 관객에게 있다. 이준석 선장을 심판하는 관객은 검찰이거나 사법부면 될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선장을 심판하는 관객은 그보다 더 거대한 관객층이다. 그들은 국민이란 관객이다. 사실 그들은 관객도 아니다. 그들은 저 눈물이 진심인지 거짓인지 단번에 알아채고, 그리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무대도 멈춰 세울 수 있는, 진정한 감독이다.

김곡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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