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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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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를 위한 한국은 없다

등록 2014-02-22 14:40 수정 2020-05-03 04:27

나는야 영화인. 요새 도통 일이 안 풀려서, 예전에 써놓았던 시나리오나 들춰보던 터에, 소싯적에 써놓았던 한 시나리오를 발견했다. 헐. 영웅물이었다. 말하자면 히어로 영화. 비록 아직까지 실현되지 못했지만, 그 속엔 히어로 영화의 매력적 요소들이 제법 갖춰져 있었다. 히어로의 신통방통한 초능력과, 그가 대변하는 민중의 애환, 그리고 공동체 수호를 위해 희생하는 히어로의 사랑까지. 캬 죽인다. 하지만 이렇게 시나리오 쪼가리 부둥켜 잡고 자뻑하고 있노라니, 문득 드는 질문 하나. 나야 새파랗다가 실현시키지 못했다고 치고, 한국에 거물급 감독님이 꽤나 계신데 왜 한국엔 히어로 영화가 그리도 없지? 미국에선 이네 이네 흐드러지게 진화한 장르가, 왜 우리나라엔 없나?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이 모자라서? 혹은 영화시장이 작아서? 아니올시다(기술도 충분하고, 한국 영화 시장은 아시아에선 독보적인 알짜배기다).

한국판 에 관한 요상한 질문

해답은 바로 관객의 마음속에, 그리고 당신도 만약 관객이라면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 눈을 감고 상상해보라. 태극 청년이 아이언맨 슈트를 입고 음속비행하면서, 북한 테러 로봇(혹은 탈레반 테러리스트?)과 전투를 벌인다…. 헐. 가슴에 혹시 태극마크라도 달았나요? 북한 로봇은 밥은 먹고 다니나요?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북한국과 교전할 수 있나요? 미군 쪽에 허락은 받고 교전하는 건가요? 한국판 의 어색함을 견디다 못해 요상한 질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핵심에 다다른다. 한국인이 히어로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이미 다른 나라 큰형님이 우리의 히어로 역할을 대신 수행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영웅질을 가능하게 하는 군사과학 기술이 한국에 있다손 치더라도, 그런 기술은 왠지 미국에서 먼저 나와야 할 것 같고, 또 백번 양보해서 선개발했다 하더라도 왠지 허락받고 써야 할 것 같지 않은가? 왠지 머리 노란 로보캅이 세상을 구해야 될 것 같고, 머리 까만 로보캅은 시위 진압이나 해야 될 것 같지 않은가? 전작권이 환수되든 그렇지 않든, 구세질과 영웅질은 눈 파랗고 머리 노란 사람의 전유물인 것이다. 눈 까맣고 머리 까만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눈 까맣고 머리 까만 히어로가 어색한 이유도 이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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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에선, 일본 제국주의와 한국전쟁이 분기점이 아니었을까. 언젠가부터 홍길동 같은 영웅 초능력자들은 우리의 집단무의식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난세를 구하는 영웅 초능력자는 노란 머리 큰형님이 되어버렸다. 기브미 쪼꼴렛. 물론 와 같이 전통 신화로 우회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우회로야말로 한국 영웅이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좋은 반례는 아닐까. 한국적 영웅은 도포자락 휘날리며 도술을 부리는 전통 신화가 아닌 이상, 현실에선 개연적이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 거니까. 현실에 설 자리가 없어진 한국의 영웅들은 신화로 도망쳤다.

왕이 히어로를 행세하네

최근 한국 영화판에서 사극은 주요한 경향 중 하나다. 특히 발바닥에 티눈이 박여도 왕 탓을 하는 한국 사람들 성질머리에, 왕의 사생활을 엿보는 재미는 꾸준한 전통이 아닌가. 게다가 맨날 욕하던 왕이 알고 보니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는 그 반전 짙은 기특함이란! 사실 히어로를 왕이 대체한 셈이다. 아메리카 히어로들에게 밀려나던 한국 영웅들은, 이제 왕으로 둔갑해서 봉건시대의 유물처럼 스스로를 보존하는 수밖엔 달리 방법이 없다. 조선시대 아이언맨? 히어로의 봉건화라고 해야 하나, 영웅질의 박물화라고 해야 하나, 아놔. 결국 한국에선, 과거의 영웅만이 허용되고, 미래의 영웅은 허용되지 않는 셈이다. 이것이 영화적 무의식 속에서도 통용되는 국제적 묵약이다. 덕분에 시나리오 또 하나 썩어가고 다시 먹고살 길 막막해진 나로서는, 이번엔 누굴 또 고소해야 하나? 주한미군? 이승만?

김곡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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