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남 신안군 염전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이들의 사건이 소개되면서 염전업계의 노예노동에 대한 분노와 관심이 높다. 노모와 눈물의 상봉을 했을 그이의 안도와 회한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리고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 수없이 많은 이들이 그렇게 고립돼 징벌과도 같은 노동을 강요당할 때, 으레 그렇듯 그들 중 적잖은 수는 노숙을 하다 끌려갔을 터, 할 수 있는 거라곤 신문이나 정독하며 얼굴을 붉히고 있으니 말이다. 노동 착취 범죄는 한물갔다고, 범죄자들이 지능화돼 부가가치 높은 명의도용 범죄로 옮겨갔으니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물론 이 또한 사실이다. 홈리스들에게 명의도용 범죄 피해 사례는 노동 착취를 몇 배나 압도하고도 남고, 해결도 난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두 홈리스라는 열악한 지위에 있는 이들을 상대로, 그 열악한 지위 자체가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동일 범죄’란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노숙을 하다 끌려간 이들의 종착지가 염전이든 명의도용 합숙소든, 서울역과 같은 주요 노숙지는 이미 노예 공급처로 고착화되었다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사된 산업, 기피되는 노동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은 전국의 염전은 물론 노예노동이 예상되는 곳에 대한 일제 점검을 벌일 예정이라 한다. 사건을 통시적으로 바라보고 실체를 규명하려는 시도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불편한 것은 이러한 사건이 마치 선량한 ‘노예’와 악질 ‘주인’ 간의 문제로 단순화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구조 앞에 개인은 무력하다. 염전업주들은 왜 합법적인 인력 모집을 포기하고, 인신매매 범죄에 동조했을까? 근본적인 이유는 국내 천일염 산업이 한계에 부딪혔고, 그에 따라 염전으로 노동력이 투입되지 않기 때문 아닐까? 국내 염전산업은 1997년 소금의 수입 자유화가 시작되면서 가격 경쟁에서 밀렸고, 정부는 폐전지원 계획으로 천일염 산업을 구조조정했다. 그나마 남아 있는 현재의 염전들도 가족 노동에 의존하는 영세업체가 대다수다. 더욱이 염전 산업은 워낙 노동집약적이어서 인력의 고령화에 따른 새로운 인부의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번 사건의 발생지인 신안군은 국내 소금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생산량이 많고 낙도라는 점에서 가장 극심한 인력난을 겪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정부는 2008년 신안군을 천일염 특구로 지정했으나 영세한 규모, 낮은 생산성, 인력 수급의 문제를 해결할 대책은 제시하지 못했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염전업주는 물론 지역사회가 가족주의로 폐쇄돼 살인적인 강도의 노동을 방조·지원하고 임금을 착복하는 못된 관행은 처벌받아 마땅하다. 또한 이를 가능하게 하는 모집책, 미등록 직업소개소 같은 범죄 카르텔은 발본색원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염전 노예노동의 배후에 정부가 있었다는 것, 천일염 산업을 고사시키고 염전 노동을 기피 노동으로 만든 정책 당국의 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거리 홈리스 1500명, 주거 지원 대상은 350명홈리스들 중 염전 노동 피해자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원에서 노숙 중 발로 짓밟힌 채 승합차에 실려 섬으로 팔려갔다 부표를 몸에 동여매고 탈출한 K씨, 서울역에 있다가 숙식이 제공되는 일자리가 있다는 말에 속아 염전에서 6개월간 일하고 100만원을 손에 쥐고 나온 T씨, 염전에서 일하고 소금철이 끝나면 겨우 23만원을 받고 서울역 지하도에서 겨울을 나는 생활을 11년째 하고 있는 L씨…. 누가 봐도 어이없는 이런 상황이 홈리스들 사이에서는 화제조차 되지 못한다. 왜 이들은 이런 썩은 동아줄을 잡는 것일까? 그 이유는 공적 지원 체계가 홈리스들에게 필수적인 주거·노동의 권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먼저 주거정책을 보자. 노숙을 벗어나도록 돕는 주거정책으로는 ‘임시주거지원’이 유일하다. 이는 쪽방·고시원 등을 3개월가량 지원하고 이후 자력으로 주거를 유지하도록 사례 관리하는 프로그램인데, 쪽방·고시원이 주거로서 적절하겠느냐만 이 사업은 거리 홈리스들에게 절대적 선호를 받는다. 그러나 현실은 홈리스들의 기대를 꺾어놓기 일쑤다. 여러 문제가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물량 부족이다. 서울시를 기준으로 볼 때 연간 임시주거지원 대상은 350명에 불과하다. 거리, 임시 잠자리 등지의 홈리스가 약 1500명에 달함을 볼 때 터무니없는 물량이다. 법률과 조례, 권리장전을 통해 홈리스의 주거권 보장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고작 3분의 1의 잔여 물량만을 배정하는 서울시는 탈노숙보다 정책꾸러미 갖추기에 더 큰 목적이 있는지 모른다.
일자리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홈리스의 일자리 제공률을 2017년까지 6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목표는 포부일 뿐이라는 건지 올해 일자리 예산은 지난해 대비 3억원가량 감액됐고, 일자리 제공량은 연 1050명 규모에 불과하다. 5천 명에 달하는 서울 지역 홈리스의 약 20%밖에 포괄하지 못하는 극소 지원책인 것이다. 이들 일자리 대다수의 급여가 최저임금과 견주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낮은 것도 문제다. 이렇듯 홈리스들은 공적 지원 체계를 통해 주거와 일자리를 해결하기 어렵기에 인간 사냥꾼들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것이다. 혹은 그들이 사기꾼이 아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인지도 모른다.
범죄 무대가 이미 특정돼 있건만홈리스를 상대로 한 인신매매식 노예노동, 명의도용 사기, 위장결혼 같은 범죄는 왜 이토록 장기간 끊이지 않는 걸까? 전술한 사정들과 함께 홈리스들은 인간관계가 단절돼 피해를 당하고도 사건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홈리스 생활 현장에 밀착해 그들의 안전 보장을 목표로 한 치안 서비스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역·영등포역 같은 주요 노숙지와 무료급식소 등 홈리스 밀집지역이 인신매매 범죄의 시작점이라는 것은 거개 알려진 사실이다. 범죄 무대가 이미 특정돼 있는 상황, 그것도 구체적인 지역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에 맞춰 기획된 치안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오히려 경찰은 홈리스를 대상으로 한 불심검문에만 열 올리지 않았나? 보호 대상을 경계 대상으로 낙인찍고 감시하는 역할을 자기 과제로 자인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이는 제도의 탓도 크다. ‘노숙인 등 복지법’은 경찰의 홈리스에 대한 업무로 ‘응급조치’ 실시만을 규정하고 있다. 그럼 경찰이 할 수 있는 응급조치란 무엇인가? 고작 병원 갈 때 피구호자인계서를 끊어주는 것뿐 아닌가? 경찰의 당연한 제일 직무는 범죄 앞에 분노하고, 범죄로부터 취약한 이들에게 울타리를 쳐주는 것이다. 경찰의 노예노동 일제점검이 화톳불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홈리스에게도 인정받고 정의로울 수 있는 경찰 행정을 만나고 싶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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