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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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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꿔도 될까요?

홈리스 동료들의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2014년 몇 가지 꿈 이야기
등록 2014-01-03 14:46 수정 2020-05-03 04:27
홈리스 추모제에 설치된 소원트리에 거리 홈리스들이 소원을 적어 붙이고 환히 웃고 있다.홈리스행동 제공

홈리스 추모제에 설치된 소원트리에 거리 홈리스들이 소원을 적어 붙이고 환히 웃고 있다.홈리스행동 제공

새해다! 개인적으로나 활동에서나 지난해는 꽤 고단했기에 새해는 좀 나아질 것 같다. 하지만 그저 ‘느낌적인 느낌’일 뿐 아직 변변한 계획 하나 세우지 못한 채 새해를 덜컥 맞고 말았다. 하지만 홈리스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된 꿈이 있다. 이 꿈은 ‘2013년 홈리스 추모제’와 추모주간 활동을 준비하고 진행하며 구체화되었다. 거리에서, 병원에서, 쪽방에서 쓸쓸히 죽어갔을 동료들을 추모하며, 새해에는 그런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꿈들이다. 홈리스 동료들을 위한 꿈이지만 결국 나를 위한 꿈이기도 한, 그런 몇 가지 꿈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머물 권리 - 2013년 10월, 서울시는 한 대기업의 후원으로 거리 홈리스들에게 ‘이동식 쉘터’ 500개를 배포했다. 이는 텐트와 간이침대를 접합해서 만든 이동식 잠자리로, 서울시는 “거리 생활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이를 추진했다고 한다. 거리에서 살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도록 추위·시선·소음 등으로부터 거리 홈리스들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이것은 정신질환, 자존감 하락 같은 노숙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는 데도 중요하다. 그러나 서울시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누락하고 말았다. ‘이동식 쉘터’가 아무리 가볍고 튼튼한들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어딘가에는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노숙 행위는 계속해서 불법화되며 이들에 대한 퇴거 조치는 신속히 확산되고 있다. 지하도에 출입문을 만들어 아예 이들의 진입을 막는가 하면, 24시간 개방이 불가피한 고속터미널 대합실에서는 거리 홈리스들을 강제 퇴거시키고 있다. 서울 중구청은 2013년 11월 첫날부터 시작된 서울역 인도육교 철거 공사를 빌미로 그 일대에 있던 거리 홈리스들의 생활 집기를 수거해 폐기해버렸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이런 행태들 앞에 침묵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뿌려지는 ‘이동식 쉘터’는 서울시의 자비심 표지 외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거리에서 벗어날 권리 - 거리에 살더라도 인간다울 수 있는 권리는 거리에서 벗어날 권리로 이어진다. 대표적 장치는 주거정책이다. 우리나라에서 홈리스에 대한 임대주택 제공 사업은 2004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이 있다. 거리·고시원·시설 거주 등 주거취약 상태를 3개월 이상 겪고 일정 소득 기준을 충족하면 매입임대주택이나 전세임대주택에 입주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곧 만 10년이 될 이 사업은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1인 가구가 절대다수인 입주 대상의 특성을 고려해 국토교통부는 그동안 1인 가구형 주택의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누차 공언했다. 그러나 2012년 말 공급된 1인 가구형 주택은 총 36호(전국)에 불과하다. 약 10만 명으로 추산되는 주거취약계층 규모를 떠올리면 부족함을 넘어 민망스러울 정도다. 또한 다른 임대주택 체계와 달리 시설(운영기관)과 사실상 유령조직인 입주자선정위원회를 거치게 하는 불합리한 전달 체계의 문제로 인해 현재 이 사업은 거의 멈춰진 상태다. 주거의 권리, 새해에는 더 이상 구호가 아닌 손에 잡히는 구체적 형상을 갖추길 바란다.

이용당하지 않을 권리 - 해가 지면 서울역 앞에는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경북 영덕·안동, 강원도 춘천…. 정말이지 다양한 지역의 정신·요양병원 승합차가 환자를 모시기 위해 진을 친다. 입원 환자 수에 따라 정부 지원을 받는 병원의 특성상 입원 실적은 곧 병원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들은 먼 길을 마다치 않는다. 홈리스 처지에서도 이들이 싫지만은 않다. 한여름의 불볕과 겨울의 한파를 피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욕구의 조합은 꽤 오래전부터 순환돼왔다. 이미 당국도 아는 사실이고, 보건의료계에서도 다루기 어려운 주제라 한다. 그러나 막대한 국고를 들여 병원이 ‘주거’로 이용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병원은 병원답고 주거는 주거다워야 하지 않는가? 집 없는 사람을 환자로 간주하고 주거가 없다고 병원을 거처로 삼는 현실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지역의 정신·요양병원들의 생존 문제가 짐작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이는 분명 보건의료 정책으로 풀 문제다. 홈리스의 불안정한 처지를 이용해 연명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홈리스를 이용한 이익 창출은 명의 도용 범죄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범죄 일당들은 취업 알선, 숙식·생활비 제공 등 홈리스들의 현실을 약점 삼아 이들의 명의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 편취하곤 한다. 물론 그 책임은 고스란히 명의자인 홈리스에게 돌아온다. 결국 엄청난 채무와 형사처벌로 홈리스들은 경제·사회적 사망 선고를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들을 보호하는 치안서비스는 전무하다. 홈리스 복지는 여전히 쳇바퀴를 돌고 있어 이런 범죄 유인의 취약 고리는 여전히 재생산되고 있다. 홈리스의 생활 현실에 밀착한 착취 구조를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늦춰서는 안 된다. 더 이상 홈리스의 불안정한 처지가 타인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올해에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 노숙인복지법은 홈리스에게 고용·의료·주거·급식 지원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당 이런 사업에는 예산이 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딱 하나 돈 안 들이고 하는 사업이 있다. 바로 ‘급식 지원’이다. 신기한 일이다. 서울시가 따로 농사를 짓고 밥을 지어 홈리스들에게 급식을 하는 것도 아닌데 예산이 들지 않으니 말이다. 비결은 하나다. 자선·종교단체들의 무료급식에 100% 의존하기 때문이다. 다만 서울시가 하는 일이 한 가지 있다, 서울역 인근에 ‘따스한 채움터’라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거리에서 예배하고 밥 먹는 것에 대한 민원이 들끓자 이를 감추기 위해 건물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노숙인복지법에 따르면 노숙인 등 급식시설은 식품위생법이 정한 ‘집단급식소’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자선·종교단체에 의존하지 말고 적정한 시설·설비·인력을 갖춰 급식 지원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서울시는 요지부동이다. 왜? 급식 지원은 투입 비용 대비 성과를 계량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끼의 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법이 정한 대로 하자는 아주 소박한 요구 아닌가?

“조명등 하나, 나 하나, 조명등 둘, 나 둘. 눈을 감는다./ 내일도 숨 쉴 수 있으려나?” 폐지를 수집하며 살고 있는 거리 홈리스 박씨의 시는 이렇게 끝난다. 절망인지 두려움인지 소망인지 모르지만 참 소박하다. 여기에 비춰볼 때 앞의 꿈들은 너무 거창하지 않은가? 그러나 박씨의 ‘숨’이 단지 맥박의 운동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답게 내쉬는 숨, 홈리스들도 아프고, 억울하고, 배고프지 않게 숨 쉴 수 있는 삶. 그래서 앞의 꿈들은 꼭 이뤄져야 한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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