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우리 ‘지구인뮤직밴드’가 연습하고 있는 서울 홍익대 앞 이주민 예술공간 프리포트. 갑자기 누군가의 휴대전화에서 아잔 소리가 들린다! 아잔은 이슬람교에서 기도 시간임을 알리는 신호다. 이슬람에서는 아잔을 들으며 하루에 5번 기도하게 돼 있다. 나도 한때 매일 성실하게 기도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독실한 누푸르가 기도를 하러 가야 한다며 연습 도중 나간다. 난감해지는 순간. 하지만 한 사람의 기도 때문에 연습을 중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푸르의 노래를 내가 대신 부르기 시작하면서 연습은 다시 이어진다.
일단 연주 시작되면 언어 장벽 사라져지구인뮤직밴드는 방글라데시·아일랜드·이탈리아·코트디부아르·한국 등 다양한 국적의 음악가들이 어울려 즉흥연주도 하고 여러 음악을 섞어서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는 밴드다. 2006년쯤 이탈리아의 다국적 이주민 밴드에 관한 다큐멘터리 를 보고 나서 한국에 저런 음악팀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홍익대 앞에 이주민 예술공간 프리포트가 생겨났고 이 공간에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예전의 다큐멘터리를 떠올리게 되었다. 마침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알고 지내던 이주민 예술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우리도 한번 해보는 거야!” 이렇게 밴드의 시작은 매우 즉흥적이고 낭만적이었다.
그러나 밴드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언어도 다르고 나라마다 음악도 다르다보니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누푸르의 기도가 그렇듯 한 사람에겐 당연한 것이 다른 사람에겐 엉뚱한 일들이 우리에겐 비일비재했다. 가장 큰 문제는 당연히 언어였다. 밴드에는 한국어를 못하거나 영어를 못하거나, 어떤 때는 둘 다 못하는 멤버들이 섞여 있다. 매니저이자 통역을 담당하는 나는 회의 자체가 고역이었다. 내 모국어인 벵골어를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통역하면서 동시에 영어를 한국말 또는 벵골어로 통역하는 일은 그야말로 정신분열에 가까운 작업이었다. 이런 나의 노력에도 서로 오해하는 일이 많이 발생했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일단 연주가 시작되면 의사소통의 장벽이 말끔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이런 가락을 연주하면 다른 사람이 저런 리듬으로 화답하는 음악의 화법은 국적과 언어를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띤나 띤나’라는 민속음악에 다른 사람들도 함께 마음을 모아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물론 노래가 잘됐다고 해서 오해와 갈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순간만은 서로 통한다!
함께 연습할 시간을 내는 것도 큰 골칫거리였다. 대부분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시간을 쪼개 연습하는 탓에 일주일에 한 번 함께 모여 연습하기도 쉽지 않았다. 공연을 앞두고 모든 멤버가 일시에 함께 모여 맞춰보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지난 6월1일 지구인뮤직밴드의 첫 번째 공연이 열렸다. 과연 결과가 어떨까 설레는 마음으로 잔뜩 긴장했다. 늦게 오는 사람, 준비물을 안 챙겨온 사람 등 역시 리허설 현장은 어수선했다. 하지만 연주가 시작되자 관객은 뜨거운 박수로 호응해주었고, 밴드 맴버들도 호응에 힘입어 신나게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오해와 편견 있으면 같이 놀아봐야이렇게 서로 다르지만 음악으로 소통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한국 사회는 다양한 이주민이 한자리에 모여 살고 있다.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 난민 등 점점 이주민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 사회는 아직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부족하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이주민들은 그 지역사회에 그저 평범하게 섞여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외국인이라서 받는 따가운 시선과 차별은 그들로 하여금 그저 숨죽이거나 ‘나대고 활동하며’ 과장스러운 목소리로 자기 주장을 하게 만든다. 나는 후자에 가깝게 살았다. 생활에서 오는 차별이 분노로, 그 분노가 운동과 활동으로 나를 몰아갔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활동하고 목소리를 높여도 택시기사의 말 한마디에, 지하철 어느 낯선 이의 시선에 좌절하고 만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한국말 잘하시네요.” 누가 들어도 아무렇지 않을 질문에도 나는 화가 난다. 맘속으로 ‘나 주민등록증 있거든요’ ‘한국에서 15년 살았는데 말 못하면 바보 아닌가요?’ 하고 대꾸하게 된다. 실제 이렇게 말했다가 택시기사와 싸운 일도 있었다. 아내는 “뭘 그런 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어. 그냥 무시해. 신경 쓰면 너만 손해야”라고 말한다. 난 왜 아직까지도 이렇게 상처를 받을까? 아마 이런 트라우마가 예술가도 아닌 나를 예술판에 기웃거리게 하는 동력일지도 모른다. 요즘의 화두인 ‘힐링’을 나는 지구인뮤직밴드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일상의 소소한 차별도 있지만 가장 극적으로 상처를 입은 건 영화 를 찍고 나서였다. 에서 나는 남자 주인공 카림 역을 맡았다. 영화는 발랄한 한국 여고생과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가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다. 개봉 전에 이 영화는 12살 관람가로 프랑스의 유명한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청소년을 상대로 특별 상영행사까지 진행했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서 개봉될 때는 ‘19금’을 받았다. 게다가 개봉 전부터 온라인에서 악성 댓글이 끊이지 않았고, 심지어 나를 죽이겠다는 협박 전화까지 걸려왔다. 여고생이랑 키스 신 한 번 찍었을 뿐인데 나는 그 뒤로 밤길을 조심해야 했다.
오해와 편견이 있으면 한번 같이 놀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인과 이주민이 같이 모여 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자는 것이 프리포트의 기획 의도였고, 올해 2회를 맞은 이주민 예술제의 슬로건이었다. 언론이나 대중매체에서 다뤄지는 이주민은 항상 불쌍하고 도와줘야 할 존재이거나, 영화 를 보는 일부의 시선처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혀 있다. 나는 이주민 스스로가 자신을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정부가 지원하는 대부분의 다문화 정책은 전체 이주민의 20%인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한국어 능력, 한국 음식 만들기 등 동화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무엇보다 그 지원이 ‘합법적’ 테두리 안에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한계다. 합법과 불법이 나뉘고 합법 속에서도 다양한 체류 등급 속에 조건지워져 있는 이주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특별한 대접 아닌 일상적인 평등을이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특별한 대접이 아닌 일상적인 평등이다. 정부의 다문화 정책은 이주민을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또한 이주민의 현실을 잘 알고 있는 활동가들도 간혹 이주민을 사업의 대상이나 항상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10년 넘게 한국에서 이주민 관련 활동을 하는 나에게도 그것은 큰 과제다. 그러면 어떻게 한국인(활동가)과 이주민이 일상적으로 평등하면서 의미 있는 일을 같이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그 문제 역시 함께 재미있게 놀면서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때로는 이주민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도 필요하지만 한국에서 잘 섞여 살아가려면 다른 사람들과도 같이 놀 줄 알아야 한다. 동화 정책의 꼭두각시가 되거나 신기한 볼거리가 되라는 말이 아니라 소통하고 대화해보자는 것이다. 여기에 국적과 언어를 초월한 예술이야말로 놀이와 소통의 훌륭한 도구가 아닌가 싶다.
마붑 알엄 영화감독·배우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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