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하는 아르바이트, 직접 돈을 버니 그 소중함을 알게 됐다. 일하는 부모님은 얼마 나 고생이 많으실까.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 님 선물부터 사야지.
이런 모범생 같은 청소년이 있다고 하자. 패스트푸드점도, 주유소도 좋다. 편의점도 괜찮다. 어딘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하 자. 예상컨대, 저 모범적인 생각은 통장을 본 순간 사라질 것이다. 월급은 예상한 액수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사장님, 알바비가 모자란데요?”
그는 알바하기 전과 비교해 자신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전에는 노동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고 일하는 사람이 느끼는 고충 이런 것도 몰랐어요. 지금은 밥 먹을 때도 더럽게 안 먹어요. 알바생이 정리해야 하니까.”
사장님은 찬찬히 설명해준다. 너는 정식 알바가 아니라 인턴이기 때문에 원래의 시 급인 5500원은 줄 수 없다. 최저임금 4860 원에 만족해라. 그리고 지각비가 있다. 1분 을 늦어도 30분 시급을 깐다고 말하지 않았 느냐. 월요일마다 1시간씩 더 일한 거? 그건 다른 알바가 늦게 오니 네가 도와준 거 아니 냐. 어린애가 벌써부터 돈만 밝혀서 어디다 쓰냐.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된다. 사회가 달콤한 과자의 집이 아니라는 것을 16살이나 17살 때쯤 깨닫는다. 집에 돈이 좀 있다면 알바를 그만두고 ‘재수 없었다’ 하면 된다. 하지만 돈 을 벌어야 하는 처지라면, 순도 99%의 다크 초콜릿 같은 쓴맛을 계속 보는 수밖에. 2013 년 2월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을 고용한 곳 중 노동법 위반 사업장이 전체의 85%에 달한다고 하니, 허무맹랑한 이야기 는 아니다.
‘이응이’(18)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월급 이 적게 들어와 물어보니, 자신이 하루짜리 일용직이라서 그런다 했다. 한 달 꼬박 주 5 일 정해진 시간에 나와 일했는데, 하루하루 계약이 갱신되는 일용직이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심지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응이가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한 곳은 테이크아웃 음식점이었다.
“첫날은 진짜 정신이 없었어요. 매니저가 포스기(계산기) 사용법을 가르쳐줄 새 없이 손님이 막 오는 거예요. 그래서 주방에서 설 거지만 했어요. 설거짓감이 끊이지 않고 계 속 들어오는 거예요. 그 뒤로도 손님이 많지 않더라도, 진짜 일을 계속 시켜요. 10초라도 서 있는 꼴을 못 보고. 청소, 주방… 튀김기 닦고, 기름 갈고, 하수구 청소하고, 냉동창 고 정리하고… 일 하나 끝나면 다른 일 시키 고. 다 끝내서 도저히 할 게 없으면 전단지를 뿌리고 오라 그래요.”
시간당 5천원이나 받는데 놀고 있으면 안 되는 거다. 땅을 파봐라 10원이라도 나오나, 이런 식이다. 손님도 매니저도 쉽게 반말을 하고 화를 냈다. 내가 어려 만만하구나 했다. 더 서러웠다. 그런 경험을 한 소감은 이러 했다.
“월급 받을 때 통장을 보면 너무 공허하고 짜증나고 기분이 나빴어요. 모든 알바가 이 런 건가? 아, 알바를 꼭 해야 하나. 진짜 하기 싫다.”
“청소년 당사자들의 조직이 필요해”이토록 싫은 일을 왜 벌써부터 하는 걸 까. 아직 18살이다. 하지만 돈을 벌어야 했다. 부모님의 집을 나와 따로 살고 있기 때문 이다. 가출(?)의 조짐은 입학식에서부터 시 작됐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까지 가진 교 육재단이 운영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오리엔테이션을 하는데, 전교생을 모아놓 고 기도를 시켰다. 전교생이 기독교인도 아 닐 텐데, 이게 무슨 일인가 했다. 그 뒤 매주 1시간씩 종교 과목을 듣고, 예배를 봐야 했 다. 학기가 끝나는 3일 동안은 신앙부흥회 가 열렸다. 학교가 기독교 재단이었기 때문 이다. 믿는 신이 없는 이응이는 예배시간에 찬송가를 들으며 생각했다. 내 자유는 어디 갔지? 헌법에 있고, 교과서에도 떡하니 나온 ‘종교의 자유’는?
강제 야간자율학습, 우열반 나눔도 눈에 거슬렸다. 자율학습실에 가면 우등생이랑 일반 학생이랑 나눠놓고, 우등생 책상에만 인체공학 의자와 눈이 아프지 않은 조명을 설치해주었다. 누구든 학창 시절에 숱하게 겪었을 차별들. 그저 한때라고 넘기고 마는 불만이었다. 그러나 이응이는 서울시 학생인권교육센터를 찾았다. 종교 강요는 반인권적인 것이니까. 신고를 했다. 그 내용이 일간지 기사로도 나갔다.
언론을 통해 문제가 알려지자, 학교는 신고자를 물색했다. 이응이임이 밝혀졌지만 징계는 피할 수 있었다. 대신 다른 괴롭힘이 있었다. 몇몇 교사는 “학교 이미지가 나빠지면 입학사정관제나 수시 전형에서 불리해진다”는 말을 수업시간에 하고 다녔다. 방송반 학생들이 하는 방송에서는 “매스컴에 우리 학교가 보도된 적 있죠. 학교에 불만을 품은 모 학생의 제보라 하는데, 그렇게 학교가 싫음 전학 가세요”라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혼자 견뎌야 했다. 학교를 그만두었다. 더는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라는 단체에 들어가 활동을 했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과의 갈등이 깊어져 독립을 하게 되었다. 집을 나오니, 잠자리 구하는 것부터 물 한 잔 마시는 것까지 다 돈이었다. 17살 나이로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적었다. 청소년을 고용하는 가게도 적고, 설사 고용한다 해도 환경이 좋지 않았다. 청소년들은 술 마시고 옷이나 사려고 알바를 한다 여기는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돈을 주면서도 당당한 사업주가 많았다.
이응이가 배운 인권의식 따윈 알바 세계에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미친 듯이 닦고 쓸고 포장하고 주문받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됐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갔다. 인권은 다른 데서 쓰였는데, 알바를 그만둔다 했을 때 매니저는 말했다. “어쩜 넌 인권운동 한다는 애가 우리 인권은 생각도 안 하니?”
냉장고도 없는 3평짜리 자취방에 앉아,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다시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았다. 그러다 페이스북에 글 하나를 남겼다.
‘올해는 청소년 노동운동을 할 때다. 청소년 당사자들의 조직이 필요해.’ 친구들이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눌렀다. 다들 이응이와 비슷한 처지였다.
“저는 알바를 하기 전이랑 후가 되게 달라졌어요. 전에는 노동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고 일하는 사람이 느끼는 고충 이런 것도 몰랐어요. 지금은 밥 먹을 때도 더럽게 안 먹어요. 알바생이 정리해야 하니까. 깨끗이 청소해놓은 가게를 보며 ‘좋다’가 아니라 ‘알바 힘들었겠구나’ 이러면서 최대한 안 밟으려 하고. 노동이 꽤 중요하고 일상적인 행위이다, 뭐 이런 것을 체감한 거 같아요. 나랑 노동은 평생을 같이 가는 거니 노동권이라는 것에 무심할 수가 없구나.”
‘청소년 노동자 권리 선언’ 등 고민돈 버는 일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응이는 부모님께 드릴 빨간 내복을 사는 대신, 다른 일을 했다. 청소년 노동조합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청소년들도 노동을 한다. 아르바이트 중 값싼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가 청소년이다. 뉴스에 나오는 임금체불, 최저임금, 성추행 등 각종 문제의 주인공들도 청소년 알바 노동자다. 그럼에도 청소년들은 노동한다는 사실조차 인정되지 않았다. ‘애들이 무슨 일이래’라는 사회의 시선에 방치되고 만다. 이응이와 몇몇이 모였다.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른 친구들도 함께했다. 우리도 노동자니까, 노동자의 권리를 찾자. 이것이 목표다. 아직은 ‘청소년 유니온’을 만들기 위한 준비모임일 뿐이지만 노동법도 공부하고 ‘청소년 노동자 권리 선언’ 등 행사도 고민한다.
글 희정 제2회 손바닥문학상 당선자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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