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미얀마) 하면 우리는 어떤 것을 알고 있을까. 아웅산 테러 사건과 버마 독재정치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벌이고 있는 아웅산수찌 여사 정도일 것이다. 아시아라는 테두리에 있지만 멀고 멀게 느껴지는 나라가 버마다. 그런 버마에서 한국 동화가 그 나라의 언어로 번역돼 널리 읽히고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단다. 이런 모습은 글로벌화된 요즘 당연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버마에는 현재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없다.
부터 까지
버마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1994년 한국으로 건너와 2008년 한국 정부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마웅저(45)는 버마와 타이~버마 국경 난민촌의 아동·청소년들을 위해 2010년 ‘따비에’라는 국제구호단체이자 어린이 교육지원 단체를 설립했다.
“현재 버마는 오랜 군부독재로 인해 정치·인권·민주화·경제 등 여러 분야에 문제가 있어요. 이런 모든 문제의 뿌리가 저는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군부독재가 시작되기 전에는 마을마다 도서관이 있었어요. 지금은 도서관도 없고, 책은 아예 없어요.”
따비에는 버마에서 평화와 행복을 상징하는 나무의 이름이다. 그런 이름을 건 따비에가 가장 처음 한 일은 도서관 짓기였다. 그러나 막상 공간이 생기자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읽을 수 있는 책이 전무했다. 그래서 한국 동화책 20권 정도를 버마어로 번역해 현지에서 출판할 수 있도록 출판사와 작가들로부터 저작권 관련 허락을 얻었다. 그중 가장 처음으로 권정생 작가의 을 2011년 버마 현지에서 출간했다. 현재는 까지 총 9권이 후원을 통해 출간되었다.
“책을 출판할 때 그 내용과 그림을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출간할 수 있습니다. 정부 관계자들은 동화책 제목에도 신경을 많이 씁니다. 을 출간할 때도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제목을 바꾸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부정적인 제목이라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이라는 제목을 바꿀 수 없을 뿐 아니라, 모든 작업을 잘 마쳐 인쇄가 준비된 상황이라 현지 따비에 관계자들에게 힘든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버마에서 어린이책을 출간해 나누고 싶었던 현지 활동가들의 노력 덕분에 은 제목 그대로 출간할 수 있었어요.”
버마에서 '똥'이란 단어는 심한 욕이라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 현지 부모들이 아이가 이 책을 고르면 제목이 안 좋다고 보지 말라고 했단다. “그런데 읽어보니 우리가 생각하던 그 똥이 아니구나, 다르게 새롭게 볼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에 큰 반응이 일어났어요. 새로운 내용과 새로운 방식의 문화, 이전에는 전혀 없던 어린이책, 어린이 문화가 미약하지만 시작된 거예요”
버마, 어린이 병사 세계에서 가장 많아한국의 동화책은 '동화'라는 개념을 모르던 버마 어린이들에게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출판의 자유가 없으니 자연적으로 인쇄 기술이 도태되었고 출간되는 작품의 내용도 종교 관련 아니면 군부 찬양에 가까운 것뿐이었다. “한국 동화책을 통해 디자인, 종이 질, 컬러 등 수작업이지만 점차 인쇄 기술이 늘어나 최근에 나온 을 보면 처음보다 아주 좋아졌어요. 그러다보니 이제 우리를 따라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버마어로 출간된 과 함께 또 한 권의 책을 그가 건넸다. 동글동글한 글자가 적혀 있는 책이었다. “현지 작가들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진행했어요. 참여한 작가가 30명 정도였어요. 그중 10명 정도에게 얼마 안 되지만 상금도 주고 이렇게 책으로도 출간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책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분명한 변화와 희망의 증거일 터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버마엔 어린이가 몇 명이나 있는지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다. 마웅저는 잠시 난감한 표정과 함께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그거예요. 알 수 없어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어요.” 예상치도 알 수 없느냐고 했지만 결국 알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하나의 자료를 받았다. 내용을 살펴보니 많은 버마의 어린이들이 군대에 납치되거나 강제징집되고 특히 국경지역에 사는 소수민족의 어린이들은 강제로 징집하는 버마군을 피하려 난민이 되기도 한다고 적혀 있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버마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어린이 병사(70만 명)가 비공식적으로 존재한다고도 했다.
자연스레 따비에라는 단체 활동을 하며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예산을 확보하는 일이에요. (웃음) 동화책 출판사업뿐만 아니라 버마 현지에 있는 따비에 사무국을 운영하고 여러 가지 사업을 하는데 아무래도 예산을 확보하는 일이 가장 힘들죠. 다행히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계세요.” 그리고 그는 다시 한번 교육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강조했다. “‘못 먹고 죽어나가는 아이들이 있는데 교육? 그게 정말 중요하냐’라는 질문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어떤 것이 중요한지는 다르지만 저는 학교와 교육을 선택했어요. 당장 성과가 없어 보여도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현지에서 활동하는 따비에 활동가에 대해서도 무척 궁금했다. “4명이 있는데 그중 카이몬이란 친구는 한국에 다녀간 유학생이에요. NGO학과 보건학을 전공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사실 제가 그동안 버마에서 교육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는 말을 못했어요. 현지에 있는 친구들이 다칠까봐. 하지만 이제는 용기가 생겨 페이스북에 사진도 올리고 활동 사항도 전하고 있어요.”
같은 아시아에 사는 소중한 인연들올겨울, 20여 년 만에 고향 버마를 방문한다는 마웅저 따비에 대표에게 꼭 건강을 유지해달라고 부탁했다. 버마 아이들이 제대로 된 학교와 도서관에서 마음 편히 즐겁게 책을 읽고 교육받을 수 있게 되려면 20~30년이 걸릴 것 같다는 그의 말 때문이었다. 부디 예상 시간보다 더 빨리 그의 꿈이 이뤄지길 바란다. 그가 마지막으로 전한 말이 있다. “버마 사람이라고 멀리 있는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 하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같은 시간에, 같은 아시아라는 공간을 살아가는 소중한 인연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함께 평화를 나눴으면 합니다.”
따비에 전화: 070-7642-9319, 후원계좌: 신한은행 325-01-167213(예금주 함께하는시민행동)
글 윤성훈 제4회 손바닥문학상 당선자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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