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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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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의 선택은 카우보이 방식?

치료 아닌 예방 목적으로 유방 수술 받은 앤젤리나 졸리 화제 간단히 문제 해결하는 카우보이 방식은 또 다른 문제 낳을 수도
등록 2013-06-02 15:27 수정 2020-05-03 04:27

지난주 에 실린 앤젤리나 졸리의 기고문 ‘나의 의학적 선택’은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에 따르면 졸리는 치료 목적이 아니라 예방 목적으로 멀쩡한 유방조직을 적출하고 복원수술까지 받았다. 멋진 여배우의 과감한 행보는 시대를 앞서가는 개념 있는 선구자적 풍모마저 풍긴다. 전문의들의 우려에도 일부에선 같은 수술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문의가 병원마다 쇄도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친하게 지내는 어느 대학병원의 종양학 전문가에게 졸리의 뉴스를 읽었는지 문자를 보냈더니 바로 답이 왔다. 그의 평은 촌철살인, 명료하고 명쾌했다. “카우보이 방식으로 해결했군요.”

영진닷컴 제공

영진닷컴 제공

아직 암이 생긴 것도 아닌데 유전자 검사에 따른 확률만으로 그런 큰 수술을 선택했다는 것은 언뜻 용기 있는 행동으로 비친다.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 이면의 어둠은 더욱 짙은 법, 그 용감무쌍한 결정에서 역으로 읽히는 것은 그녀가 암에 대해 지니고 있을 지나친 공포감이었다. 졸리는 정서적 불안을 이겨내지 못해서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졸리의 기고문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가족에 대한 애틋한 고백이었다. 모친이 50대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데 따른 상실감, 그래서 손주들이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자신의 자녀들은 자기처럼 엄마를 암으로 일찍 잃게 되면 어쩌나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라는 모정, 배우자 브래드 피트에 대한 기대와 감사 등 구구절절 가족에 대한 감정의 봇물이었다.

1990년대 홍콩을 경유해 마카오에 여행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마카오는 아직 포르투갈령으로 중국에 조차권을 반환하는 시기가 몇 년 남아 있었다. 그때 마카오의 인상이란 마치 보수해야 할 곳을 보수하지 않고 내버려두고 있는 재건축 아파트 같았다. 곳곳에 파인 도로와 좁은 골목, 누추하게 얽어놓은 지붕과 사이사이 위태롭게 늘어진 전깃줄.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비가 오는 날이면 거리에서 감전사고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단다. 얼마 전에도 중국인 노파가 감전사고로 죽어 집단시위가 일어났고 관할 정부가 몹시 곤욕을 치렀다고. 그런데 관할 정부는 고질적인 감전사고 문제를 어느 날 아주 깔끔하게 단방에 해결했단다. 놀랍게도 그 방법은 마을에 전기 공급을 중단한 것이었다. 이로써 더 이상 감전사고를 염려할 일은 없어져버렸다.

간단치 않은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해버리는 카우보이 방식의 해법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실타래를 풀어가며 골칫거리를 해결하지 않는다. 싹둑 잘라버리거나 불도저로 밀어버리거나 아예 버리는 방식을 택한다. 당장의 문제는 사라져 속 시원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만큼 잃는 것, 감수해야 할 문제가 새롭게 등장한다.

사실 카우보이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정치계에도 외교가에도 기업가들에게도 이런 면모는 흔히 결단력과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최근에도 목도하지 않았던가. 적자가 누적됐다는 이유로 진주의료원 폐쇄를 밀어붙이는 당차고 과감하고 무모한 신임 도지사의 행보를.

의학에서도 카우보이 방식의 해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때 자궁경부암이 유행하던 시기, 조그마한 이상이 나왔을 때는 물론 멀쩡한 경우에도 “이제 애 다 낳으셨지요? 더는 애 가질 계획 없으시죠? 그럼 자궁 떼어버리세요. 뭐하러 달고 사세요?“ 하며 예방적 근치를 위한 자궁적출 수술을 권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산부인과 의사가 어느 마을을 지나가면 그 마을에 자궁이 모두 없어진다더라 하는 식의 농담 같은 괴담이 돌곤 했다. 지금도 비슷한 괴담은 유효하다. 어느 요양원에 가면 전립선이 없다더라, 어느 동네에는 무릎관절이 없다더라, 갑상선이 없다더라 등등. 이젠 어디에 가면 유방이 모두 없다더라, 이런 괴담이 나올 차례인지 모르겠다.

평소 졸리의 지론대로 내가 나 자신을 바보로 만들든 말든 남들이 무슨 상관인 것일까? 조물주에게 인터뷰를 청하면 오늘 어떤 촌평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서울시립동부병원 정형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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