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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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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때문에 예수다

등록 2013-04-19 16:10 수정 2020-05-03 04:27

‘착하다’는 말은 기괴하다. 엎어졌다 울지 않고 일어서도 착하다, 남김없이 밥을 먹어도 착하다, 공부를 잘해도 착하다, 라고 한다. 울지 않고 일어났으면 씩씩하고, 밥을 잘 먹었으면 배불러 좋겠고, 공부 잘하면 열심히 했다 칭찬하면 될 일인데 그저 모두 착하단다. 사전에는 그 뜻이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라고 쓰여 있다. 비슷한 말로는 ‘온순하다’ ‘양순하다’가 있다. 오호라, 모든 상찬을 ‘착하다’가 독차지한 속내는 여기 있네.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에 온순하게 따른다. 순하고 어진 백성이다. “말 잘 듣는 놈이 착하다.”
‘착함’의 수난시대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이런 지경이니 ‘착하다’의 제대로 된 뜻은 정작 존중받지 못한다. 국어사전이 아니더라도 ‘착하다’는 정말 얼마나 착한가 말이다. ‘착하다’는 타인의 고통을 마음으로 연민하며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곤경에 빠진 다른 이의 삶 속에 뛰어드는 사람, 자신의 처지나 이익을 앞세우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돌팔매질을 당하지 않는 사회라면, 착함이 존중받는 사회라면 이토록 고통으로 넘칠까 싶다. 85호 크레인을 외면하지 않고 ‘희망버스’를 탔던 김세균 서울대 교수가 명예교수 심의에서 배제됐다. 반면 ‘돈봉투 사건’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국회의장 출신 여당 인사는 석좌교수로 임용됐다. 착한 자는 망하고 악한 자는 흥한다. 뜻만 기괴하게 쓰이지않는다. 그야말로 ‘착하다’의 수난 시대다.

‘착하다’를 ‘순종하다’로 정확하게 일치시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과 장로님들이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만이 천국에 이른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 뜻에 반하면 모두 ‘악하다’고 했다. 그들은 곧잘 하나님의 그 뜻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으니 나를, 우리를 무조건 따르라 했다. 얼마 전 그들로부터 문자가 왔다. 입법 예고가 종료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란다. “성경에서 금지한 동성애를 조장하는 법이고, 동성애를 비판하는 설교를 하면 감옥에 가게 되었으니 한국 교회는 몰락하게 될것이다”라며 으름장이다. 효과가 있었는지 10만 명이 서명했다. 논리 구조가 전혀 없는 겁박의 언어들에 눈감은 참 착한 교인들, 참 순종적인 믿음들.

그런데 그들이 분명하게 짚은 부분도 있다. 법이 발효되면 동성애를 포함해,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대했던 행위가 규제될 수 있다. 규제 가능성으로 인해 우리사회는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고, 인격을 무시하지 않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들은 그게 싫었던 것이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은 누군가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행위를 중단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었다. 예수가 고관대작의 아들이었는지, 목수의 아들이었는지, 예수가 발을 씻겨준 여인은 누구였는지, 예수가 어떻게 죽어갔는지, 그리고 예수를 함부로 대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누군가는 자신의 사랑 때문에 예수가 되었다. 사랑은 자체로 너무 달고, 쓰다. 사회적 족쇄가 없어도 사랑 때문에 휘청이고 사랑 때문에 목숨을 걸기도 한다. 동성을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 부정당하지 않아도 사랑만으로 이미 충분히 괴롭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개신교인들

‘착하다’는 누군가의 사랑을 훼방하는 명령에 순종하는 게 아니다. ‘착하다’는 누군가 사랑 때문에 무너질 때, 함께 훌쩍이는 단 한 방울의 눈물이다. “우리는 물 한 방울을 보면서 바다를 생각할 수 있다.” 스피노자의 말이다. 단 한 방울이면 바다가 될 수 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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