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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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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자본

등록 2013-03-23 06:45 수정 2020-05-03 04:27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재개발 지역에서 10년 넘게 살았다. 달동네마을 어귀에 붙은 재개발 대상 지역 표지판은 멀리서도 잘 보였다. 언제 재개발이 시작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우리 동네는 7지구인가 그랬는데, ‘7’이라는 숫자가 순서라고 생각했다. 아직 6이 개발되지 않아서, 어쩌면 5도 개발되지 않아서 개발이 늦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세입자였으니 보상과는 무관했다. 보상 따위의 단어도 몰랐다. 그래도 이웃들의 싸움이 전과는 다른 내용이라는 건 알았다. 보상금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갖기에는 많고 나눠 갖기에는 너무 적은 액수인 건 틀림없었다. 형제간의 다툼, 친구간의 사기극 소식이 종종 들려왔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남일당, 금기어

그런 가십을 10년쯤 겪고 나서야 철거가 시작됐다. 싸울 사람 다 싸우고 떠날 사람 다 떠나고, 챙겨 받을 사람 다 챙겨 받은 다음인지 뉴스에서 보는 용역과 철거민의 다툼 같은 것도 없었다. 어쨌거나 버틴 사람들은 뭔가 하나씩 챙겼다. 우리 가족처럼 셋방에서만 버틴 사람은 임대아파트라도 들어갈 수 있었다.

요즘은 서울 용산에 산다. 6년 됐다. 처음 4년은 개발 대상 지역으로 묶여 최근 파란을 겪고 있는 동네에 살았다. 흔하디흔한 편의점 하나 없었고, 간단한 학용품 하나를 사려고해도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나가야 했다. 유치원도 없고, 걸어서 다닐 만한 초등학교도 없었다. 당연히 역세권도 아니었다. 집값 상승의 요인이 되는 주거 및 교육 환경 수준이 제로에 가까운데도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다. 그나마 전셋값은 다른 지역보다 낮은 편이었는데, 개발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돌면서 역세권보다 높게 치솟았다.

용산에 산 지 2년쯤 됐을 때 남일당 참사가 벌어졌다. 버스로 세 정거장, 인근 초등학교 아이들은 걸어서 통학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벌어진 일을 나는 뉴스를 통해서 알았다. 이후의 진행 상황도 뉴스를 통해서 들었다. 동네의 평범한 이웃들이 그 일을 화제로 올리는 걸 본 적은 없다. 뭐랄까, 남일당은 일종의 금기어 같았다. 재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재개발을 반대하다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 침묵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공감을 바탕으로 한 두려움일까, 반감을 전제로 한 불편함일까. 어떤 날은 전자 같고, 어떤 날은 후자 같았다. 도심의 재개발은 빈민 지역의 강제 철거와 조금 양상이 다르다. 빼앗는 자와 빼앗기는 자가 어깨를 맞대고 산다. 아니 어깨를 맞대는 경우는 그래도 괜찮은 상황이다. 개발에 반대하는, 거주권을 보장하는 건물의 실소유주들은 타 지역에 살고, 개발이 되면 또 어디로 밀려가야 하나 전전긍긍하는 세입자들만 철거 지역에 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개발 대상 지역의 아파트에서 한 남자가 투신자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개발과는 무관한 투신이었다. 그는 국내 굴지 재벌기업의 몰락한 3세였다. 우울증을 앓았다고 했다. 한때는 그도 속해 있었다는 가문은 여전히 건재했고, 용산 지역 개발에도 깊숙이 참여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극히 사적이라는 그 죽음이 나는 개발주의의 이면에 대한 어떤 상징 같았다.

누군가에겐 본격 서막

그리고 어제 용산 개발이 끝내 부도를 맞았다는 기사를 읽었다. 아직 파산은 아니라는 발표도 나온다. 얼핏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부정은 있었으나 위법은 아니다’를 잇는 시리즈 같지만, 어쩌면 그 말이 용산 개발에 대한 가장 정확한 진단일 듯싶다. 그러니까 그 기사는 살고 있는 집 하나가 재산의 전부인, 임차인이 ‘하우스푸어’임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임대를 해야 했던 세입자들에게는 부도가 맞고, 몇 년의 세월쯤 너끈히 기다릴 수 있는 자본을 가진 투기꾼들에게는 오히려 자질구레한 개미 투자자들을 말끔히 정리하고 가는 기회의 순간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어쩌면 이번 사태는 부도가 아니라 망각 자본을 가진 이들의 본격적인 투기를 알리는 서막일지 모른다.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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