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버스’ 5차를 다녀온 며칠 뒤, 잠깐 만난 쌍용자동차의 한 해고자 얼굴이 어두웠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또 한 사람이 죽었단다.
고 김철강님. 열일곱 번째다. 서른다섯, 창창한 나이. 홀어머니와 30여 년을 함께 살았다고 한다. 식당일을 다니는 어머니의 휴대전화 단축번호 1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금쪽같은 내 새끼’.
전염병으로 17명이 죽었다면
2008년 쌍용자동차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뒤 결혼을 약속한 친구와 헤어졌고, 일자리를 찾으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고 한다. 쌍용차 11년 근무는 어딜 가나 오히려 지워야 할 불량의 낙인이었다. 1년 전에도 아파트 옥상 난간에서 뛰어내리려던 것을 어머니가 말렸다. 고인의 휴대전화엔 딱 1명의 친구 전화번호만 남아 있었다. 무엇이 그의 삶을 벼랑 끝에 서게 했을까?
2008년 77일 파업 기간 때 50여 일 차에 나왔다. ‘희망퇴직자’라고 한다. 희망퇴직자라니? 하루아침에 영문도 모른 채 잘리는 것이 ‘희망’이었을까?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자발적으로 무급 순환휴직, 복지기금 삭감을 통한 1천억원 기금 조성 등을 통해 순순히 고통 전담에 나선 순박한 이들이었다. 회생 대책을 내달라고 회사 살리기에 나선 착한 노동자들이었다. 그 ‘희망’이 공포스러워 “함께 살자”고, “해고는 살인이다”라며 차라리 공장 옥상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고립무원 속에서 인간 병기와 다름없는 용역깡패와 경찰특공대에 둘러싸여 전쟁 같은 50일을 버텼다. 극한 상황 속에서 결국 선택할 수밖에 없던 비인간적·굴욕적 상황이 ‘희망’이었을까?
2004년 쌍용차의 실제 대주주인 정부와 산업은행은 ‘해외자본 유치’라는 명목으로 국민의 혈세가 들어간 쌍용차를 헐값에 중국 자동차기업인 상하이기차에 매각했다. 신규 투자를 활성화한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상하이기차는 운영 책임은 지지 않고 핵심 기술만 빼갔고, 2008년 1월 경영권을 포기한 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보유 주식 51%는 그대로 살아 있는 상태였다. 전형적인 ‘먹튀 자본’의 수법이었다. 그다음, 무분별한 매각의 책임을 져야 할 정부와 산업은행은 다시 대규모 정리해고를 통한 구조조정 뒤 신규 투자자를 물색하겠다고 했다. 신규 투자자가 나선 이후 공적자금 명목으로 대규모 혈세를 지원하겠다는 것이었다. 2008년에만 노동자 3천여 명이 잘려나가야 했다. 먼저 잘려나간 하청·재하청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유령처럼 보이지도 거론되지도 않았다. 도대체 공적자금은 누구의 희망이 되었을까? 2년 뒤 경영 정상화를 통해 단계적 복직을 약속했지만 3여 년이 지난 지금, 단 1명의 노동자도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다. 노동자 가족들은 오히려 이 땅을 포기하고 저 하늘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고 있다.
그러곤 오늘 다시 저 외로운 자본의 감옥 안 85호 크레인에 고립된 김진숙의 말처럼, 만약 어떤 사회적 전염병으로 17명이 죽어갔다면 전체 사회는 난리가 났을 것이다. 만약 어떤 흉악범에 의해 17명이 테러를 당했다면 온 나라가 뒤집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은 건조하고 귀찮은 일상이 돼버렸다. 분명한 학살자가 있지만, 죽은 자들은 다만 의지가 약했거나, 근로 의욕이 없었을 뿐이다.
진짜 희망을 이야기할 때
이런 사회적 타살을, 학살을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묵인하고 방관할 것인가. 정작 나와 내 가족의 문제인데 언제까지 아직 내게는 칼날이 오지 않았다고 안심하고 있을 것인가.
10월15일, 미국 월가에서 시작한 ‘1%에 맞선 99%’의 국제행동이 한국에도 상륙한다. 사실 지난 몇 달간 ‘희망의 버스’가 달려왔던 길이기도 하다. 정리해고를 당해야 할 이는 수천만의 노동자가 아니다. 저 1%다. 지금 현재 불안정한 것은 저들의 무한 독점이지 우리가 아니어야 한다. 이제 저들만의 희망이 아닌, 우리의 진짜 희망을 얘기해야 할 때가 돌아오고 있다.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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