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패트릭 메일론은 ‘DIY’(Do IT Yourself)) 프로모터다. 한국과 아시아의 인디음악 팬 인맥을 활용해 여비와 숙식비를 최대한 아껴 진행한다. 그는 더 많은 한국의 인디밴드가 해외 공연을 펼칠 수 있게 도우려 한다. 한겨레21 이종찬
길은 항상 비유의 대상이 되어왔다. 기대하지 않은 사건과 사람과 조우한다는 점 때문에 길은 종종 설렘과 희망의 대상으로 묘사된다. 길의 이런 측면에 기댄다면, 지난 4월 미국·캐나다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서울소닉’에 대해 “길을 먼저 걸은 사람들”이라고 묘사해도 괜찮을 것 같다. 서울소닉은 한국 대중음악을 외국에 소개하려고 지난 4월 추진된 프로젝트다. 아이튠즈 등에 음악을 공급하는 에이전트 회사 ‘디에프에스비 콜렉티브’가 진행했다. 인디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 비둘기우유, 이디오테입이 투어에 참여했다. 지난 3월8일 출국해 4주 동안 캐나다 토론토, 미국 오스틴·뉴욕·샌디에이고·로스앤젤레스 등에서 모두 10차례 합동공연을 했다. 국내 인디밴드 최초의 장기 합동 외국 공연이었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은석씨는 “(이번 공연은) ‘성공적’이라는 의례적 수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험적 가치를 얻은 것이다. 요컨대 서울소닉은 우리 음악을 외국에 알리는 표면적 활동만큼이나 우리 음악인들이 외국을 알아가는 부수적 효과에 주목했고 그에 상응하는 결실을 얻었다. 우리 음악이 어느새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는 자신감과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는 현실감이 균형을 이루는 인식의 성숙을 체득한 것이다”( 2011년 4월12일치)라고 평했다. 연예기획사가 먼저 낸 길 옆에서 서울소닉은 그보다 좁지만 색이 뚜렷한 다른 길을 만들고 있었다.
‘수퍼컬러수퍼’의 ‘리드 오거나이저’숀 패트릭 메일론은 서울소닉이 낸 길을 넓히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그는 독립 프로모션 ‘수퍼컬러수퍼’(Supercolorsuper)의 ‘리드 오거나이저’(Lead Organizer)다. 공연을 기획하고 밴드의 교통과 숙식을 조정하며 홍보하는 일이 메일론과 공동대표 허지영씨의 몫이다. 수퍼컬러수퍼는 누리집에서 자신들의 공연기획에 대해 “한국의 여러 도시에서 이뤄지는 ‘디아이와이 투어 서킷’(DIY tour circuit)이며 헌신적인 팬과 가수들에 의해 운영된다”고 표현했다. DIY란 ‘두 잇 유어셀프’(Do It Yourself)의 약자다. 주최자가 스스로 준비하고 자력으로 진행하는 행사, 가사노동 등에 모두 사용하는 표현이다. 자신의 아시아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 인디밴드의 교통과 숙식을 해결하는 메일론의 DIY 프로모션을 ‘저자본 독립 프로모션’이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아 보인다.
미국과 한국 인디밴드 모두 그의 ‘조직’ 대상이다. 한국에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미국 인디밴드의 한국 공연을 기획한다. 한국 인디밴드의 외국 공연도 병행한다. 지난 8월16일 만난 자리에서 메일론은 “한국 젊은이들은 지금 잭 케루악 같은 반영웅을 갈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잭 케루악은 1950년대 미국의 반항적인 ‘비트 문화’를 대표하는 작가다. 문예창작(Creative Writing)을 전공했다는 30살의 미국 젊은이는 케루악의 소설 제목처럼, 스스로 미국과 한국 인디밴드가 교통하는 길이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부분의 영어사용국 젊은이들처럼 한국에 대해 아무 정보도 없이 단지 보수가 좋은 영어강사 일을 찾으려고 한국에 입국했던 2006년에는 갖고 있지 않던 꿈이다. 꿈은 길 위에서 생겼다. 미국 새크라멘토에서도 밴드 활동을 했지만 직업은 아니었다.
광고
수퍼컬러수퍼는 2009년 만들어진 뒤 지금까지 모두 32건의 미국 인디밴드 내한공연을 기획했다. 메일론은 ‘시그보르그’(Ssighborgggg)라는 노이즈 팝 밴드에서 활동하는 가수이기도 하다. 음악하는 친구들이 프로모션에 큰 도움이 됐다. 인맥이 자산인 셈이다. 그만의 독특한 DIY 프로모션은 인맥에서 출발한다. 대구·광주·부산에 형성된 외국인 커뮤니티가 한국에 온 미국 인디밴드의 공연을 돕는다. 공연은 커뮤니티 안에서 입소문과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흐르고 번진다. 비행기 여비는 공연 수익으로 충당한다. 물가가 싼 지방도시에서는 80여 명 정도만 관객이 와도 적자는 보지 않는다. 가장 최근엔 미국 인디밴드 ‘제프리 루이스’가 서울과 부산 등에서 공연을 마쳤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날, 제프리 루이스를 서울 홍익대 술집 ‘곱창전골’에 데려갔다. 메일론이 2006년에 한국 인디음악 팬이 된 것처럼, 그들도 케이팝과 다른 한국 음악을 즐기고 돌아갔다.
그는 “한국의 인디밴드가 전혀 다른 미학적 스타일만 보여준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비둘기우유, 야마가타 트윅스터 등 한국 인디밴드들이 이미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단다. 한겨레21 이종찬
영어강사로 한국을 찾은 2006년 메일론은 홍대 앞의 한 클럽에 갔다. 영어강사 친구들과 함께했다. “밴드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와, 이 친구들 정말 새로운데’라고 느꼈다. 포스트 록밴드였다. 미국에 있을 때 한국에 대해 전혀 몰랐다. (오히려) 마치 ‘사각지대’처럼 한국을 전혀 몰랐기에 오고 싶었다. 내 첫 외국 나들이 장소가 한국이다.” 그의 말투는 캐주얼한 카고 반바지와 야구 모자를 쓴 모습처럼 경쾌했고, 한 문장 한 문장 말할 때마다 ’카인드 오브’(kind of)나 ‘라이크’(like)를 마구 섞어쓰는 데서 자기가 알고 느끼는 것을 빨리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선한 조급함이 느껴졌다.
“한국 인디밴드의 외국 공연 성사는 아직 그리 많지 않다. 수퍼컬러수퍼를 2009년에 만들어서 활동한 지 이제 2년 정도 됐다. 디제이 은천, 야마가타 트윅스터 등 한국 인디 뮤지션 3명의 중국 상하이 공연을 기획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정말 놀라운 가수다. 중국 공연은 말하자면 기본적으로 ‘밴드 트레이드’(Band Trade)다. 수퍼컬러수퍼가 중국 밴드를 한국에 부르면 중국의 내 친구 프로모터가 한국 인디밴드의 중국 공연을 주선하는 식이다.” 미국 인디밴드의 내한공연 기획에 외국인 인맥이 도움이 된 것처럼, 중국 공연에서도 인맥이 중요했다. 메일론은 중국의 인디밴드 프로모터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그들이 한국 인디밴드를 중국에 데려간다. 환율 차이는 골칫거리다. 중국 위안화와 한국 원화의 환율 때문에 규모가 큰 밴드가 오고 가기는 아직 힘들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1인 밴드라 수월했지만 비둘기우유를 중국에 보내는 데는 훨씬 돈이 많이 든다. 독일에서는 독일 인디밴드가 해외 공연에 나설 경우 독일 정부가 비행기삯을 지원해준다고 들었다. 그런 시스템이 한국에도 생기면 좋겠다. 한국 정부가 적지 않은 돈을 음악산업에 투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인디밴드의 여비 일부라도 지원한다면 나머지는 공연 수익으로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광고
지금은 한국 인디밴드를 알리는 동영상 제작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실제 공연 기획에 앞선 사전 준비 작업에 해당한다. 최근엔 인디밴드 ‘와그와크’를 알리는 홍보 동영상을 만들고 있다. 그 동영상이 자연스레 번져가기를 희망한다. 메일론은 “내가 가진 큰 자산은 미국 음악 홍보회사의 메일링리스트”라고 말했다. 미국 공영 라디오 <npr> 등의 음악 저널리스트와 홍보회사 메일링리스트가 3천 개 정도 된다고 밝혔다. “그들이 한국 인디밴드의 동영상을 블로그를 통해 알리는 거다. 우리가 가진 장기 계획이다.” 꿈은 길 위에서 구체화 한다.
서울소닉은 한국 인디밴드를 북미에 알리려는 프로젝트였다. 정확히 그 반대의 작업을 메일론이 한국에서 하고 있다. 미국 인디밴드의 한국 내 인지도를 생각한다면, 메일론이 적자를 보지 않고 서울은 물론 대구, 부산, 광주 등 지방도시에서도 공연을 성사시키는 것에 놀랄 인디음악 팬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열쇠는 ‘외국인 커뮤니티’였다. “대다수 한국인은 영어강사와 같은 외국인들이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고 그 보이지 않는 선을 넘지 않는다고 느낀다. 한국인과 섞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당신의 공연 기획을 보며 외국인들이 인디밴드 공연에서 한국인과 함께 어울리는 게 인상적이었다. 음악산업적 측면에서 한국의 외국인들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나의 긴 질문에 메일론은 적절한 단어를 찾느라 잠시 호흡을 골랐다.
“가사 이해 못해도 분위기로 느껴”
숀 패트릭 메일론. 한겨레21 이종찬
메일론은 올해 초 있었던 매거진 블로그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 음악에 대해 “창조적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한국 음악팬들이 그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듯하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이미 크라잉넛 같은 인디 붐이 일었다”고 반문했다. 그는 크라잉넛과 옐로우키친은 물론 김정미도 알고 있었다.
“잘 안다. 크라잉넛, 옐로우키친 등을 다 안다. 그뿐이 아니라 한국에서는 1960~70년대에 김정미 같은 훌륭한 사이키델릭 음악인도 있었다. 한국에는 늘 재능 있는 음악인이 있었다. 언젠가 이들도 외국에서 새롭게 주목받을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서울소닉처럼 한국 밴드가 외국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느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폭발이라고) 말한 것이다. 미국에서 ‘심’(Seam)이라는 록밴드가 1990년대에 활동했다. 재미동포가 밴드를 이끌었다(박수영 등 한국계가 이끌었으며 미국인도 참여했다). 그들은 포스트 펑크 스타일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인 밴드’로 정체성을 내세우지 않았다.” ‘2만원’이나 ‘7만원’ 등 숫자 중심의 단순한 한국어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메일론은 홍대 술집 ‘곱창전골’에서 이들의 음악을 들었다. “(한국어를) 조금밖에 모른다. 그러나 고향 미국의 록밴드 가운데서도 노래 가사로 내 가슴을 치는 밴드는 거의 없다. (웃음) 데스록 같은 경우를 생각해보라. 분위기가 더 중요하다. 비둘기우유의 가사를 이해 못해도 그들의 분위기가 정말 좋다.”
그는 한국의 여러 인디밴드를 언급하며 그들을 정말 좋아한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결과만 보면, 1시간 남짓 진행된 인터뷰는 한국 인디음악에 대한 객관적 평가보다 팬심의 고백에 가까웠다. 그는 한국 인디밴드가 미국과 유럽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이나 슬로다이브를 연상시키는’ 비둘기우유, ‘장난기 가득한 솔로 아티스트’ 야마가타 트윅스터, ‘열정이 반짝이는’ 와그와크를 주목해야 한다고 메일론은 말했다.
“원더걸스 같은 케이팝은 아직 들어보지 않았다. 한 번 들으면 중독될까봐 겁나서 못 듣겠다. (웃음) 정말이다. 비욘세를 좋아한다. 사람들이 음악을 더 깊이 이해했으면 좋겠지만, 한편 음악을 그냥 즐길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원더걸스 같은 케이팝이 미국에서 유명해지고 미국 언론이 주목한다면 한국 인디밴드에게도 좋은 일이다. 케이팝 등 한국 주류 음악이나 인디밴드 모두 같은 한국 음악시장 안에 있다. 그 둘이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 음악시장은 작다. 안에서 적을 만들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비둘기우유 같은 한국 인디밴드는 어렵사리 일과 음악을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꿈을 지키고 있다.” 홍대 인디음악계에 많은 독립 프로모터들이 활동하고 있다. 국제적인 프로모션을 추진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메일론이 발견한 길이다.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는 “한국 젊은이들은 지금 잭 케루악 같은 반영웅을 갈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문제되지 않았다. 길은 삶이니까.” 잭 케루악이 (민음사 펴냄)에서 쓴 구절은 서울소닉과 메일론 둘 다에게 맞춤해 보인다. 길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자기가 걷는 길이 길이 된다는 생각에서 서울소닉과 메일론은 다르지 않다.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사진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npr>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영상] 이재명 또 위협당해…다가와 갑자기 겉옷으로 가격
곽종근 “대통령께 묻고 싶다, ‘의원 끌어내라’ 지시한 적 없냐”
최악 대형산불 7일째…지쳐가는 60대 고령 예방진화대원들
심우정 총장 재산 121억…1년 새 37억 늘어
‘20대 혜은이’의 귀환, 논산 딸기축제로 홍보대사 데뷔
산불 지리산까지…사망 26명 등 사상자 52명 역대 최다
산불이 갈라놓은 80대 잉꼬부부…“아내 요양원 안 보내고 돌봤는데”
‘이진숙 낙하산’ 논란 신동호 EBS 첫 출근 실패…‘임명무효’ 법정으로
‘여직원 많아 산불현장 보내기 어렵다’ 울산시장 성차별 발언
‘콘서트 선동금지 서약서 부당’ 이승환 헌법소원, 헌재서 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