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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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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단련시킨 단단하고 큰 마음

유성기업 노동자 남편과 함께 싸움 나섰던 이선주씨 전원 복귀 결정 뒤… 어두운 현실에서 더 빛나는 자각
등록 2011-08-25 18:13 수정 2020-05-03 04:26
» 지난 8월17일 오전 이선주씨가 충북 영동군 중앙로터리에서 유성기업 파업노동자들의 전원 복귀가 받아들여져야 한다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오후 법원의 전원 복귀 중재안이 회사 쪽에 받아들여져 유성기업 조합원들은 전원 복귀하게 됐다. 한겨레21 김경호

» 지난 8월17일 오전 이선주씨가 충북 영동군 중앙로터리에서 유성기업 파업노동자들의 전원 복귀가 받아들여져야 한다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오후 법원의 전원 복귀 중재안이 회사 쪽에 받아들여져 유성기업 조합원들은 전원 복귀하게 됐다. 한겨레21 김경호

“잘 자고 있으라고 아이들에게 인사하고, 다녀오마.” 야간근무를 나간 남편에게서 새벽에 전화가 왔다. 직장폐쇄가 되었다고 했다. 직장폐쇄가 뭐냐고 묻자 남편은 회사가 잠깐 문 닫는 건데 금방 괜찮아질 거라며 전화를 끊었다. 유성노조 영동지회 가족대책위원회 이선주(37)씨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쌍용자동차나 한진중공업 등 세상의 시끄러운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노조와 관련된 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 남편에게 말한 적도 있다. 새벽의 그 전화 이후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던 공권력 투입의 무서운 화면들만 떠올랐다. 남편이 언제 험하게 끌려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일주일 남짓 지나 체중이 3kg 이상 빠졌다. “죽을 것 같았어요. 아빠 보고 싶다고 보채는 아이들 셋을 다 데리고 공장 앞으로 찾아갔죠.”

아이 둘러업고 나선 1인시위

8월의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날, 충북 영동 중앙사거리의 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 천막에서 이선주씨를 만났다. 얘기를 막 시작하려는데 막내 보경(2)이가 울어댔다. 달래도 아이의 울음이 그치지 않자 엄마가 익숙하게 젖을 꺼내 물렸다. 두 아들 정민(6)과 나경(4)이가 더운 천막 안에서 엄마 곁을 맴돌았다. “아이들과 아빠를 보러 찾아간 날, 공권력이 투입돼서 조합원들이 끌려나오는 걸 봤어요. 아이들을 차 뒤로 숨겼죠. 놀랄까봐 보지 못하게. 너무 속이 상해 울기도 많이 울었고, 남편에 대한 안쓰러움도 컸어요. 연행됐다 무사히 집에 왔을 때는 정말 다행스럽고 좋았어요. 사랑이랄까 오래 잊고 지내던 그런 단어들이 새삼스레 생각나더라고요.”(웃음)

결혼 전 연애 때 남편의 유성기업 입사를 선주씨는 반대했다. 주야근무에 용광로 앞에서 쇠를 녹이는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에 헤어지자고까지 하며 많이 싸웠다. 배운 게 없으니 선택의 여지도 크게 없었다. “결혼생활이 자리잡을 때까지 5년만 다니자 하고 들어갔는데, 아이들이 생기고 키우다 보니 지금까지 15년을 이어오게 됐어요. 이번 일이 있기 얼마 전, 남편에게 그때 내가 반대해서 유성이 아닌 다른 곳에 다녔으면 이만큼도 못 살았을지 모르는데 고생하며 지금까지 다녀줘서 고맙다고 했어요.”

월급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합의 사항 이행을 요구하는 적법한 절차를 통한 파업이었는데 느닷없이 연봉 이야기가 언론에서 마구 터졌다. 전 국민을 상대로 한 라디오 연설에서 연봉 7천만원을 받고도 불법파업을 한다며 대통령까지 나섰다. “지방의 중소기업 노사 문제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서 높은 분들이 그렇게까지 친절하게 관심이 많을 줄 몰랐어요.” 월급을 받지만 시급제인 남편은 평일 잔업 2시간과 주말 특근은 빠지지 않고 무조건 한다. 그게 돈이 되기 때문이다. 지각도 조퇴도 하지 않는다. 그래야 시급이 줄지 않는다. 주야를 그렇게 일해야 15년 근속의 남편이 한 달에 200만원 좀 넘게 받는다. 농성장이 충남 아산에 있어 영동은 조용했다. 지난 6월4일 선주씨는 아이를 업고 왜곡된 언론 보도와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에 대해 그게 아니라고 쓴 피켓을 들고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니는 로터리에서 1인시위를 시작했다.

» 이선주씨는 “이번 일로 세상 공부를 하게 된 만큼 단단한 마음가짐이 생겼다”며 “아이들에게도 바람직한 부모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가족대책위원회 천막에서 이선주씨를 비롯한 유성기업 노동자의 가족들이 모처럼 밝게 웃고 있다.

» 이선주씨는 “이번 일로 세상 공부를 하게 된 만큼 단단한 마음가짐이 생겼다”며 “아이들에게도 바람직한 부모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가족대책위원회 천막에서 이선주씨를 비롯한 유성기업 노동자의 가족들이 모처럼 밝게 웃고 있다.

- 주간2교대제 합의 불이행이 쟁점 아닌가.
= 밤에 잠 좀 자자, 주간2교대를 하자 했더니 언론에서 연봉 7천만원 건을 터뜨렸다. 여론이 일었고 7천만원에 대해 해명하려고 온힘을 쏟게 되면서 야간노동 문제가 흐려질 뻔했다. 회사와 주간2교대 합의 이전에 노조에서 가정에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회사에서 실시한 설문인 줄 알았는데 이번 일로 노조에서 했다는 걸 알았다. (웃음) 주간2교대제를 시행하면 잔업이 없어지기 때문에 시급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도 아내들이 모두 동그라미를 쳤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건강이 우선이라는 공감이 있었다. 10원 한 푼 손해 없이 주간2교대제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 앞으로 그 문제를 합리적으로 합의해가자는 것이었다. 2011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합의했는데, 지금 회사에서 가정으로 보내는 공문에는 ‘현대가 시행할 경우’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현대 하청인 유성의 선(先) 시행은 용납할 수 없다는 여러 세력들이 개입돼 유성 노사의 순수 합의가 오염되고, 탄압도 커지고, 왜곡도 심해지고 있다. 사장도 손해가 막심할 것이고, 자신의 힘이 아니라 다른 힘에 의해 몰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임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가정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는 않았을 듯하다.
= 주간2교대제를 할 경우 잔업이 없어지기 때문에 임금이 많은 분들은 50만∼100만원까지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그걸 감수한다는 게 쉽지는 않은데도 주간2교대제를 해야 한다고 할 만큼 야간노동은 생명이 위협받는 생활 방식이다. 남들은 쉽게 얘기한다. 운동하면, 음식 잘 챙겨먹으며 관리하면 괜찮은 거 아니냐고. 참 서러운 말이다. 그게 싫으면 그만두라고도 함부로 말한다. 좋은 직장이든 그렇지 못한 직장이든 누구도 쉽게 옮길 수는 없다. 열악하다고 관두면 그다음은, 힘들어서 관두면 그다음은 무엇이 남고 어떻게 살아가나. 남의 얘기니까 쉽게 하는 것이다.

약 먹기로 시작하는 하루

40살이 넘어야 성인병을 가지는 게 일반적인데, 유성에 다니는 30대 노동자들은 모두 약을 달고 산다. 남편도 30대 초반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수록 어떤 합병증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이 항시 있다. 남편이 일어나면 큰애가 ‘아빠, 물’ 이러며 습관처럼 약 먹을 물을 떠다 준다. 아이에게 약 먹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아빠로, ‘하지 마, 뛰지 마. 조용히 해, 차라리 나가’라고 말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기억될 걸 생각하면 참 그렇다. 야간근무를 한 남편이 잠을 자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주고 건전지는 다 뺀다.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사주긴 하지만, 낮에 자려면 사소한 소리에도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지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 남편은 지금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가.
= 남편은 평조합원이다. 외향적이거나 사회성이 좋거나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처음에 가족대책위(가대위)가 구성되면서 좋았다. 엄마들이 이렇게 나설 만큼 당연하고 정당한 일이어서 금방 해결될 거라고 믿었다. 복귀자들이 생기자 가대위 안에서도 집에만 있는 분들이 있다. 가까운 사람들이 개별 복귀할 때, 남편은 10년 동안 끊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은 남편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오히려 남편은 자기한테도 말하지 못할 그네들 사정이 있을 거라며 화내는 나를 위로했다. 전엔 잘 몰랐는데 이번 일로 가까이에서 보니 남편이 참 괜찮은 사람이더라. (웃음) 오래되고 깊은 인간관계까지 집요하게 망가뜨리는 회사 쪽이 밉고 남편이 안쓰러웠다. 지금은 집행부의 수배자들을 수행하느라 조계사에 있다.

- 현장에 복귀하는 사람들을 볼 때 어떤 심정인가.
= 생활고나 아이들 때문에 남편의 복귀를 종용하는 아내들을 전혀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미 지옥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곳으로 남편을 밀어넣는 것이 안타깝다. 1년이 된 것도 아니고 채 100일도 되지 않은 싸움이다. 지금 힘들어서 정년까지 몇십 년이 좋아진다면 가치 있는 시간이다. 복귀하는 조합원 아내들이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는데, 나한테 미안해할 게 아니라 남편에게 미안해하라고 했다. 싸우는 게 뭔지도 몰랐지만, 나는 젖먹이 셋째가 없었으면 더 열심히 했을 것이다. 자식 같고 조카 같은 용역들 앞에서 ‘나는 개다’를 세 번씩 외치고 현장으로 선별 복귀시키는 게 사람이 할 짓이냐. 그런 지옥 구멍으로 애아빠를 집어넣을 수는 없다. 그런 걸 알면서도 들여보내는 아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회사 쪽 손을 들어준 법원 조정안

선주씨는 아빠 언제 오냐며 아이들이 울 때 가장 힘들다고 했다. 자신보다 더 빨리 파업가를 배워 부르는 아이를 보며 처음에는 신기하다고 웃었는데, 이런 상황이 아이들에게 계속돼도 괜찮은 건지 불쑥불쑥 생각이 많다. 세상이 이럴 수가 있나, 이렇게 몰라줄 수가 있나 따지고 싶고, 묻고 싶고, 화가 나고 원망도 생긴다. “가대위 활동을 하며 단체로 입은 티셔츠 한 장 때문에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대놓고 무시하는 경험을 많이 당했어요. 나는 몇 번 당하는 일이지만 여태껏 십수 년 동안 남편이 그런 대우를 받으며 생활한 걸 알게 되니 더 가슴이 아프죠.”

지난 8월16일 노조에서 제기한 직장폐쇄효력정지 가처분신청 3차 심리가 열렸다. 농성 중인 미복귀자 전원 복귀가 포함된 6개 항의 법원 조정안을 노조가 받아들였다. 업무 복귀 순서는 회사 쪽이 정하고, 8월19일부터 노조원들의 노조사무실 출입, 노조원 200명 이상의 불법행위 금지 및 기존 복귀자 및 관리직과 화합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의 서약서 작성, 8월22일까지 노조원 최초 복귀와 함께 임금은 최초 복귀자와 동일 지급, 회사 쪽이 조정사항을 어길 경우 1일 500만원 지급, 소송비용과 조정비용 각자 부담 등의 조정 내용이다. 법원은 노조의 직장폐쇄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은 집요하게 조정 의지를 보인 반면, 회사 쪽의 업무방해, 공장출입금지 가처분신청은 조정 없이 일사천리로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노사 양쪽의 가처분신청은 같은 재판부에서 진행됐다.

선주씨의 남편 김광필(38)씨는 아직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있다. 얼마 전까지 간부들이 단식을 하는 통에 곁을 지키던 남편도 무얼 제대로 챙겨먹기 어려웠다. 당뇨가 있는 남편은 단식에 동참할 수도 없었다. 10개월 된 막내 딸아이의 이빨이 이제 막 올라왔다. 남편은 딸아이가 보고 싶다며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며 지금쯤 어디 가까운 개울가에서 텐트라도 치고 휴가를 보낼 시기인데 미안하다고 했다. “항상 불안하고 조바심이 나죠. 그래도 남편에게는 뒤에 숨지는 말라고 했어요. 우직하고 말수는 적지만 다감한 사람인데 친구가 용역에게 맞아 피 흘리는 모습을 본 심정이 어땠겠어요. 그래서 제가 먼저 말했어요. 우리 비겁하지는 말자고.”

회사 쪽 손을 들어준 조정안 결과에 대해 선주씨는 이렇게 말했다. “전원 복귀 중재안 합의 소식을 듣고 눈물이 쏟아졌어요. 그러면서 가시적 성과물이 없는 건 아닌가 허탈하고.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걱정도 많지만 전원 복귀가 결정돼서 일단은 행복하죠.” 전원 복귀를 제외한 나머지 문제는 고스란히 노조의 과제로 남았다. 주간2교대제 합의 이행, 징계위에 회부된 121명의 징계 여부, 구속되거나 수배된 6명의 신변, 부상자의 치료비, 전환배치 등 쉬운 문제가 한 가지도 없어 보인다. “이번 일을 계기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고 세상 공부를 하게 된 만큼 단단한 마음가짐이 생겼어요. 아이들에게도 바람직한 부모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기고요. 관심 가져주신 분들이 있어서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싸움이 시작된 곳으로 복귀

유성기업 조합원들은 지치고 찢긴 채 싸움이 시작됐던 곳으로 복귀하는지도 모른다. 정당하고 합법적인 모든 절차를 동원했음에도 탄압은 집요하고 거셌다. 그럴수록 이선주씨처럼 더 크고 건강한 자각을 하는 사람들도 늘기 마련이다. 주야를 바꿔가며 수십 년씩 노동하는 사람들의 외침을 많은 사람들이 들었고, 그 심각성에 동의했다. ‘노동자는 올빼미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유성 노동자들을 지켜보는 그들의 눈이, 낮보다 밤에 밝은 올빼미의 눈처럼 부당하고 어두운 현실에서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다.

영동=글 신수원 제1회 손바닥 문학상 당선자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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