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여섯 시. 하늘이 어둑해진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바람이 쌀쌀해지는 시간이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 놀이터. 기타를 멘 한 남자의 그림자가 땅에 비친다. 휴대용 앰프도, 마이크도 없이 시작되는 기타 연주. 경쾌한 음악 소리가 작지만 단단하게 저녁 하늘에 울려퍼진다. 남자가 노래를 시작한다.
어쩌면 정말 굉장한 일이 내게도 왠지 생길 것만 같아
난 내가 괜히 이 행성에 있는 것 같지가 않은걸
난 내일을 생각해. 난 내일을 생각해
난 내일을 생각해. 정해진 건 없어
초조해하지 마. 더 재미있어질 거야
( OST 중 )
그, 거리의 가수
길을 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춘다. 많은 수도 아니고 열광적인 반응도 아니지만 남자의 노랫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열기가 느껴진다. 오랜만에 찾은 친구 이도영(30)은 그렇게 홀로 거리공연을 하고 있었다. 두 번째 만인보를 맡고나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내가 잘 아는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고교 동창인 녀석이 생각난 것은 요즘 유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때문이다. TV 속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열창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문득 옛 추억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장기자랑 때마다 노래를 하고, 가수가 되겠다며 자작곡을 들려주는 친구가 한 반에 꼭 한 명씩은 있었다. ‘그때 가수가 꿈이던 녀석은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이 궁금증이 이번 만인보의 시작이었다.
1시간 뒤, 친구의 공연이 끝났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놀이터에 퍼진다. 수고했다며 음료수를 사다주는 행인도 있었다. 친구는 일일이 인사를 한다. 우리는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원래는 2시간이고 3시간이고 계속 노래하는데 오늘은 인터뷰 때문에 일찍 끝냈다며 웃는다. 거리에서 꿈을 이루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보자 처음의 궁금증은 ‘어떻게 거리공연을 하게 되었을까?’로 바뀌었다. 우리는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동안 음악을 떠났었다고 하는 게 맞을 거야. 아니 생각해보면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음악을 대한 적이 없었어. 말 그대로 그냥 꿈, 장래 희망이었지. 생각해봐 꿈이란 게 얼마나 막연한 거야. 그 막연한 부분을 깨고 진지하게 음악을 했어야 하는데 학창 시절에는 그러지 못했어.
고교 시절 이후로 계속 음악을 했느냐는 질문에 녀석은 반성부터 했다.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녀석이 대학교에 가서 밴드부 활동을 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도 참 후회하는 부분인데 나한테 밴드부는 그냥 취미였어. 대학가요제라도 나가자 뭐다 거창하게 이야기해도 그건 술자리에서나 하는 소리지 내 실력이나 정신상태로는 현실성이 없었거든. 또 악기 조금 다루고 노래 조금 할 줄 알면 여자들이 멋있다고 치켜세워주니까. 소개팅 같은 거 하면 노래방에 가서 인기 독차지하고. 쉽거든. 음악도 연애도. 겉멋이 잔뜩 들어가. 그냥 그런 맛에 빠져 가수가 되겠답시고 설쳤던 거지. 몇 년 전에 한 친구가 그러더라고. 넌 하긴 하는데 하는 척만 한다고, 그래서 진짜 가수가 못 되는 거라고. 할 말이 없더라고. 맞는 얘기거든.
게임처럼 리셋할 수 없는 삶
안 되는 일을 멀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끼던 기타는 장롱 속으로 들어갔다. 취미 외에도 중요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학점을 따고,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야 했다. 졸업을 하자 친구는 자연스럽게 가수의 꿈을 접었다.
나는 내 인생이 특별하다고 생각했거든? 왜 자동차 탈 때 아무도 자신이 사고 날 거라는 생각은 안 하잖아. 자신만은 사고나 불행에서 예외일 것만 같은 말도 안 되는 막연한 믿음 같은 거. 그런 게 있으니까 겁도 없이 음주운전도 하고 그러잖아. ‘괜찮아, 괜찮아’ 하니까 정말 괜찮을 줄 알고. 근데 그거 아니거든. 사고 나면 죽는 건 모두 똑같으니까. 88만원 세대니, 청년 백수니 뉴스나 신문 볼 때마다 그냥 그런가 보다… 곧 다가올 미래였는데도 난 그냥 ‘그런 게 있나 보다’ ‘나하고는 상관없는 얘기지’ 했어. 왜? 근거는 없어. 그냥 막연하게 믿는 거야. 난 잘될 거야…. 근데 그거 아니야. 막상 졸업하고 보니 날 위해 준비된 자리 따위… 없더라고. 아, 나도 별수 없구나. 그냥 평범한 놈이구나. 그냥 20대 백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구나. 사실 당연한 거거든. 공부 안 하면 시험 빵점 맞는 거. 그게 인생 법칙인 거. 대학교랍시고 졸업장만 땄지 뭘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어차피 적성이고 뭐고 수능 점수에 맞춰 들어간 학교였고. 당연히 졸업하고 백수밖에 할 게 없는 거지. 도대체 내가 뭘 믿고 그렇게 까불었지? 알 수가 없더라고.
아무리 후회해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친구는 직장 찾는 것을 포기하고 동네에서 과외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세 탕씩 뛰었다. 가르친 아이들의 성적이 오르자 학부모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회사원 월급 부럽지 않게 돈을 벌었다. 이렇게만 유지되면 굳이 취직을 안 해도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도대체 사는 재미가 없었다. 녀석은 인생이 지루했다고 말했다.
그때 드는 생각은 ‘정말 다들 이렇게 사나?’였어. 꿈도 없이, 절대적인 것도 없이, 이거 아니면 죽음이라고, 이거 아니면 사는 의미가 없다고 할 만한 것도 없이. 일하고, 돈 벌고, 먹고, 자고, 싸고, 다시 일하고.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는 거고. 정말 다들 하루이틀도 아니고 몇십 년씩,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사는 건가? 이게 바로 어른들이 숨겨온 이 세계의 정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사는 게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고. 그렇게 몇 년 지나니까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되더라고. 도대체 왜 이렇게 됐지? 내 인생이 특별하다고 믿었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렇게 뻔하고 의미 없는 인생을 살게 된 거지? 맞아. 너도 알고 있듯이 바로 음악이었어. 내 꿈인 그것.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손에서 놓은 순간부터 내 인생도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뭘 바꾸기엔 모든 게 너무 늦어버린 거야. 우리 벌써 서른이니까. 이제 와서 음악을 다시 시작해?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 길을 잘못 들었는데 되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왔고, 그렇다고 멈춰서 있을 수는 없고, 그래서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인생을 게임처럼 리셋할 수는 없잖아.
색소폰 소리가 인생을 바꾸다
친구는 이렇게 생각했다. 자신은 계속 과외를 뛰며 먹고살게 될 것이라고. 그러다 운이 좋으면 잘나가는 학원 강사가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인기 강사가 되어 매스컴도 타고 문제지도 집필하고.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때로는 작은 계기가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녀석의 인생을 바꾼 건 한 색소폰 소리였다.
길을 가는데 어디서 색소폰 소리가 들려오더라고. 보니까 한 아저씨가 길거리 연주를 하고 있었어. 대학로나 홍대에서 거리공연은 흔히 볼 수 있으니까. 별로 새로운 풍경도 아니고 놀랄 일도 아닌데 이상하게 색소폰 소리가 너무 아름답게 들리는 거야. 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뭘 기다리고 있지? 내 인생의 주인은 난데 도대체 지금까지 누구의 허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누구는 철이 없다고 하고, 누구는 세상을 모른다고 하고, 누구는 미쳤다고 하겠지만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지? 행복하게 살자. 하고 싶은 걸 하자. 다른 건 다 버려버리자.
꿈은 깨어나야 하는 것이 아니다. 꿈은 손에 쥐고 현실로 가져와야 하는 것이다. 친구는 그길로 모든 과외를 그만두었다. 술, 담배, 운동, 소모적 인간관계 등 음악을 방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끊었다. 장롱에 치워두었던 기타를 다시 꺼냈다.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노래 연습을 하고 길거리 공연으로 사람들의 평가를 받았다. 돈이 떨어지면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알바를 해서 생활비를 충당했다. 음악, 꼬박 1년 동안 친구의 인생에 다른 단어는 없었다.
고등학교 때도 가수가 꿈이긴 했지만 지난 10년보다 요 1년 사이에 음악에 대해 더 많이 배운 것 같아. 처음에 말했듯 그땐 가짜 노력이었고 지금이 진짜니까. 한 1시간 정도 연습했겠지 하고 시계를 보면 2~3시간이 훌쩍 지나 있어. 길거리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검승부거든. 갈 길 바쁜 사람들의 발을 붙잡아두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한 번만 실수해도 금방 자리를 떠버리거든. 야외에서 기타하고 목소리 하나로 승부하니까 무슨 장비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 반응을 보면 내 실력을 바로바로 알 수 있어. 어떤 날은 사람들이 내 노래를 정말 좋아해줄 때가 있어. 자리를 지켜주고,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고. 그럼 정말 행복한 거야. 아, 별 볼일 없는 내 인생도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구나. 내 노래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구나.
친구는 행복해 보였다. 고교 시절, 우리는 종종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소설가가 꿈이었고 녀석은 가수가 꿈이었다. 녀석과 나는 서로 꿈을 꾸었다. 그것은 현실에서 두 번이나 멀어진 아득한 장래 희망이었다. 자습 시간에 우리는 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었다. 녀석이 간밤에 작곡한 곡이었다. 그때 우리는 모든 것이 미숙했다. 나는 그 어색한 곡에 어색한 작사를 덧붙이곤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우리의 추억도 끝났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전공이 달라지고, 관심사가 달라지자 녀석과 나는 뜸해졌다. 그리고 몇 해 동안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 채로 이렇게 나이 서른의 아저씨가 되었다. 앞으로 무슨 노래를 부르고 싶으냐는 물음에 친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고 대답했다. 요란하고 기교 있는 노래보다는 소박하고 진실한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다. 마침 카페에서 ‘나는 가수다’ 음원이 흘러나왔다. 나는 녀석에게 스스로 가수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녀석은 반은 맞고 반은 아니라고 했다.
가수가 되는 데 무슨 허락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 내가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데 그걸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데? 하지만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 나는 가수야. 하지만 아직 프로는 아니야. 실력이 많이 부족하니까. 길거리 공연으로 가수가 되는 꿈을 이루었다면 지금은 프로 가수가 되는 게 꿈이야.
지금 행복하면 그만인 것을
녀석은 가수다. 그에게 음악은 이미 삶의 절대적인 이유가 돼 있었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친구는 새 시즌을 준비 중인 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예선을 통과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며 친구의 미래를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음반을 내고 TV에 얼굴을 비치는 유명한 가수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대로 행복한 길거리 가수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음악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미래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현재가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을까? 미래는 열려 있다. 친구의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음악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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