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항의성 자살’이 성공하는 예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약 절반에 불과하다. 이는 여성의 시도가 진지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사회적’ 약자인 여성(여성이 꼭 ‘개인적’ 약자인 것은 아니지만)이 늘 불만과 항의의 주체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배경으로 흘리는 것이다. ‘죽음의 굿판을 집어치워라!’(김지하·1991)는 글처럼, 혹은 130여 명의 고통받는 불치병 환자들을 안락사시킨 잭 키보키언이 결국 정죄받아 8년간 복역했듯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행위마저 불만과 항의의 수법으로 선택되는 것에서 거리낌이나 도덕적 부담이 생기는 일도 일견 당연해 보인다. 그러므로 사회적 약자와 방외자, 그리고 특정한 불평등과 핍박, 혹은 곤경에 처한 이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에도, 그 선택지의 타당성은 자주 의심을 사고, 그 배경이 되는 사안과 ‘기원’은 잊힌 채 자살이라는 ‘풍경’만이 소문의 미디어 속에서 확대재생산되곤 한다. 장자연씨의 죽음도 풍경화, 가십화, 미디어화, 심지어 성애화한 대목이 있지만, 그의 항의는 한 사회의 전체 구조와 체계를 문제시할 정도로 절박한 데가 있다.
그녀의 지명당한 자살
그런가 하면 자신의 이념이나 원칙, 체면이나 위신, 긍지나 자존심을 일관되게 유지하려는 노력 속에서 마지막으로 선택되는 행위가 이른바 ‘고귀한 죽음’(noble death)인데, 비교적 남자들이 많은 편이다. 남녀 사형수들이 형장에서 보인 최후의 모습과 언행을 통해 일반화된 차이에 따르면, 여자들의 반응은 매우 현실적인 데 비해 남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여전히 (일종의) ‘허영’에 먹혀 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우선 세속의 체계와 제도에 여자와 남자가 다르게 개입해온 방식과 정도를 살펴야 하는 대목이다. 가령 세네카나 예수부터 이순신이나 헤밍웨이를 거쳐 근년의 노무현에 이르기까지, 넓은 의미의 고귀한 죽음은 대체로 영웅적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긴다. 이들이 당대 체계의 좌표 안팎으로 다양하게 운신하고 지향하긴 했지만, 어쨌든 당대의 권력 체계 및 제도에 깊숙이 간여한 인물들이며, 따라서 그들의 자살 및 죽음을 행위의 종결이 아닌 또 하나의 행위로 여기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장자연씨의 자살 같은 행위에는, (남성 권력자·권위자의 경우처럼) 기성의 권위나 이념, 원칙이나 품위를 사후에까지 지키려는 동기가 작동하는 게 아니다. 실존주의적 행동주의자 헤밍웨이는 권총 자살을 통해 또 하나의 실존적 행위를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연예기획자들과 그 로비 대상인 사회 권력자들의 사이에 낀 장자연의 자살은 능동적으로 선택했기보다 차라리 피동적으로 ‘지명’(指命)당한 것에 가깝다. 그러므로 장씨의 자살은 화룡점정처럼 선택적으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마지막) ‘행위’가 아니라, 외부에서부터 그의 삶을 침탈하고 파괴한 불의의 ‘사고’인 것이다. 헤밍웨이나 노무현의 자살에는 최소한 이웃과 타인들이 왈가왈부할 수 없는 ‘극히 사적이며 품위 있는’ 무엇을 찾을 수 있겠지만, 장자연씨의 자살에서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왈가왈부하고 시시비비를 따지며 간섭해야 하는 ‘극히 공적이며 비참한’ 무엇이 은폐되어 있다.
당신을 향해 내민 최후의 손
그저 팬들의 사랑을 받는 매력적인 연예인을 꿈꾸었을 뿐인 장자연의 인생에는 애초 ‘자살’ 같은 것이 틈입할 여지나 낌새가 없었다. 그는 고귀한 죽음을 선택할 아무런 배경도 이유도 없었다. 그러므로 장씨의 자살은 실질적으로 타살이다. 자살 형식을 빌린 사회적 약자의 타살은, 고귀한 죽음의 주체처럼 그 욕망이 자신을 향한 게 아니다. 그는 침묵하는 이웃들을 향해 절망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김영민 철학자·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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