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도 한국 영화는 잘나갔다.
1월 한국 영화 관객은 797만 명이랬다. 외화 관객 수 428만 명의 거의 두 배 수준이었다. 지난해 통계를 봐도, 한국 영화 관객 수는 외국 영화를 본 관객이랑 어슷비슷했다. 자국 영화만 일방적으로 편식하는 인도와 미국은 일단 논외로 치자. 자국 영화 지분만 보면, 한국은 중국·일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화 강국’이다. 이런 한국 영화의 힘은 어디서 왔을까? 이 자리에서 샅샅이, 낱낱이 풀어본다. 결론은 캐릭터와 스토리, 우연, 반전의 힘이었다.
“예전에 말이야, 최영의라는 분이 계셨어, 최영의”로 시작하는 명대사의 주인공을 기억하는가. 영화 에서 ‘무데뽀 정신’을 소리 높여 외치던 배우 송강호의 존재감은 스크린에 차고 넘쳤다. 그 영화의 주인공이 누군지 기억하는가? (한석규씨, 미안합니다.) 오히려 단역인 그의 입담에 감격하는 영화팬들, 많았다. 그의 대사를 통째로 외워 개인기로 구사하는 아이들도 여럿이었다. 현실 어디에서 그런 캐릭터를 만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분명 있었다. 그분은 공개된 자리에서 “긴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쏠까 말까 묻지 말고 먼저 타격하고 후에 보고하라”고 하셨다. 대담무쌍한 멘트는 영화 속에서만 나오지 않았다. 청문회에서는 “추가 도발하면 공중폭격으로 대응하겠다”라는 전쟁 불사의 발언도 불사하셨다.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캐릭터의 힘이란, 이런 거다.
도둑이 들었다. 당최 서툴렀다. 범행 현장에서 주인에게 덜미가 잡혔다. 물건도 훔치지 못했다.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에도 찍혔다. 신문들은 범행을 대서특필했다. 도둑의 신분도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마침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CCTV 영상 분석과 지문 감식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물적 증거 분석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경찰은 도둑의 신원을 도저히 파악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건의 미궁 속으로 경찰만 혼자 쑥쑥 들어갔다. 그 사이 도둑의 ‘수뇌’는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다”고 국회에서 고개를 숙였다. 뭐에 대해 송구한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영화도 스토리가 앞뒤가 맞아야 장사가 된다고? 이런 스토리를 직접 보고 자란 우리 한국인들의 상상력은 뛰어날 수밖에 없다. 스토리의 힘이다.
높은 분이 과거에 사업을 하면서 주가조작과 횡령에 참여했다고 주장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논란을 피해 미국 땅에 오래 머물면서 한국에 오지 않았다. 또 높은 분이 서울 강남의 금싸라기 땅을 차명으로 소유했다는 의혹의 진실을 알고 있다는 전직 고위 관료도 있었다. 그도 공직을 물러난 뒤 오래 미국에 머물렀다. 두 사람이 불현듯 하루를 사이에 두고 귀국했다. 둘 다 검찰에 제 발로 들어가 조사를 받았다. 또 주가조작 건에서 높은 분을 변호했던 사람도 며칠 뒤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법무장관은 이들의 귀국에 “사전 조율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따르면, 우연의 일치일 뿐이었다. 영화보다 더 극적인 우연이다.
“교회가 국민 통합의 가교가 되라”고 당부하셨다. 최근 논란을 낳고 있는 외국 채권을 두고 한 말씀이었다. 기도회에서 그는 바닥에 직접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국가 지도자로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두 손을 맞잡은 그의 모습에서 국민통합을 간절히 바라는 지도자의 진심이 흘렀다. 그런데, 하필 반전이 있었다. 아니, 또 한 번의 우연일지도 모른다. 그러길 바란다. 높은 분이 다니는 교회의 비리를 취재하던 방송 제작진이 있었다. 그가 무릎을 꿇기 하루 전, 제작진의 절반 이상에게 인사 발령이 났다. 인사를 원하지 않은 제작자들이 나갔고, 인사를 원치 않던 다른 이들이 제작진으로 합류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장면은 매일 이렇게 펼쳐진다. 한국 땅에 살고 있는 영화 제작자들은 복이 터졌다. 소재가 넘친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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