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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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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치고 날치고!

등록 2010-12-17 14:24 수정 2020-05-03 04:26
음모론.

피자와 치킨은 벌이 잃은 가장이 식솔을 이끌 유일한 탈출구였다. 지난 월드컵 때는 없어서 못 팔기도 했다. 아예 수화기를 내려놓을 만큼 주문이 밀려들었다. 그렇게 나아지나 했다. 그 틈을 이마트가 먼저 파고들었다. 1만1500원짜리 피자의 탄생이다. 무수히 욕도 먹었다. 그런데, 욕한 입으로 피자도 많이 먹는다. 동네 피자집이 망해가도, 먹는다. “대기업의 횡포”라고 말하고 뒤돌아서서 먹는다. 매장별로 하루 평균 300판 이상이 팔려나갔다.

남은 건 치킨이었다. 지난 12월9일, 누군가는 이날을 ‘계(鷄)천절’이라고 이름 지었다. 5천원짜리 치킨이 나온 것이다. 이름하여 ‘통큰치킨’, 롯데마트였다. 그 가격에 다들 놀랐다. 중소상인들은 몰려가 항의했다. 300마리 한정 수량이 전부 동났다. 피자와 달리 반응은 즉각적이다. 빨리 가야 닭을 살 수 있다는 의미에서 ‘어얼리어닭터’, 마트와 대중교통으로 5분 거리에 있는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닭과 역세권을 합한 ‘닭세권’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이 대형마트 일대를 ‘버뮤닭 삼각지대’라는 말로 명명했다. 피자집이 문 닫듯, 마트 일대의 치킨집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것이라는 씁쓸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치킨 판매는 언제부터 기획된 것인가. 이 대기업은 “6개월 전부터 필요한 원료(생닭·튀김가루·식용유 등)를 대량 주문함으로써 원가를 낮췄012다”고 한다. 그런데, 아예 십수년 전 마트 개설 당시부터 치밀하게 준비됐다는 주장이 인터넷을 달군다. 증거로 지도 한 장이 제시됐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위치한 마트 매장을 선으로 연결해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어보면 놀랍게도 그 모양은, 닭대가리다.

피자에 이어 치킨까지 대기업이 팔아댄다.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세탁소, 자장면, 헤어메이크업, 그리고 김밥…, 천국.

음모론?

호사다마(好事多魔·좋은 일에는 흔히 방해되는 일이 뒤따름)라고 했던가. MB, 그분이 그렇다. 호사가 대통령 당선이라면 다마는 그 뒤로 숨 돌릴 틈 없이 계속된다. 촛불이 타올랐고, 그의 형님이 구설에 올랐고, 두 전직 대통령을 보냈다. 4대강 사업은 종교계가 반대하고, 뽑아 올리는 고위 공직자는 죄다 군미필·땅투기로 속을 썩였다. 다마수(多魔數)도 이 정도면 더 올릴 수 없을 지경이다. 어찌 보면, 참 딱하다.

그런데 그 다마수를 따져보면, 기묘하다. 악운도 운이라면 운인가. 마 뒤에 마가 오면서 앞선 마를 없던 일처럼 만들어놓는다.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 보이지 않는 손의 뒷덜미를 잡아 공개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천안함 침몰사건이 있었다. 그 사이 검찰이 느슨한 수사로 청와대를 도왔다. 사건이 묻히는 듯했다. 그런데 청와대 직원이 사찰을 은폐하기 위해 썼다는 대포폰 의혹이 터져나왔다. 시끌하려던 찰나, 이번에는 연평도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참상에 사찰 의혹은 정말 묻히나 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는 사찰을 주도한 한 피의자의 수첩에서 ‘박근혜’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상황이 달라졌다. 누가 뭐래도 가장 유력한 여당의 차기 대권 후보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마는 끼었다. 이번에는 국회가 나섰다. 날치기였다. 보란 듯이 육탄활극이 벌어졌다. 김성회 한나라당 의원은 육사 럭비부 주장 출신임을 과시하듯 주먹질을 해댔고, 한나라당 두 여의원은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을 완력으로 끌어냈다. 의도한 듯 안 한 듯, 날치기라는 악재가 박근혜 사찰이라는 악재를 덮고 있다. 이 정도면, 다마호사(多魔好事·안 좋은 일이 겹치니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 됨)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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