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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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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병역의 달

등록 2010-12-08 14:24 수정 2020-05-03 04:26

광저우와 연평도를 잇는 하나의 열쇳말이 있다. ‘병역’이다. 아시아경기대회 감상법 중 하나는 병역을 중심으로 놓고 보는 것이었다. 경기를 보고 또 보고, 기사를 읽고 또 읽다 보면 병역에 대한 각종 ‘멘트’가 읽히고, 희비의 쌍곡선이 보인다. 광저우에서 금메달을 딴 핸드볼의 미래는 밝아졌고, 그렇지 못한 배구의 미래는 어두워졌다. 남자배구 대표선수 상당수는 20대 중반을 넘었는데, 이들은 다음 아시아경기대회 때까지 입대를 미룰 수 없다. 8년 만의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로 남자핸드볼 선수들의 해외 진출은 자유로워졌다. 야구 추신수 선수가 금메달로 얻은 경제 효과는… 그냥 크다는 말밖에.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아시아경기대회 혹은 병역면제 쟁탈전

선수에게 병역면제는 금칙어지만, 에둘러 나오는 말과 절박한 표정에서 슬쩍 드러난다. 남자배구 대표팀의 어떤 선수는 경기 전에 “죽을 각오로 뛰겠다”고 다짐했다. 좀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남자축구 박주영 선수는 4강에서 지자 그토록 진한 눈물을 흘렸다. “형에게 미안하다.” 남자정구 단식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의 일성이다. 결승에서 이긴 상대도 자신처럼 병역 미필자인 대표팀 선배였기 때문이다. 이번엔 태권도 대표팀 감독이 안타깝다. 홀어머니가 중병으로 입원한 선수가 금메달을 따지 못하자 감독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병역면제를 받았어야 할 선수인데…” 같은 인간미 넘치는 말을 남겼다. 금메달이면 병역면제, 은메달이면 병역면제 아닌, 아시아경기대회가 만든 희비의 쌍곡선이다. 금메달 남자선수는 기쁨 두 배, 국위선양 명분과 병역면제 실리의 행복한 동거다. 이건 병역면제 쟁탈전이군, 소리도 나오지만 그러면 또 어떠랴.

이상이 병역면제의 모범적인 경우라면, 아래는 의심받는 병역면제의 사례다. 연평도에서 군인 코스프레 하다가 얼결에 보온병을 들고 포탄이라고 우긴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국민에게 큰 웃음을 주셨다. 자수성가 남성상의 현현이신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타이밍 맞춰 “안보 라인에서 병역면제자 빼라”고 일갈해 캐릭터를 다시 확인한다. 대통령, 총리, 장관이 줄줄이 병역면제 라인이니 어불성설은 아닐지나, 어쩐지 불편하다. 언론도 왼쪽, 오른쪽, 중간 가리지 않고 ‘병역필’ 정서에 슬쩍 기댄다. 어떤 친구 말대로 “서혜림 대통령 들으면 서운할 이야기”다. ‘안상수 굴욕’은 병역과 관련된 것이라기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선현의 말씀을 오늘에 되살리지 않은 결과라 하겠다. 이것은 모르면서 아는 척하다가 자초한 정직의 문제다.

이제 한국에는 병역필한 자와 필하지 아니한 자, 두 개의 계급이 남았다.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보듯이 한국은 평소에도 병역 중심 사회다. 이제 북한 국방위원장은 포탄까지 쏘고 이명박 정부는 강경대응 불사로 타오르니 남북 군사주의의 적대적 공존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벌써부터 일부 여론조사에서 ‘북이 다시 도발시 전쟁 불사 군사 대응’이 절반의 지지를 얻고, 80%가 넘는 응답자가 한-미 연합훈련에 찬성한다. 이제 이명박과 김정일의 적대적 공존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프레임이 되어 그 밖의 의견은 기타 등등으로 치부된다. 북한에 반대하고 이명박에 반대하는 삼단논법은… ‘멍미?’가 된다.

병영사회가 두려운 소수자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군사주의는 계속된다. 하나의 예로, 남북의 적대는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 도입을 정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상황이 악화되면, 지금 생각나지 않는 상상을 넘어선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10여 년 취재를 하면서 만난 사람 가운데 만약 나치 시대에 살았다면 수용소에 갇혔을 이가 많았다. 동성애자들은 분홍색, 여호와의 증인(병역거부자)은 자주색, 사회주의자는 붉은색 삼각형, 나치는 다양한 소수자들에게 삼각형 별을 달아 수용소에 가두었다. 꼭 전쟁이 아니라도, 이미 불붙은 병영사회에서 전쟁 약자들은 더욱 벼랑으로 몰릴 것이다. 병역 아니 현역을 필하지 못한 이들, 군대와 친하지 못한 소수자에게 전쟁 같은 일상이 닥칠까 두렵고 두렵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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