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이틀간 열리는 20개 나라 정상들 간의 회의를 위해 정부가 벌이는 해프닝은 기가 찬 수준을 넘어서, 이 기상천외한 호들갑을 벌이는 자의 정신상태가 흥미로워지는 지경으로까지 승화했다.
오토바이 택배와 정화조 차량 운행을 중지시키고, 주변 역을 폐쇄하며, 주변 영화관과 서점도 영업을 중지시킨다. 수능 날짜를 연기하고, 공무원을 동원해 청소하고, 초등학생에게 G20 숙제를 내주고, 순대와 떡볶이도 못 팔게 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내놓지 못하게 한다. 우리가 회의하는 동안 너희는 숨 좀 멈추고 병풍 뒤에 있을래? 듣고 있는 국민은 이자가 제정신인지 묻고 싶다.
보여주기 위해 사는 삶의 비참함
감히 이렇게 요구하는 사람은 대통령이고, 그 어처구니없는 요구(실은 명령)들을 시퍼런 눈을 뜨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람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이다. 19명의 정상들에게 폼나는 자신을 연출하고 싶은 욕망에 정신을 뺏긴 나머지, MB는 그를 감싸고 있던 옷을 하나둘 홀홀 벗어던져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었고, 온 국민은 그 벌거벗은 자의 민망한 뒤태를 바라봐야 했다.
보여주기 위해 사는 삶. 그것은 자기 자신마저 속이며 살아가는, 주체를 상실한 비참한 삶이다. 이명박 정부가 드러내는 G20에 대한 몰입은 당장 재정상태가 곤두박질칠지언정, 명품백을 두르고 동창회 모임에 나타나고 싶어하는, 허영에 목을 맨 삶의 연장선에 있기도 하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행복해 보이기 위해 희생당하는 삶에, 슬프게도 우린 잘 적응되어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 정부가 벌이는 작금의 추태는, 그들이 잘 보이고 싶어하는 상대와, 그러기 위해 희생시키는 대상이 극적으로 역전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눈을 찌르고 만다.
이른바 ‘선진사회’는 모든 인류사회가 다다르려 하는 민주주의의 이상향을 가장 근사치로 실현하는 사회일 것이다. 나면서부터 꿈의 크기를 달리 가지지 않고, 대통령이건 청소부건 모두 똑같은 크기의 존엄함을 누리는 사회 말이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는 ‘민주주의’를 최소한 표방하거나 지향한다. 심지어는 대놓고 권력을 세습하는 북한도, 스스로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칭한다. 기꺼이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선진국이라 불리려 안간힘을 쓰는 와중에 루이 14세 같은 절대군주들의 행태를 줄줄이 나열해버리고 만 MB.
당신의 잔치보다 소중한 우리의 일상
외국 정상들이 모여 회의를 하건 말건, 시민들은 자신의 일상과 즐거움과 평화를 눈곱만큼도 다치지 않고 누리는 사회. 중요한 국제행사가 있건 없건, 비행기와 철도 노동자들이 그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공공서비스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파업을 하고, 시민단체들은 마침 모여 있는 20개 나라의 정상들을 향해 우리 모두의 삶을 고단하게 하는 현안을 기꺼이 논하는 사회. 정상들도 거리를 거닐며 이 사회의 고단하면서도 풋풋한 풍경을 허물없이 느낄 수 있는 사회. 이런 사회야말로 우리가 도달해야 할, 그리고 정부의 광적인 방해가 없었다면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었을, 선진사회에서의 G20 회의 풍경일 것이다. MB 정부의 광기가 보여준 이 모든 촌극이, 보여주기 위해 사는 삶에 대한 역겨움을 제대로 전달하며, 우리의 밑바닥을 건드려주었기를 바랄 뿐.
목수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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