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국가권력 대 시민사회

등록 2010-06-09 19:57 수정 2020-05-03 04:26

지방선거가 끝났다. 많은 평가들이 엇갈리지만, 대체로 이번 선거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밀어붙이기식 행정에 대한 제동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놓고 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의 승리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특정 정당의 승리라기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낙승이라고 보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사회의 저항이라는 측면에서 이번 선거를 볼 필요가 있다.

촛불이 남겨놓은 불씨

국가권력 대 시민사회.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국가권력 대 시민사회.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이 시민사회는 2008년 촛불이 만들어놓은 불씨다. 촛불의 시민사회는 국가에 자신의 몫을 주장하면서 정치적 상황을 발생시켰다. 촛불은 꺼졌지만 잠복했다가 다시 표심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중요한 건 특정 정당 후보의 당락 문제가 아니라,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드러난 표심의 향배다. 무엇보다 구태의연한 보수 언론과 한나라당의 이념 공세에 유권자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풍과 전교조에 대한 마녀사냥이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물론 일부 보수 세력은 동요했지만, 대다수 유권자는 ‘실리적 계산’에 근거해 전략적 투표를 결행했다. 시민사회가 권력에 전달하려던 메시지는 “독주를 멈추라”는 것이었고, 이런 요구는 2008년 촛불이나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되풀이해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서 민주당과 범야권은 장기판의 ‘말’처럼 사용됐을 뿐이다. 민주당의 정책이나 후보의 인물됨을 보고 표를 던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서울시장 자리는 이런 전략투표가 격돌한 상징적 지점이었다. 서울이라는 한국 정치의 전광판이 시시각각으로 중간계급의 시민사회와 부르주아 기득권층의 대결을 중계했던 것이다.

박빙의 승부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지만, 결과는 승리라고 부르기 민망하다. 이른바 ‘아파트 시세’와 오세훈 후보에 대한 지역별 지지율이 비례한다는 말은, ‘강남시장’이라는 비아냥거림과 함께, 단순하게 농담으로 치부할 수 없는 촌철살인이다. 범야권 대표가 서울시장 자리를 놓쳤다고 분통을 터뜨리는 이들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 ‘자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오세훈 후보를 지옥 문턱까지 데려갔던 ‘민심’이 핵심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정치 구도를 설명해줄 확실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의 국면은 촛불과 유사하다. 다만 촛불과 달랐던 점은 아무도 축제를 즐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선거운동 전후 기간에 실시한 다양한 여론조사에서 진짜 표심은 침묵을 지켰다. 도대체 이런 상황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간단히 말해, 언론과 여론조사기관도 믿지 않았다는 말이다. 언론과 여론조사기관, 그리고 정치인을 한통속으로 간주한 유권자는 대신 인터넷과 트위터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심판의 날’을 기다렸던 셈이다.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다양한 의문과 토론이 인터넷을 통해 일어난 양상과 비슷하다.

국가권력은 이런 의견교환 자체를 ‘괴담’이라고 싸잡아 비난하고 단속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인터넷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인터넷이야말로 정치적 국면에서 시민사회의 데모스로 돌변하는 ‘대중’을 위한 학교이자 언론이었던 셈이다. 이런 까닭에 한 시인의 말대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수적인 종이신문은 또다시 인터넷에 패배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장기판의 말이었을 뿐

연일 천안함에 대한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로 전면을 도배하면서 북풍을 조장했던 보수적인 종이신문들의 선전·선동이 맥을 쓰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반전교조 정서를 이용해 교육감 선거에서 유리한 이념적 지형을 형성하려던 시도도 무산됐다. 북풍에 대한 무관심과 무상급식 전면 실시를 내세운 교육감 후보의 당선은 지방선거의 의미를 새삼스레 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이런 결과는 정치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누가 당선됐든, 이와 같은 상황은 한국 사회의 정치 구도를 ‘국가권력 대 시민사회’라는 분법으로 확정짓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냐, 민주당이냐, 둘 사이에 벌어지는 선거전은 이제 무의미하다. 이들은 그냥 장기판 위의 말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대의제 민주주의로 재현할 수 없는 ‘다른’ 민주주의가 심연에서 꿈틀거린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비평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