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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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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구 이야기

등록 2010-06-09 15:06 수정 2020-05-03 04:26

1.
○○시 △△구는 여느 도시와는 사뭇 다르다. 관내 제철소에서 나오는 폐열을 이용해 지역난방을 한다. 아파트 단지, 수영장, 학교, 병원 등에 저렴한 값에 공급한다. 에너지를 절약하면서 환경을 지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공업지대와 주거지역에는 다양한 공원이 들어서 있다.

이곳엔 다른 지역과 달리 재래시장이 잘 발달돼 있다. 보호지역을 지정해 관리·육성하기 때문이다. 자영업자에게 위협이 되는 대형마트나 슈퍼슈퍼마켓(SSM)은 별도로 규제한다. ‘재래시장에서 장보기’ 바람이 일어 상인들은 주머니가 넉넉해지고 주민들도 싼값에 물건을 살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훈훈한 인심을 누리는 건 덤이다.

친환경 무상급식은 기본이다. 아이들의 학습 준비물과 교복도 무상 지원한다. 집안 형편이 어렵다고 학교에서 주눅 들어야 할 필요가 없다. 요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핀란드식 교육도 뿌리내리고 있다. 경쟁보다 협력을 중시하며 실력과 민주시민 의식을 동시에 지닌 인재를 키워내는 핀란드형 공교육이 핀란드형 혁신학교의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동마다 생긴 작은 도서관에서는 부모와 손잡고 찾아와 책을 보는 아이들 모습이 익숙한 풍경이 됐다. 각 동에는 공공 보육시설도 자리잡았다. 영·유아 예방접종은 무료이고, 아이들이 맘 놓고 뛰어놀 생태올레길도 만들어졌다. 주말엔 단란한 가족들이 구청이 마련한 공공 주말농장에서 자연과 진탕 놀다오곤 한다.

아이들만 즐거운 건 아니다. 65살 이상 노인은 틀니를 할 때 의료보험 본인 부담금을 지원받는다. 기초노령연금도 해마다 오르고 있다.

다른 도시들처럼 이곳에도 개발은 이뤄진다. 하지만 도시 개발에 주민들이 참여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민·관·기업 3자가 협의체를 만들어 개발에 따른 각종 문제를 논의한다. 개발지역 원주민들이 개발의 피해자가 되지 않고 재정착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가 합리적 보상과 이주대책을 마련한다. 서울 용산에서 벌어진 끔찍한 참사가 되풀이될 우려는 사라졌다.

2.
어떤가. 당장 이사라도 가고 싶은 동네 아닌가.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동네는 이제 막 태동했을 뿐이다. 청사진이 겨우 그려진 상태다. 인천에서 당선된 민주노동당 소속 구청장 2명이 선거 기간에 내놓은 공약들이 모두 실현된다면 우리는 이런 동네가 우리 옆에 실재함을 목도할 수 있게 된다.

6·2 지방선거 결과를 받아든 진보개혁 진영은 큰 기쁨과 작은 실망도 잠시. 2년 뒤 펼쳐질 격전을 생각하며 이번 선거의 교훈을 뽑아내고 새로운 비전과 승리의 방법을 모색하느라 벌써 분주해진 모습이다. 더 많은 성찰과 논쟁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를 지켜보면서 한 가지 더 꼭 보고 싶은 게 있다. 미래의 비전 제시와 함께하는 현실적 성취다. 앞에 그려진 ○○시 △△구의 빈칸에 실재하는 도시와 구의 이름을 새겨넣는 것이다. 그곳으로 사람들이 이사오게 하는 것이다. 일상의 진보개혁 정치가 어떤 것인지 처음으로 확인해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러면 ‘구’가 ‘시’로, ‘시’가 ‘나라’로 자라날 것이다. 그런 꿈의 도시를 보고 싶다.

한겨레21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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