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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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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가 말하게 하라

등록 2010-05-12 15:22 수정 2020-05-03 04:26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 20대는 천덕꾸러기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2008년 촛불 이후에 이런 시선은 더욱 강화되어 20대라고 하면 ‘탈정치세력’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렸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투표로 표출하지 않고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리는 자기애만 강한 이기적 존재로 낙인찍혀버린 것이다.

투표 안 한다? 누구를 위해 투표하나

20대가 말하게 하라.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20대가 말하게 하라.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20대를 이렇게 만든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삶의 영역을 시장 논리로 재단하는 신자유주의 정신의 한국화를 빼놓을 수 없다. 지금 20대는 1997년 이후 본격화한 이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20대의 탈정치성을 20대 자신의 이기주의에서 찾는 태도는 올바르지 않다.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객관적 조건이다. 객관적 조건과 주체의 결단이 만났을 때 상황이 변화한다는 게 만고의 진리다.

얼마 전 진보신당에서 주최하는 20대 주거권 관련 간담회에 패널로 참여했다. 와 이라는 단편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시작부터 간담회는 다소 겉도는 느낌이었는데, 시간이 지난 뒤에 생각해보니 아마도 ‘20대 주거권’이라는 생소한 개념 때문에 서로 말이 맞지 않았던 듯싶다. 20대 문제에 대해 고민을 나눈다는 이들조차도 한자리에 모아놓으니 뭔가 의견이 중구난방이었던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아직 제대로 20대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자리조차 마련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생각 없는 20대’를 개탄했지만 정작 그 20대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20대가 ‘생각 없다’는 판단은 대체로 ‘투표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근거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정당정치를 통해 구현하지 않는다는 말인데, 나는 이 말에서 상당한 역설을 발견한다.

선거철만 되면 20대에게 ‘투표합시다’를 강조하지만, 정작 그 본뜻은 ‘진보개혁 세력’에게 투표를 하라는 말이다. 20대 투표율이 높으면 진보개혁 세력에게 유리하다는 건 통계적 사실이다. 이 사실을 기준점으로 삼아 ‘20대의 투표=진보개혁 세력의 표’라는 공식이 만들어지는 셈인데, 이런 개연성은 일정하게 설득력을 갖는다. 이번 천안함 정국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보수우파가 내세우는 이념이나 정서는 도저히 20대가 수용할 수 없는 ‘촌스러움’ 그 자체였다. 시장주의적 합리성으로 무장한 20대의 눈에 이들의 모습은 암기 과목만큼이나 재미없는 ‘꼰대’에 불과했다.

사정이 이러니, 보수우파를 싫어하는 20대가 투표장만 찾으면 진보개혁 세력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은 당연지사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런 ‘꿈’이 실현되려면 한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 바로 진보개혁 세력이 꼰대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비관적이다. 20대가 진보개혁 세력도 보수우파 못지않게 촌스럽다고 생각한다는 게 문제다. 이런 ‘경험적 진실’을 통해 20대는 정치 자체를 자신과 무관한 기성세대의 전유물로 받아들인다.

분명 20대의 탈정치성은 문제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건 정확한 원인 진단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원인은 20대의 성장지체 현상이다. 문화적 측면에서 한국 사회는 20대의 자기결정권을 좀체 인정하지 않는 사회다. 정치적 경향성을 막론하고 20대를 여전히 ‘애 취급’하는 곳이 한국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20대가 어른으로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주장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여기에다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의 가속화는 과거의 종신고용처럼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구매해주지 않는 환경을 낳았고, 이로 인해 ‘잉여노동력’이 차고 넘치게 되었다.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아 ‘가치’를 만들어내야지 생존할 수 있는 임노동자에게 치명적인 경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20대가 ‘스펙 쌓기’라는 자신의 상품화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대의 자기결정권 논의를

잉여노동력으로서 영원히 잉여성을 청산할 수 없는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20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물음이 제기되는 지점에서 20대의 자기결정권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하는 것이 문제의 첫 단추를 푸는 열쇠가 아닐까 한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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