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어느 토요일이었다. 주말에 반바지 차림으로 회사에 나와 ‘전화 대기’를 하고 있었다(신문을 제작하지 않는 토요일에는 경찰 출입기자 중 1명이 외부에서, 경제·문화부 기자 중 1명이 회사 안에서 제보 전화를 받는 등 당직 근무를 선다).
전날 마신 술이 덜 깬 채로 아침 9시에 출근해 귀로는 1~2시간에 한 번꼴로 오는 전화를 받으며 기록하고, 눈으로는 텔레비전을 시청하거나 인터넷 서핑을 했다. 물론 졸기도 했다. 회사 근처에 문을 연 식당이 많지 않아 점심도 근처 중국집의 자장면으로 대충 해결했다.
그러다 즐겨찾던 한 사이트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충북의 한 고등학교를 방문한 뒤 관련 기사를 두고 뒷말이 나온다는 얘길 접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방문한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리며 사진을 찍었다. 이를 두고 상당수 누리꾼이 학생들을 비난했다. 이에 질세라 해당 학교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찍은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 논란은 홈페이지를 통해 기사화됐다. 이 기사는 다시 포털 사이트로 옮겨져 많은 누리꾼의 관심을 받았다. 또 다른 인터넷 매체까지 같은 소식을 전하면서 논란은 계속 커졌다. 하지만 논란의 방향은 단순했다. 이 대통령 방문과 관련해 과잉 경호나 과한 포즈를 유도한 데 대한 비판이 한 축을 이뤘고, 대통령의 방문에 따라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언론이 과잉 보도한다는 비판이 맞섰다.
양쪽 모두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학생이 가져온 물을 독약일 수도 있다며 압수하고 미술 시간을 위해 준비한 커터칼을 빼앗는 등의 행위는 일부 과잉 경호일 수도 있고 일부는 경호 차원에서 필요한 것일 수 있다.
어쨌든 당시 기사는 많은 관심을 끌었다. 주말인데도 홈페이지는 평상시의 몇 배에 달하는 방문자를 기록했고, 그 수치는 한동안 유지됐다. 독자들이 보낸 전자우편도 ‘한심한 기사네요’라는 반응과 ‘통쾌한 기사네요’라는 반응이 엇갈렸다. 이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가 뚜렷하다는 방증이었다.
지난 3월29일 이 대통령의 지지도는 40%(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 조사)를 기록했다. 높은 편이다. 하지만 다른 한켠에서는 실망감을 넘어선 혐오도 상존한다. 마치 현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가 ‘경쟁을 통한 실력 향상’이듯 대통령에 대한 감정 역시 ‘호’와 ‘불호’가 극단까지 경쟁을 벌이는 듯하다.
이정훈 기자 blog.hani.co.kr/ljh9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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