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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검기자’ 검찰의 영혼을 마사지하다


구속영장 기각당하면 눈에 쌍심지 켜고 법원 욕하는 보수 언론

검찰의 거침없는 기소권 행사에 논리적 정당성 제공하는 기자들
등록 2010-04-15 21:55 수정 2020-05-03 04:26
형사소송법 개정 등 재판의 주도권을 둘러싼 쟁점이 발생하면 ‘친검기자’들은 언제나 검찰 편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나온 2005년 12월5일 당시 정상명 검찰총장(왼쪽)과 허준영 경찰청장. 연합

형사소송법 개정 등 재판의 주도권을 둘러싼 쟁점이 발생하면 ‘친검기자’들은 언제나 검찰 편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나온 2005년 12월5일 당시 정상명 검찰총장(왼쪽)과 허준영 경찰청장. 연합

서울 서초동 법원·검찰을 담당하는 기자 중에는 꼭 이런 사람들이 있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법원을 욕한다. 검찰이 기소한 중요 인물에게 법원이 무죄라도 선고할라치면, ‘정치판사’라고 비난한다. 형사소송법 개정 등 재판의 주도권을 둘러싼 법률적 쟁점이 발생하면 언제나 검찰 편이다. 이름하여 ‘친검기자’다.

친검기자는 크게 자발적·비자발적 친검기자로 나뉜다. 언론사 방침에 따라 불가피하게 ‘친검’을 택하는 경우가 비자발적 친검기자가 되겠다. 이명박 정권에는 충성하고 노무현 정권에는 반발하는 것처럼, 검찰과 보수 언론은 피아 구별과 이해관계가 정확히 일치한다. 이 때문에 보수 언론의 법조기자는 대부분 비자발적으로 친검의 대열에 합류한다.

자발적 친검기자는 참여정부 시절에 양산됐다. 당시 검찰은 대선자금과 대통령 측근 수사 등을 통해 성역을 하나하나 허물어나갔다. 외압에 굴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검사들이 몇 있었다. 강금실 법무장관이 “눈사람같이 순수하다”며 연모를 드러냈듯, 검사들의 사명감과 의협심에 박수를 보내는 기자들도 생겨났다. 자발적인 친검이다.

고백하건대, 한때 나도 친검기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2005년 12월의 일이다. 대검찰청에서 갑자기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겠다며 ‘일일브리핑’을 시작했다. 공보관이 매일 기자실에 내려와 출입기자들에게 대검찰청에 취합된 정보를 전달하는 형식이었다. 각 지방검찰청에서 올라오는 소식이었지만 그 안에는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는 경찰이 올린 정보가 다수 포함돼 있었다. 일일브리핑을 시작한 지 엿새가 지난 12월13일, 공보관이 “지난 주말에는 이상하게 살인 사건이 많았다”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경기 성남에서 20대 남성이 여자친구를 노래방에서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하는 등 모두 5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그 내용을 신문사 내부 통신망에 올려놓으니 사회부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검찰이 치안 불안을 부각시키며 경찰을 깎아내리고 있으니 그런 내용으로 기사를 쓰라”는 지시였다. 그런데 현장기자의 느낌으로는 공보관의 브리핑에서 그런 ‘음모’까지 읽히지는 않았다. 사회부장과 법조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의 요지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때마침 경찰이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대국민 설문조사와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펼친다는 사안과 함께 묶어서 쓰기로 결정된 모양이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기사를 작성했다. 그러나 데스킹 과정에서 기사의 수위가 더욱 높아졌다.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서로 상대를 헐뜯으며 국가기관으로서의 최소한의 금도마저 넘는 치졸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게 첫 문장이었다. 다시 사회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표현이 지나치다”며 문제를 제기했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찰을 감싸려는 나의 집요함에 사회부장은 법조팀장에게 이렇게 내뱉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김태규가 친검기자였어.”

당시 상황을 종합해보면,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검경을 대등한 수사 주체로 인정해 내란·외환죄만 검찰의 수사 지휘권을 유지하고 나머지는 경찰에 독자적인 수사권을 부여하는 형사소송법(형소법) 개정안을 2005년 12월5일에 내놓았다. 권한 약화를 우려한 검찰은 강하게 반발하며 대응팀을 꾸리는 등 수사권 조정을 백지화하려는 총력전에 들어갔다. 그리고 형소법 개정안 발표 사흘 뒤 대검찰청의 ‘일일브리핑’이 시작됐다. 검찰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브리핑을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순진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검찰은 다시 권력의 뜻대로 움직이는 예전의 모습으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검찰의 자의적인 기소권 행사에는 거침이 없다. 무리한 기소로 무죄를 받아도 정권은 해당 검사에게 좋은 자리로 보상하고, 친검기자는 논리적 정당성까지 제공하며 검찰의 지친 영혼을 마사지한다. 최소한의 ‘수오지심’마저 앗아가는 것이다. 정치검찰보다 더 나쁜 게 친검기자다.

김태규 기자 한겨레 편집팀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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