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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체험 극과 극’ 특검편



서슬 퍼런 대북송금 특검과 ‘출장조사’로 끝낸 이명박 특검…
죽은 권력과 산 권력에 다른 잣대
등록 2010-05-28 14:45 수정 2020-05-03 04:26
2003년 6월16일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대북송금 특검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한겨레 황석주 기자(왼쪽). 2008년 2월21일 정호영 특별검사가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모든 의혹은 무혐의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2003년 6월16일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대북송금 특검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한겨레 황석주 기자(왼쪽). 2008년 2월21일 정호영 특별검사가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모든 의혹은 무혐의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역대 여덟 번의 특검 중 다섯 번이 참여정부에서 도입됐다. 공교롭게도 그중 첫 번째 특검인 대북송금 특검과 마지막인 이명박 특검 취재 현장에 있었다. 대북송금 특검이 바로 직전 퇴임한 ‘지나간 권력’의 통치 행위를 겨냥한 것이라면, 이명박 특검은 당장 취임을 앞둔 ‘다가올 권력’의 개인 비리 의혹이 수사 대상이었다. 수사 대상만큼이나 수사 행태도 많이 달랐다.

김대중 대통령 퇴임 50여 일 만인 2003년 4월16일 출범한 대북송금 특검팀은 초장부터 강하게 치고 나갔다. 출범 다음날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 집을 압수수색하더니 박 전 부총재,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근영 전 산업은행 총재,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등을 소환하는 족족 긴급체포했다. 긴급체포는 피의자를 일단 체포해놓고 사후에 법원 영장을 발부받는 것으로, 현행범이 아닌 한 검찰에서도 자제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가 “긴급체포하고 구속을 하니까 일이 쉽게 풀리더라”고 회고할 정도로 관련자들을 강하게 압박하는 ‘독한 수사’였다. 어쨌든, 특검은 김대중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매개로 북한에 현금을 제공한 사실을 낱낱이 밝혀내 3명을 구속 기소하고 5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성과’를 냈다.

이와 비교하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취임 40일을 앞두고 출범한 특검은 별로 수사 의지가 없어 보였다. 공보관 역할을 맡은 특검보는 “기자 대표 한 명의 전화만 받겠으며, 수사 관련 내용은 알려줄 수 없다”는 지침을 기자들에게 통보했다. 여론의 도움을 받으려 언론에 우호적 태도를 보인 대북송금 특검과는 딴판이었다. 오히려 언론의 관심이 불편한 기색이었다. 답답해진 기자들의 요구로 정호영 특검과의 점심 식사 자리가 만들어졌다. 이 자리에서 정 특검은 “서울 도곡동 땅이 누구 것인지를 밝히는 것이 수사 목표”라고 말했다. 도곡동 땅 차명 소유 의혹은 앞서 수사한 검찰이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 낸, 이명박 당선자의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러나 특검은 수사 발표를 통해 “도곡동 땅의 주인은 이 당선자의 형인 이상은씨”라는 ‘검찰만도 못한’ 결론을 내놓았다. 특검이 내놓은 증거라는 건, 1985년 이씨가 젖소를 팔고 두부를 수출해 도곡동 땅을 매입할 만한 자산을 갖고 있었다는 정도였다. 특검팀은 1985년 9월 젖소 가격이 마리당 130만~240만원이었다고 말했는데, 이는 이미 이씨 쪽을 통해 언론에 알려진 내용이었다. 이를 보고 독자 한 분이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충북 청원군의 한 농부가 2년 전에 126만원을 주고 암송아지를 샀는데, 가격이 70만원으로 폭락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1985년 4월25일치 기사를 첨부하면서 이씨 주장에 의문을 나타낸 것이다. 이를 근거로 기자회견장에서 따져 묻자 특검팀의 수사검사는 “도곡동 땅은 5월에 샀지만, 그 이전에 소를 팔았다”고 얼버무렸다.

이명박 특검팀의 본질을 설명해주는 가장 결정적 장면은 ‘삼청각 출장조사’였다. 특검팀은 수사 발표 나흘 전인 2008년 2월17일 이 당선자를 서울의 고급 음식점인 삼청각에서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피내사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그런데 밥때가 돼서 3만2천원짜리 꼬리곰탕을 먹었단다. 그날 밤, 특검보 3명과 수사검사들이 이례적으로 한꺼번에 퇴근을 했다. 한 특검보에게 ‘밥값은 누가 냈느냐’고 물으니 “더치페이했다. 우리가 얻어먹으면 향응받았다고 할 거 아니냐. 치사하게 그런 걸 물어보느냐”며 투덜댔지만 큰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특검팀은 수사 발표 과정에서 “보통의 수사라면 당선자를 조사하지 않고도 결론 내릴 수 있었다”며 ‘출장조사’도 신경 쓴 거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수사팀 내부에서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검찰에서 파견된 한 수사관은 “수사에도 원칙이 있다. 그렇게 밥 먹으면서 조사 안 한다. 파견 나와서 열심히 일했는데 친정으로 돌아가 ‘놀고 왔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겠느냐”며 허탈해했다. 여론은 ‘꼬리곰탕 특검’이라고 꼬집었다.

‘비교체험 극과 극’ 특검편이었다. 죽은 권력엔 가혹하고 산 권력에는 연약한 검찰을 빼닮았다는 점에서 씁쓸하기만 한 기억이다.

김태규 기자 한겨레 편집팀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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