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 조성을 위해 수사에 큰 지장을 주는 정보도 주저 없이 언론에 흘렸다. 2005년 8월 국정원을 압수수색하고 나오는 검찰 차량.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최근 검찰의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로 세상이 시끌시끌했다. 가 한 전 총리의 실명을 언급하며 먼저 치고 나섰다. 한 전 총리 쪽은 “검찰이 피의사실을 흘렸다”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검찰은 “우리는 그런 적 없다”고 한다. 진실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떠오르는 한 사건이 있다. 2005년 8월19일. 한 보수 일간지가 1면 톱 기사로 “국정원 도청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오늘 국정원 압수수색을 나간다”고 썼다. 피의자의 거주지나 사무실을 ‘털어오는’ 압수수색은 보안이 생명이다. 압수수색 정보가 새나가면 피의자가 중요 증거물을 미리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를 하는 검사들은 물론 양식 있는 법조기자들조차 압수수색 ‘예고’ 기사를 금기로 여기는 이유다. 따라서 상식을 벗어난 이 기사에 ‘서초동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혼비백산한 수사팀 또한 예정보다 2시간 정도 앞당겨 압수수색을 시작해야 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을 출입하던 기자는 이 신문의 ‘무개념’ 특종 탓에 어쨌거나 낙종한 사정을 밝히는 경위서를 회사 선배들에게 써내야 했는데, 그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검찰 일각에서는 압수수색 영장이 법원에서 새나간 거 아니냐고 말하지만… 결국 검찰에서 샜을 가능성이 농후함. 특히 국정원 압수수색 영장 기사는 떡값 검사 실명 공개 등으로 궁지에 몰리게 된 검찰의 물타기 시도라는 의혹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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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전날인 2005년 8월18일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은 ‘안기부 X파일’ 녹취록에 등장하는 ‘삼성 떡값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떡값 검사 실명 언급으로 ‘삼성 떡값’의 실체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에 터져나온 국정원 압수수색 영장 기사는 검찰이 국면 전환을 위해 고의로 흘린 것이라는 분석인 것이다.
세월이 흘러 당시 출입기자의 분석은 ‘진실’로 확인됐다. 해당 언론사 관계자가 어떤 술자리에서 입을 연 것이다. “사실은 그때 수사 라인에 있던 한 간부가 우리 편집국 간부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알려줬어. 그런데 그 사람이 다음날 기자들 불러놓고 언론이 수사 방해한다며 방방 뜨더라고. 나 원 참….”
자기가 흘리고 되레 성을 냈다는 검찰 간부는 지금도 고위직을 꿰차고 있다.
김준규 검찰총장 취임 뒤 검찰이 수사 상황 브리핑을 자제하는 방식으로 언론과 거리를 두겠다고 했지만, 은밀한 ‘핫라인’까지 끊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앞서 사례처럼 거물 피의자일수록 여론 재판을 통해 ‘선빵’을 날리는 게 검찰로서는 중요한데, 여기에 언론만큼 이용 가치가 큰 데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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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언론플레이’를 할 때 첫 번째로 고려하는 건 해당 매체의 성향과 영향력이다. 어차피 언론 보도로 인한 반향을 노리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은 이왕 흘리는 거 발행부수가 많고 영향력이 큰 매체를 선택한다. 아울러 소재가 해당 언론사의 ‘입맛’에 맞는지도 살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한 새로운 수사 상황이 조·중·동에 번갈아 보도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검찰이 고려하는 두 번째는 출입 기자가 검찰 입장에서 얼마나 믿을 만한 사람이냐는 것이다. 잦은 술자리를 통해 유대감이 형성된 기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던져주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나.
사실 예전에 법조팀도 검찰의 ‘제보’를 받은 적이 있다. 법조 브로커 수사에서 법원 쪽 인사가 관련돼 있었는데 법원이 계좌추적 영장을 기각하는 등 수사를 방해하다시피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또 “검찰 수뇌부가 사건을 뭉개려고 서울에서 하던 수사를 지방 검찰청으로 내려보낸다”는 귀띔도 있었다. 사실 이 정도 내용이면 충분히 제보의 명분이 있다. 용감한 내부고발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골적인 피의사실 공표로 조사하기도 전에 피의자를 제압하려 하거나, 여론의 관심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려고 수사 상황을 흘리는 것은 야비하다. ‘언론플레이’에도 정도(正道)가 있다. 정도(程度)껏 하시라.
김태규 기자 한겨레 편집팀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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