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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이러다가 주인도 물겠다”



검찰 개혁안으로 제기돼온 상설특검제, MB 정부 들어 흐지부지

한명숙 전 총리 기소·스폰서 사건 등으로 여당에서 특검 도입 주장
등록 2010-05-14 14:12 수정 2020-05-03 04:26
상설특검제는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공약이었으나 인수위 때부터 흐지부지되었다. 2008년 3월19일 이명박 대통령이 법무부 업무보고에 앞서 마중 나온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

상설특검제는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공약이었으나 인수위 때부터 흐지부지되었다. 2008년 3월19일 이명박 대통령이 법무부 업무보고에 앞서 마중 나온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

특별한 검사가 특검이다. 검찰이 독점하는 기소권을 예외적으로 행사한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특별하다. 옷로비 의혹부터 BBK 사건까지 건국 이래 특검은 모두 일곱 차례 있었다. 검찰이 정치적 이유로 손을 못 대거나, 손을 댔어도 정치권과 여론의 지독한 불신을 받은 사건은 독립적인 기관의 또 다른 수사를 필요로 했다. 결국 특검의 역사는 검찰 불신의 역사와 다름없다. 검찰이 특검을 싫어하는 이유다.

이런 특검의 상설화가 한때 무소불위 검찰권을 제어하는 개혁안으로 제시됐다. 그때그때 특검 설치를 위한 특별법을 만들 게 아니라, 정치인 등 고위층 비리, 검사 연루 사건 등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혹은 국회 결의에 따라 특검을 발동하는 것이 상설특검제다. 5년 동안의 상설특검제 운용을 공약으로 내놓았던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자 인수위 시절부터 이를 적극적으로 검토했다. 검찰은 대통령직인수위 업무보고 자리에서 상설특검에 반대 의사를 나타내 초장부터 마찰을 빚었다. 그러다 이 논의는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 등으로 정치권의 목을 죄고 국민적 신뢰를 일정 부분 얻으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정권이 바뀌었지만 상설특검 공약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7년 12월 말,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을 구체화하고 정권 차원의 로드맵을 짜는 대통령직인수위를 취재하게 됐다. “‘법이 지배하는 일류국가 건설’을 위해 권력형 비리 수사를 전담하는 상설특검의 입법 추진”이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이었다. 이듬해 1월2일부터 시작된 부처별 업무보고는 당선자의 공약 이행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으면 치도곤을 내리는 군기잡기식으로 진행됐다. 이런 살풍경 속에서 법무부 업무보고를 이틀 앞둔 1월4일, 몇몇 언론에서 “법무부가 상설특검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이에 법무부는 “(우리가 준비한) 인수위 업무보고에는 상설특검제 추진에 대한 수용 의견이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보도 해명 과정에서 대통령 당선자의 상설특검 공약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었다.

5년 전과 상황이 똑같았다. 바뀐 정권과 요지부동 검찰 간의 파열음이 예상되는 상황. 그러나 정작 법무부 업무보고는 이에 대한 질책 없이 조용히 끝났다. ‘법무부가 당선자 공약을 반박했는데 그냥 넘어가는 거냐’고 물어보니 이동관 당시 인수위 대변인은 “법무부가 상설특검을 거부했다고 보지 않는다. 상설특검은 업무보고 시간이 제한돼 있어서 오늘은 논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추가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그 뒤 이명박 정권의 누구도 상설특검제를 입에 담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에 검찰은 ‘내 편’이지, 개혁 대상이 아니었다.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던 대통령 사돈 기업 효성, 기획 출국과 정권 핵심을 향한 유임 로비 의혹 등을 받고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 특별당비 30억원 대납설 등이 불거진 대통령 친구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공천 대가 금품을 받은 대통령의 사촌처형 김옥희씨, 검찰의 조작수사 의혹이 높은 용산 참사 등에 대한 야당의 특검 요구에는 콧방귀만 뀌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 밀월관계가 심상찮다. 한명숙 전 총리를 무리하게 기소해 되레 서울시장 선거에서 경쟁력을 높여주고 최근 ‘스폰서 사건’까지 폭로되자, 한나라당 내부에서 특검 도입과 검찰 개혁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친이 직계의 한 의원은 “검찰이 하도 여러 가지 ‘뻘짓’을 하니까 우린 미치고 팔짝 뛸 정도”라며 “지금 행태로 봐선 주인인 우리도 언제 물지 모른다. 검찰도 물갈이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이제 한나라당이 법원 개혁만 얘기할 게 아니라 검찰에 손을 대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 내부의 검찰 불신이 극에 달한 것이다. 청와대 안에서도 검찰 출신이 장악하는 민정 라인을 제외하고는 특검수용론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몸 바쳐 충성했는데··· 미워도 다시 한번? 떠날 때는 말없이? 정권 바뀐 지 2년 만에 재신임을 받아야 하는 검찰의 신세가 애처롭다.

김태규 기자 한겨레 편집팀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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