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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저도 아닌 우리야 ‘개털’이지”


대학과 지역 따지는 검찰의 연고주의 문화…
피해의식은 충성경쟁으로 이어져 ‘권력으로선 유쾌한 일’
등록 2010-03-04 18:40 수정 2020-05-03 04:26
지역과 학교를 따지는 검찰의 연고주의 문화는 뿌리가 깊다. 서울대 정문. 한겨레 김진수 기자

지역과 학교를 따지는 검찰의 연고주의 문화는 뿌리가 깊다. 서울대 정문. 한겨레 김진수 기자

고. 소. 영. 장동건의 연인? 아니다. 대한민국에는 또 하나의 고소영이 존재한다. 지금으로부터 꼭 2년 전,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던 그때 정관계에 혜성같이 데뷔한 ‘신인’이다. 영남에서 태어나 고려대를 나오고 소망교회를 다닌 고소영은 이후 S라인(서울시청 출신)과 강부자(강남부자)와 함께 이 시대 새로운 출세 코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지연과 학연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연줄’이다. 연줄이 작동하는 출세는 수혜를 받는 사람이야 짜릿하겠지만, 반대로 피해를 입는 사람은 억울하기 짝이 없다. ‘자존심 강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검찰 조직에서는 더욱 그렇다.

유재만이라는 검사가 있었다. 참여정부 초기, 대검 중수부 중수2과장으로 대선자금 수사에 참여했으며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시절에는 국정원 도청 의혹과 양윤재 서울시 부시장 수뢰사건 등 굵직한 수사를 맡았다. 기소를 하면 무죄 선고를 받는 경우가 거의 없어 ‘유죄만’이라는 영광스런 별명도 얻었다. 그는 그렇게 ‘잘나가던’ 때에도 “초임 검사 때 내 꿈이 서울지검 검사를 해보는 것이었다”며 입버릇처럼 과거를 회고했다. 그의 고향은 전북 정읍이었고 그가 검사가 된 해는 1990년, 노태우 정권 말기였다. 호남 출신 검사는 요직에 가기 힘들던 ‘호남 배제’ 분위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대략 짐작되는 일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본적을 바꾸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검사 출신 변호사인 ㄱ씨는 아버지의 고향이 호남이지만 자신의 본적은 서울로 돼 있다. 자식이 장성한 뒤에 혹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아버지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법조계, 특히 검찰에서 지연이 강하게 작용하는 이유는 검찰 조직 자체의 정치색에서 찾을 수 있다. 검찰을 수족처럼 부려야 하는 정권으로서는 ‘아는 사람,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했다. 대한민국 정치의 지역주의적 한계, 그리고 ‘정권의 시녀’를 자임하며 예속될 수밖에 없는 검찰의 한계가 편중 인사로 나타난 셈이다. 국민의 정부 들어 호남 출신 검사들이 주요 보직을 맡으면서 ‘호남 배제’ 원칙은 비로소 깨졌다. 누구는 이를 ‘검찰 인사의 정상화’로 평가하지만, 정권과 검찰의 저급한 밀월관계가 지속됐다는 점에서 주류 세력의 단순 교체로 보는 시각도 있다.

검찰 연고주의의 또 다른 축은 학연이다. 검사로 30년 가까이 봉직하다 개업한 ㄴ변호사. 대학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소년등과’ 했다는 소리를 듣고, 아무나 못한다는 검사장 승진도 했다. 퇴직한 그를 만났다. 술잔이 돌자 그는 회한에 잠긴 표정으로 말했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 내가 20대로 돌아간다면 재수하고 싶어.” 그는 서울대 출신도 고려대 출신도 아니었다.

지연과 마찬가지로 학연도 어느 곳에나 존재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좀 심하다. 한 중견 검사는 “서울대 출신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다 보니 서울대가 아니면 안 된다는 엘리트 의식이 있다”며 “이것이 법조계 연고주의의 뿌리”라고 진단한다. 서울대 중심의 엘리트주의는 비서울대 출신들을 끊임없이 주눅 들게 했다. 그는 “서울대 출신이 아니어서 그렇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더욱 열심히 일해야 했다”고 말한다. 고려대 출신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도 특유의 응집력으로 그나마 소수파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연고주의가 검찰 조직을 억누르다 보니, 변종 피해의식도 난무한다. 참여정부 말기에 고려대·부산 출신인 김성호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이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자 서울 출신의 한 검사는 자신을 ‘개털’에 비유하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서울에서 태어나 뺑뺑이(평준화) 고등학교 다니다 서울대 나온 사람들을 ‘개털 클럽’이라고 한다”며 “영남이나 호남 사람은 지역이라도 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정말 비빌 언덕이 없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호남은 영남에 치이고, 비서울대는 서울대에 치인다. 또 서울 출신의 ‘서울대 개털’은 때때로 영호남 출신에 밀린다. 정권의 향배에 따라 오늘의 귀족이 내일은 노비가 될 수도 있다. 연고주의에 따른 각종 피해의식은 검사 개개인의 방어기제를 작동시켜, 결국 충성을 이끌어낸다. 정권으로서는 유쾌한 일이다.

김태규 기자 한겨레 편집팀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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