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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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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전쟁 전도의 역사


전장에서 “총검 정신은 바로 예수의 정신” 설파한 목사·신부들…
‘하나님’은 살의를 촉진하는 ‘영적 각성제’로
등록 2010-02-11 14:55 수정 2020-05-03 04:26

최근 몇 년 동안 영어권에서 몇 종의 무신론적 저서가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른 바 있는데, 그중 하나는 리처드 도킨스의 (The God Delusion·2006)이다. 꽤나 단순한 무신론이 하나의 ‘참신한 지적 경향’처럼 여겨지는 것은 영미권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총인구의 3%만이 교회에 가끔 다니는 스웨덴이나, 교회 출석 인구가 4% 정도 되는 노르웨이, 6%쯤 되는 핀란드에서라면 ‘무신론’을 갖고 책 장사하기가 힘들 것이다.

‘만들어진 신’은 전쟁의 도구가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의 리노 캠프에서 군목이 미군의 예배를 주도하고 있다. REUTERS

‘만들어진 신’은 전쟁의 도구가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의 리노 캠프에서 군목이 미군의 예배를 주도하고 있다. REUTERS

광신이 먼저인가, 전쟁이 먼저인가

우주에는 우리로 하여금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게 하는 그 어떤 ‘원칙’이 있고 이는 성경에서 말하는 인격화된 신과 다소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통념이 된 사민주의적 사회에서는 도킨스식 무신론이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미국이나 아일랜드, 한국처럼 교회가 큰 ‘세력’을 형성하는 국가에서는 상당한 시의성을 지닐 것이다. 이 종교의 병폐 중 하나로 ‘광신’과 ‘공격성’을 지적하면서 종교를 마치 전쟁의 기원으로 묘사하는 것도, 미국 같으면 설득력 있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미국을 ‘세계의 모든 악과 전쟁하고 있는 선의 나라’로 보고 예수의 재림과 휴거를 전후한 시기에 각종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당연시하는 미국의 기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대체로 ‘이슬람 세력’에 대한 전쟁을 적극적으로 합리화하는 입장에 서서 그 전쟁들을 열심히 선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킨스의 논리를 근현대사에 좀더 정밀하게 적용해보면, 그가 전쟁이라는 사건의 원인과 배경을 혼동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전쟁이- 적어도 일시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는 배경에는 광신적 종교의 사회적 위력이 있을 수도 있지만, 미국처럼 광신이 기승을 부리는 나라에서조차 전쟁은 광신 ‘때문에’ 일어나지는 않는다. 최근의 이라크 침략만 해도, 유전이라든가 중동 지역에서의 군사적 패권 강화 야욕 등 현실적 요인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과연 발발했겠는가. 구미권에서 진정으로 ‘종교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마지막 대형 전쟁은 아마도 천주교와 개신교 쪽의 ‘30년전쟁’(1618~48) 정도일 것이다. 물론 그때도 천주교 국가인 프랑스가 개신교 진영에 합류하는 등 국익이 종교적 명분을 압도하는 측면이 이미 나타났지만, 그래도 종교적 명분이 외피적으로나마 최우선시되는 유럽에서의 마지막 대형 전쟁은 바로 그때였다. 그 뒤로는- 도킨스의 주장과 달리- ‘만들어진 신’이 전쟁을 발발케 했다기보다는 전쟁 진행의 한 도구가 됐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군목과 군 신부들이 ‘신’을 빙자해 살인자가 돼야 할 이들의 양심의 가책을 잠재우는 데 동원된 것이다. ‘신’의 권위가 전쟁의 원활한 진행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인간적 양심의 말살에 적극적으로 동원됐다고 볼 수 있다.

며칠 전에 서거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적이 있는 미국의 문호 샐린저(1919~2010)의 말대로, “불에 탄 인육의 냄새를 한번 맡아본 이는 그 냄새를 코에서 평생 씻어내지 못한다.” 동류들을 죽이지 못하게 하는 모든 동물의 본능은 인간에게도 내재돼 있는 것이다. 물론 동물에게서는 동류 간의 ‘서열 경쟁’, 수컷 사이의 ‘암컷 쟁취 경쟁’, 그리고 ‘영토 경쟁’ 등이 통상 발견되며, 이 경쟁의 일환으로 특히 젊은 수컷 사이에서 치열한 싸움이 자주 일어난다. 그러나 동물 행동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자연학자 로렌츠(1903~89)의 말대로, 동류 간의 경쟁이 ‘죽임’으로 이어지는 것은 극히 드문 예외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짱’이 되어서 동류 위에 군림하려는 청소년들이 아무리 심하게 주먹다짐을 해도, ‘치사’(致死) 지경에 이르는 것은- 사회 전체가 극도로 폭력화되지 않는 이상- 드문 예외에 속한다. 인간은 폭력적인 동물이지만, 살인성을 태생적으로 내포하지는 않는다. 이를 가리켜 “종류 전체의 자기파괴를 방지하는 진화적 장치”라고 한다. 단, 전쟁을 필수적으로 필요로 하는 계급사회만이 생명계에서 유일하게 이 ‘진화적 장치’를 전시에 제거해 인간의 상호 살인을 장려한다.

18세기 후반 ‘군내 성직자’ 상설 기구로

문제는 인간에게 아무리 “적군을 죽여라!”고 요구해도, 갓 징집된 멀쩡한 남성은 본성상 그 요구를 쉽게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의 ‘적군을 향한 자율적 사살 비율’이 15~20%에 불과했던 것이다. 즉, 상관의 명령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는 충분히 직격탄으로 죽일 수 있는 적군을 앞에 두고서도 15~20%만이 자율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단 이야기다. 사람이 살인자로 태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드디어 눈을 뜬 미군 사령부는 실전 투입 이전 ‘적군 사살의 반사적 반응’을 키우는 집중 훈련을 도입해 한국전쟁 때 ‘적군 사살률’을 55%까지 끌어올렸지만, 퇴역 군인들의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등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자연이 우리에게 허용하지 않으려는 살인의 경험은 인간에게 끝없이 고통스러우며 성격 파탄과 자해, 자살 등을 쉽게 가져다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군대를 도와줘야 할 이들은 바로 ‘신’의 대변인임을 내세우는 군목과 군 신부들이었다.

유럽 군목과 군 신부의 중세적 기원은, 전장에 나가는 자신의 영주를 모시면서 동반 출정하는 휘하의 신부들이었다. 그런데 이미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군내 성직자’는 여러 나라에서 하나의 상설 기구가 됐다. 봉건영주가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신생 독립국 미국에서도 1775년부터 개신교 성직자들이 군목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영국군에서도 1796년부터 군부의 한 상설 부서가 된 것이다. 심지어 정교분리를 신줏단지처럼 여기는 세속주의 공화국 프랑스에서조차 1880년부터 천주교·개신교·유대교 성직자들이 상비군에 배치되기에 이르렀다.

나라마다- 그 ‘건국 원리’와 무관하게- 성직자를 군대로 영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갈수록 커지는 피징집 인구의 ‘적군에 대한 살의’를 종교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다. 군목이나 군 신부가 전쟁에 피폐해진 병사들에게 단순히 ‘영혼의 안식’, 즉 종교적 위안을 제공해준다고 생각하면 오판이다. 특히 ‘국민적 총력전쟁’의 효시인 제1차 세계대전 때 군내 성직자들은 ‘위안 제공’보다 ‘종교적 군기 진작’에 더 많은 공을 들이곤 했다. 예컨대 당시 그 살기 어린 설교로 크게 유명해져 ‘군목의 모범’으로 여겨지게 된 영국 성공회의 제프리 케네디(1883~1929)는 훈련소에서 총검 연습을 하는 병사들에게 “총검 정신은 바로 예수의 정신”이라고 못박곤 했다. 전쟁은 살인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키면서 일정한 법칙을 지키면서 살인을 하는 것이기에 이같은 ‘스포츠맨 정신’에 충만한 전장은 ‘예수의 정신’에도 충만하다는 논리였다.

“기독교와 애국은 같은 것이고, 비국민과 지옥도 같은 말이다. 이 전쟁은 천국과 지옥 사이의 성전이다.” 인기 높은 복음 전도자 미국의 빌리 선데이가 좋아하던 표현이다. 한겨레 자료

“기독교와 애국은 같은 것이고, 비국민과 지옥도 같은 말이다. 이 전쟁은 천국과 지옥 사이의 성전이다.” 인기 높은 복음 전도자 미국의 빌리 선데이가 좋아하던 표현이다. 한겨레 자료

전후에 온갖 악몽에 시달리던 케네디가 결국 기독교 사회주의자로 거듭나면서 ‘평화’를 역설하는 책과 연설로 일세를 풍미했다는 점을 두고 개과천선했다고 여기는 이도 있다. 하지만 그는 영국에서 복지주의 사회를 건설해 빈곤을 퇴치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늘 “전몰된 영웅들의 희생을 헛되이하지 않기 위해”라고 덧붙였다. 자본가의 이윤을 위한 전쟁에 자원 입대해 스스로 총알받이가 되거나, 국가의 징집에 저항하지 못해 총알받이 노릇을 강요당한 이들은 그에게 체제의 피해자가 아니라 여전히 ‘영웅’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전몰 군인 숭배를 시민 종교로 격상시킨 영국 주류 사회와 기본적 입장을 공유한 것이다.

‘위안 제공’보다 ‘종교적 살기 진작’

물론, 제1차 세계대전 시절의 군목이나 군 신부들을 무조건 비판만 할 수도 없다. ‘조국’ ‘조국애’ ‘조국을 위한 전사(戰死)’가 ‘예수’만큼이나 신성하다는 이념 주입을 중산층 가정에서 어릴 때부터 받아온 이들은 자신의 ‘신성한 이상’을 지키느라 감동적인 용기를 보이기도 했다. 부상당한 전우를 최전선에서 구출해내다가 적탄을 맞고 전사한 영국군의 노령 군목 데오도 하디(1863~1918)처럼 많은 군목들이 ‘자기희생’의 모범을 보이곤 했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또한 군법과 국제법상 ‘살인’을 행할 권리가 없는 군목이나 군 신부로 전장에 나간다는 것은 광적 애국주의로 가득 찬 제1차 세계대전 초기의 사회 분위기에서 거의 ‘평화주의적 선택’으로 보이기도 했다. 중산층 젊은이들이 하등의 다른 생각 없이 군문에 투신하는 당시의 분위기에서 군목으로 입대할 자격이 있는 신학대학 학생들도 상당수 ‘신학’을 팽개치고 총대를 메곤 했던 것이다. 예컨대 1914년 8월 전쟁 발발의 시절에는 영국 성공회 신학생 1274명 중 400명이 당장 학업을 그만두고 군에 자원 입대했다. 칼을 차고 총대를 메지 않는 이에게 ‘겁쟁이’ ‘비국민’의 오명을 씌우는 당시의 정신병적 분위기에서 총을 쏘지 못하는 군목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일 수도 있었다. 문제는 군내 성직자 집단과 전쟁을 열렬히 지지하는 ‘주류’ 기독교 교파들이 이같은 ‘전쟁열’을 식히기는커녕 오히려 분위기에 편승해 종교적 방법으로 병사들의 살기를 북돋우느라 여념이 없었다는 것이다.

야구선수 출신으로 인기 높은 복음 전도자가 된 미국의 빌리 선데이(1862~1935)가 좋아했던 표현인 “기독교와 애국은 같은 것이고, 비국민과 지옥도 같은 말이다” “이 전쟁은 천국과 지옥 사이의 성전” 등은, 당시 영미권 보수적 기독교의 전쟁관을 보여준다. 영국 성공회는 “전장에서의 합법적인 적군 사살은 하나님이 금지하신 정의롭지 못한 살인과 본질적으로 다르며, 정의의 전쟁을 치르는 목적은 살인이 아닌 정의의 실현이다.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 정신은 기독교의 참정신과 같다”는 입장을 반복했는가 하면, 미국 감리교의 한 목사는 1917년의 설교문에서 아예 “나 같으면 독일놈의 배를 총검으로 찌르는 데 하등의 머뭇거림도 없을 것이고, 차후에도 하등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원색적인 적개심에 기름을 붓기 바빴다. ‘살인’이라는 부자연스럽고 끔찍한 체험 앞에서 온갖 번뇌에 싸인 최전선 병사들을 상대로 중산층 출신의 군목들은 살의를 촉진하는 일종의 ‘영적인 각성제’처럼 ‘하나님’을 이용했던 것이다.

물론 하나님과 예수를 ‘살인의 신’으로 만든 것은 영미권만이 아니었다. 독일 교회도 제1차 세계대전을 “신의 선택을 받은 신성한 독일민족에게 신이 내린 시련이자 기회”로 봤다. 이 전쟁에서 “군인의 성스러운 피가 전쟁 이전의 물질주의, 안락주의, 계급 이기주의의 죄악을 깨끗하게 씻어 독일 민족이 그 특유의 경건함과 덕성, 기독교 문화 정신으로 전세계를 새로운 낙토로 이끌 세계사적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주장은, ‘신과 민족’ 대신 ‘계급’의 논리를 택한 사회주의를 무엇보다 혐오하는 교회의 신조였다. ‘계급’에 대한 미련을 깨끗하게 제거할 이 전쟁을, 많은 독일 목사들은 아예 ‘신의 선물’로 이야기했다. 에밀 오트라는 한 독일군 군목은 (뮌헨·1915)이라는 책에서 “우리는 이 전쟁에서 신을 경험한다”라고 전제하고 “전장에서 성경의 세계가 현실화되어 나와 하나님이 하나가 돼 민족들 사이에 우리의 권세를 과시함으로써 기적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살인을 체험하는 것이 바로 신을 체험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정상인이면 누구나 ‘독신’(瀆神), 즉 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보겠지만, 살기에 가득 찬 당시 분위기에서는 적어도 중산층 출신의 장교들은 이런 주장에 동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수많은 독일군 장교들은 일기장이나 개인 편지 등에서 하루하루를 총탄의 빗발 속에서 보내야 하는 자신의 일상을 “예수와 기독교 순교자들의 희생”에 빗대어 “고상하고 만족스러운, 남성다운 희생”이라고 표현했다. ‘영웅다운 전장에서의 죽음’에 대한 숭배적 태도, 그리고 사회주의자부터 평화주의자까지 온갖 ‘비겁자’에 대한 극적 증오는 바이마르공화국(1919~33) 시대에도 보수적 성직자층에 의해 계속 이어져 결국 파시즘의 정신적 배경의 하나가 됐다. 물론 ‘신’의 자리에 ‘민족’을 전치시킨 파시즘은 그 어떤 종류의 기독교와도 본질적으로 다르지만, 파시즘 대두의 정신적 분위기 형성에 ‘전시 기독교’가 일조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원죄를 지은 인류에게 전쟁은 필요악”

전시 살인만큼 인간으로서 하기 어려운, 또한 하고 나면 온갖 상처가 생기는 일은 없지만, 전쟁만큼 자본주의의 원활한 운영에 긴요한 일도 없을 것이다. 자본 이윤율의 하락을 일시적으로나마 방지하기 위한 전쟁 때, 전시 살인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하나님’까지 동원된다. 도킨스는 전쟁을 종교의 파생물로 치부하지만, 실제로 근대적 전쟁은 종교를 하나의 정신적 도구로 이용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렇게 국가적 살육에 동원되는 성직자들의 전쟁관은 “원죄를 지은 인류로서 전쟁은 필요악”부터 “전쟁은 민족을 정화시킬 기회”까지 다양하지만, 병역과 전쟁에 대한 거부, 즉 평화의 진정한 실천을 ‘비현실적’이라고 보는 데서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면 로마제국 군인의 손에 못에 박혀 죽은 예수도 ‘몽상가’였던가? 예수 정신을 폐기처분해 권력자들과 하나가 된 교회는 과연 존재 가치가 있는지, 기독교가 ‘종교 권력’의 동의어가 된 한국의 시민이 모두 같이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참고 문헌:
1. 콘라트 로렌츠 지음, 송준만 옮김, 이대출판부, 1986
2. 〈On Combat{ Dave Grossman, Loren Christensen, Warrior Science Publications, 2004
3. 〈An Intimate History of Killing〉 Joanna Bourke, Granta Publications, 1999
4. ‘Beyond Comfort: German and English Military Chaplains and the Memory of the Great War, 1919~1929’, 〈The Journal of Religious History〉, Patrick Porter, 29/3, 2005, pp.258~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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