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보다 춥다는 느낌이다. 얼마 전 영하 20도의 체감온도에서 벼려져 거칠게 세상을 덮는 눈은 새하얀 관처럼 보였다. 나를 태운 ‘로시난테’ 레조는 비틀거렸고, 모든 지상은 업업했다.
추울 때마다 복무 시절의 겨울을 생각한다. 11월에 입대한 덕에 군대에서 세 차례 겨울을 났다. 난 특히나 추위에 젬병인데, 혹한기 훈련도 세 번이나 했다.
강원도 화천으로 신병 입소했다가 춘천으로 자대 배치를 받은 팔자 밖 행운은, 매번 혹한기 훈련을 화천으로 올라가 받는 저주로 충분히 상쇄됐다.
자대 배치를 받은 1월이었다. 경계근무 중 코를 고는 동기의 코에 물을 붓는 전투력 높은 상병을 보며, 내무생활에 어떻게 적응할까 미처 힌트도 구하기 전 동계훈련을 떠났다. 일주일 남짓 산 중턱에 반지하 분침호를 만들어 잤다.
무력한 겨울 복판에서 난 뭘 해도 어색했고 무력했다. 너덜너덜해진 ‘이등병용’ 침낭에 들어가 이등병만 차지할 수 있다는 분침호 입구에서 잔 첫날, 군화가 얼어버렸다. 껴안고 자야 했는데 개념 없이 허벅지 사이에만 끼고 잔 게 화근이었다.
욕먹어가며 군화를 녹이고, 뒤늦게 이등병용 낡은 반합에 검은 비닐봉지를 씌우고(설거지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검은 비닐봉지를 씌워서 먹는다) 두붓국과 생선조각을 한꺼번에 담아 우걱우걱 먹는데, 비닐이 빵꾸났다. 포크수저 탓을 했지만 다음날도 빵꾸났고 그 다음날도 빵꾸났다. 참 더러웠다.
그런데 지금 겨울이 사실 비슷한 느낌이다. 좀 당황스럽다. 비꼴지 모르겠으나, 물론 기후 탓만은 아닐 거라 난 생각한다. 영화 를 보던 날도 추웠다. 올해 최대 적설을 이룬 주말이었다. 자신의 가치와 이념만을 선으로 여겨, 누군가의 희생을 부르는 대목에서 유치하지만 눈물이 쉬지 않고 흘렀다.
판도라의 여름, 아니 어쩌면 ‘계절 밖의 계절’에 웃통을 벗은 나비족들의 가는 허리는 아름다웠다. 모든 탐욕은 인간의 뱃살에 담겨 있다는 상징으로 읽혔다. 옆자리엔 살아보겠다고 입고 온 두꺼운 코트가 포개져 있었다.
춥다. 오늘도 춥고, 내일도 추울 것 같다. 난 계속 무력하고 어리바리할 것이다. 다만 당신도 좀 무력하고 어리바리하면 좋겠다. 당신의 반합도 빵꾸나고, 당신의 삽자루도 부러졌으면 좋겠다. 어이없어 웃고, 그러니까 얼른 봄이나 오면 좋겠다고 서로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진실로, 지금 정권의 저쪽만 너무 춥다. 당신들의 허리도 좀 가늘었으면 좋겠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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