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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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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다 보았는데

등록 2010-01-20 10:16 수정 2020-05-03 04:25

1.
“이것이 무죄면 무엇을 처벌할 수 있겠나?”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에게 무죄판결이 선고된 뒤 검찰이 보인 반응이란다. 강 대표는 지난해 1월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상정에 반대하는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의 농성을 국회 사무처가 강제로 해산하자 국회 사무총장실을 찾아가 집기를 넘어뜨리고 폭언을 한 혐의(공무집행 방해 등)로 기소됐다. 대검찰청 공안부는 항의의 뜻을 담아 작성한 A4 용지 한 장 분량의 자료에서 비분강개했다고 한다.
“국민들이 다 보았는데 어떻게 무죄인가?”

2.
이에 답하기 전에 검찰에 되묻고 싶은 게 있다.
지난 2008년 6월1일 새벽 2시께 서울 경복궁 동십자각 근처에서 벌어진 일이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서울대생 이나래씨가 전투경찰에게 무자비하게 짓밟혔다. 머리채가 낚아채이고 군홧발로 머리가 짓이겨졌다. 이씨는 사건 직후 어청수 당시 경찰청장을 비롯해 현장 지휘관 등 7명을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관할 경찰서인 종로경찰서로 사건을 넘겼고, 경찰은 이씨만 조사하고는 피고소인들은 조사도 제대로 않은 채 사건을 다시 검찰로 넘겼다. 그리고 검찰의 결론은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794호 이슈추적 ‘검경, 웬만해선 처벌 불가’ 참조)
“이것을 처벌하지 않으면 무엇을 처벌할 수 있겠나?”
이씨가 민주국가의 시민으로서 차마 당할 수 없는 폭행에 처절하게 나뒹구는 모습은 당시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퍼져나갔다.
“국민들이 다 보았는데 어떻게 처벌하지 않을 수 있는가?”
지난해 1월19일 새벽 서울 용산 재개발 4구역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일어난 일이다. 철거민들의 망루 농성이 시작되자 3시간 뒤 경찰특공대에 출동 지시가 내려졌다. 삶의 터전을 잃고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야 하는 시민들이 망루에 섰다. 망루 내부에 시너와 화염병 등 위험 물질이 가득했고, 경찰이 진압에 나설 경우 극렬한 저항과 분신·투신 등 극단적 행동이 우려된다는 점을 알고서도 경찰은 진압을 강행했다. 건물 주위엔 에어매트도 설치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 등을 검찰에 고소했지만, 검찰은 철거민 20여 명만 기소하고 경찰들은 불기소 결정했다. 검찰이 움켜쥐고 있다가 최근 법원에 의해 강제로 공개된 수사기록에는 서울경찰청 간부들이 “현장 상황을 잘 전달받았다면 진압을 중단시켰을 것”이라고 진술한 내용이 들어 있다.
“이것을 기소하지 않으면 무엇을 기소할 수 있겠나?”
경찰이 남일당 망루를 공성 작전처럼 기습하면서 화염이 붉게 치솟고 농성자들이 무작정 건물 아래로 뛰어내리는 장면을 우리는 TV 화면을 통해 똑똑히 보았다.
“국민들이 다 보았는데 어떻게 처벌하지 않을 수 있는가?”

3.
검찰의 질문에는 따로 답할 것도 없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단독 이동연 판사는 강기갑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국회 사무총장실은 의원의 출입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공간이며, 강 의원은 당시 정당 대표로서 부적법한 직무수행에 항의하러 들어간 것”이라고 밝혔다. 또 강 대표가 민노당 농성장의 펼침막을 뗀 국회 경위들과 몸싸움을 한 혐의에 대해선 “국회 사무처가 펼침막을 강제로 철거한 것은 적법한 공무수행이 아닌 만큼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처벌받아야 할 행위로 법률에 규정된 행위가 아니므로 무죄라는 것이다. 이 단순하고도 명쾌한 법 논리에 더하고 뺄 게 무엇인가. 그러니 검찰은 질문을 할 게 아니라 답변을 해야 한다.
“군홧발 폭행과 참사를 빚은 용산 진압이 무죄면 무엇을 처벌할 수 있겠나? 검찰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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