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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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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기자 ‘동지’들에게

등록 2009-12-09 10:24 수정 2020-05-03 04:25

얼마 전 서울시립대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다. 학생들을 상대로 기사 공모전을 하는데, 심사를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마침 심사를 해야 하는 시점이 우리의 마감날과 겹쳐서 고사하려다 거듭되는 요청에 못 이겨 수락을 하게 됐다. 그런데 응모작들을 살펴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기사로서의 완성도는 기성 언론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지만, 대학생들의 다양한 관심사와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학내에서 진행되는 공사와 점점 대학 안으로 파고드는 상업시설 등에 대한 비판의식이 올곧았고, 수시 논술시험을 치르기 위해 학교를 찾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학교 쪽의 배려 부족으로 불편을 겪은 일을 끄집어낸 시각도 착했다.
대학을 졸업한 40대 이상의 독자라면 학창 시절 ‘학보’와 관련된 추억이 하나둘쯤 있을 것이다. 전자우편이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은 상상도 하지 못하던 그때, 잘 접은 학보에 하얀 종이로 띠를 두른 뒤 바깥쪽에 주소를 적으면(안쪽엔 짧은 편지글을 적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나 사귄 지 얼마 안 되는 여자친구에게 마음을 전하는 훌륭한 메신저가 완성됐다. 학과 사무실 옆에 놓인 우편물 상자를 뒤져 누군가 보내온 학보를 발견할 때는 스무 살 외로움도 잠시 위로를 받곤 했다.
그리고 당시 학보에는 세상을 향한 열정이 담겨 있었다. 사회 변혁을 위한 온갖 담론과 새로운 문화에 대한 추구가 빼곡히 들어찬 학보는 기성 신문보다 더 먼저 챙겨야 할 교양의 원천이었다. 그래서 다른 학교 친구들과 학보를 주고받는 일은 연대의 한 방편이기도 했다.

이젠 대학생들이 만드는 신문도 많이 변했을 것이다. 학보를 주고받는 풍속은 아예 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의 변화가 대학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대학의 변화는 학내 언론도 변화시켰을 것이다. 그런 변화가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게 섬뜩할 뿐이다. 최근 잇따라 불거지고 있는 총학생회 선거 부정 시비는 다시금 대학의 오늘을 돌아보게 한다. “대학이 사회보다 더 보수화·시장화돼 있다”는 진단이 뼈아프다(초점 ‘서울대판 초원복집 사건의 진실’). 많은 대학생 독자를 두고 있는 매체로서, 이 대학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깨우침도 든다.
대학을 삼키고 있는 시장화의 흐름을 돌이키는 일은 많은 이들의 노력을 필요로 하겠지만, 그 한 축을 대학 언론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 맡아주길 기대해본다. 사회를 바꿔나가는 게 언론의 구실인 점은 대학이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언론계 종사자로서 대학생 ‘동지’들에게 보내는 이 연대의 제안에 공감하는 이가 있다면, 앞으로 만들어내는 학보를 한 부씩 보내주면 고맙겠다. 물론 편집장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 대학생 독자 누구라도 학보와 함께 편지를 보내준다면 더없이 반가울 것이다.
주소: 우편번호 121-750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116-25 한겨레신문사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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