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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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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을 기다리다

등록 2009-11-27 10:18 수정 2020-05-03 04:25

1992년. 대입 실패가 거의 확실해 보이는 수험생이었던 나는 당시 우울한 마음에 학력고사 당일 지진이나 정전 사태를 꿈꾸었다. 급기야 썩은 동아줄 잡는 심정으로 당시 사회문제였던 휴거설에 일말의 기대를 품기도 했다. 물론 진심은 아니고(그 정도로 사이코는 아니었다) 잠깐 이 한 몸 비빌 수 있는 전반적인 사회적 혼란을 상상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휴거는 없었고 보던 시절부터 나를 옭아맸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도 싱겁게 가나 보다 했는데 요즘 다시 인류 멸망 타이머가 깜박인대서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

2012년이 아닌 지금의 징후들

종말을 기다리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종말을 기다리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특히 이번은 모든 종말론이 그렇듯 상당히 근거 있단다. 2012년 종말론은 25세기 이상 하루도 틀리지 않았다는 놀랍고도 신비한 마야력에 근거해 12월21일이라는 날짜까지 받아두고 있다. 때맞춰 영화까지 개봉해 지구 자기장 역전이 만들어낼 그날의 생지옥을 가상체험 하게끔 도와준다. 를 보면서 드디어 우리 인류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멸망의 불안을 이렇게 엔터테인먼트적으로 소비하고 해소하는구나 싶어 기특하기도 했다. 지구 역사상 존재했던 유기체의 99%가량이 멸종했다지만 이리도 영특한 인간이라면 쉽게 사라지지 않으리란 낙관적 전망까지 생길 정도였다. 생존의 불안이란 감정은 활발한 생산과 소비 속에 더 이상 긴장과 각성으로 이어지지 않고, 종말론은 오컬트의 고전적인 한 분야로 자리잡은 듯하다. 혹세무민의 의도가 아니라면 이에 대해 심각하게 떠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 줄 알지만 이상하게 나는 2012년 종말론에 자꾸 관심이 간다. 휴거를 상상하던 어처구니없는 마음이 아니라 진지하게 2012년의 그날 이후를 기대하는 것이다.

바로 징후들 때문이다. 과학자, 미래학자 등 전문가들은 예언의 그날이 아니라 지금 현재 지구가 보내는 ‘사인’들에 주목한다. 마지막 날이 아니라 마지막에 가까이 왔다는 깨우침을 요하는 것이다. 경제 붕괴, 환경 파괴, 에너지 고갈, 테러, 양극화 등등은 진화의 가속도에 몸을 던진 인류의 당면 과제다. “우리는 진화라는 과목의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다”는 발명가이자 철학자인 버크민스터 풀러의 말을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던 호들갑으로 치부할 수도 있으나, 어쩐지 이번에는 감이 다르다. 여러 예언서들에서 말한 종말의 시간이 2012년 전후로 일치해서가 아니라 정말 인간 스스로 한계를 느끼고 도약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DNA에 저장되어 있는 주기에 따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는 과거의 세상은 죽어야 한다. 마야문명의 예언도 ‘일곱 마코앵무’인 이기심 강한 자아가 진정한 중심이자 신성한 자기인 ‘한 우나푸’를 빛내기 위해서 낮추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즉, 우리를 겁주었던 고대의 예언은 싱겁게도 욕심 버리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것이었다.

종말론은 새롭게 일어서기 위해 바닥을 한번 세게 치는 요란한 제스처에 불과하다. 공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이를 위해 인식의 변화와 도약을 이루자는 것이 이른바 종말론 앞에 깨어 있는 자들의 요구다.

진화의 새로운 단계로 갈 수 있을까

그러나 사실 이렇게 떠들어봤자 우리가 지금 지구 걱정할 입장이 아니란 걸 안다. 지구가 우리 걱정해야 할 때이다. 과연 우리는 지금 제대로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을까.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는 그때가 종말이고 독재를 맛본 세대에게도 나름의 컴컴한 나락이 있었겠지만 우리에게는 지금이 새로운 막막함이다. 많은 것과 싸우는 기분이고 심지어 안 보이는 바이러스하고도 겨루고 있다. 과연 이 어둠을 통과하면 무사히 진화의 다른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까. 사이비 종말론 교주에게는 편리한 자기합리화 논리가 있다. 주장하던 종말이 일어나지 않아도 자기가 기도를 열심히 해 구원받았으니 감사히 여기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사이비 교주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이 불안한 의식마저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느껴야 한다. 담담히 파국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심장박동과 종말의 카운트에 나란히 귀기울이며 그 너머의 새로운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지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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