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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깊이 들어가면 위험한

등록 2009-11-11 02:21 수정 2020-05-02 19:25
막장, 깊이 들어가면 위험한.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막장, 깊이 들어가면 위험한.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그렇다. 알고 보니 나는 ‘막장 문학’의 애호가였다. 내가 좋아하는 세라 워터스의 는 빅토리아 시대의 ‘센세이션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레즈비언풍 로맨틱 스릴러로 저리 가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은 어떤가. 민간인 예수가 인류를 구원하기를 거부하다 나중에 두 자매 사이에서 흥부처럼 애도 많이 낳는다. 의 드미트리를 제치고 쭉 거슬러 올라가 희랍 비극 ‘오이디푸스’는 또 어떤가. 패륜 등 선정성을 기준으로 보면 소포클레스야말로 ‘막장 드라마계’의 레전드급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들어가다 보면 ‘성경’이야말로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으니, 아 정말 이 질문을 안 할 수 없다. 막장, 너는 누구냐?

매일매일 노동의 고단함 풀어주는 ‘막드’

‘일드’와 ‘미드’를 넘어 막장 드라마 일명 ‘막드’가 대세가 되기 전부터 TV 드라마의 유해성은 늘 제기돼왔다. 일일 드라마는 1960년대 말 한국 영화 의 구조에서 몇 발 벗어나지 못한 진부함을 보여주지만, 대한민국 대다수 주부들의 매일의 노동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달콤한 ‘식후땡’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가뭄에 콩 나듯 ‘저속하고 통속적인 멜로드라마’란 선입견을 깨고 평범한 주인공이 지배적인 권력구조에 도전하며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장르의 경지를 이룬 멜로드라마’를 만나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물론 이건 지극히 드문 일이다. 그리고 별로 기대하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솔직히 우리가 원하는 것은 불량식품처럼 적당히 유해하고 맛있는 드라마다.

몇십 년째 비슷한 응접실 세트에서 제작되는 진부한 이야기를 보는 이유는 드라마가 우리 대신 퇴행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드라마의 관습적인 전개에 맛들린 우리에게 막장 드라마의 출현은 간만에 새로운 것이기는 했다. 단순히 불륜이나 복수 등의 소재 차원이 아니라 나는 기존 작법을 뛰어넘는 작가의 저돌성에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뒤를 어찌하려고 초반부터 저리 자극적인 것일까. 한꺼번에 가진 패를 다 내놓는 막장 드라마는 감히 셰익스피어라 해도 감당 못할 속도전을 펼치며 내달렸다. 소소한 일상의 감상이라는 홈드라마의 미덕 대신 비정상적인 감정의 극한을 보여주기 위해 ‘막드’의 주인공은 눈밑에 점을 찍고 마구 절규했더랬다. 막장 드라마는 우리에게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맘껏 타게 해주는 놀이공원의 자유이용권이나 다름없었다. 안전검사에서 부적격 판단을 받았음을 알면서도 공짜라는 재미에 우리는 그 어이없는 흥분을 즐긴 것이고. 자막 없이 봐도 다음 회가 몹시 기다려지는 중남미 드라마 를 닮은 우리의 이 변종 장르가 과연 드라마의 진화인지 퇴화인지 헷갈려하면서 말이다.

아마도 ‘막드’에 우호적인 처지에서는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가 적어도 뉴스보다는 자극적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가끔 뉴스의 어떤 기사보다 ‘막드’가 정상적이며 얌전할 때가 있다. 심지어 좀더 논리적이고 정직하며 윤리적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막드’는 과정도 결론도 비상식적이라는 비난을 꿋꿋이 감내한다. ‘막 나가지만 막장은 아니다’라는 변명은 말하는 입이나 듣는 귀나 민망할 뿐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정말 우리의 현실은 ‘막드’를 닮았거나 또는 능가하는 것일까. 그래서 우리는 다음 회의 내용을 알 수 없는 비이성적인 드라마에 내일을 알 수 없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 사는 불안 심리를 교묘히 감추는 것인가. 그 안에서는 남의 일인 양 실컷 욕하며 불쾌감을 배출할 수 있으니까?

뉴스가 더 막 나가는 세상이라지만

‘막장’은 그야말로 광부들이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광산의 끝이다. 누군가는 들어가야 하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막장은 그 위험을 잘 극복해내야만 빈손이 아닌 손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자칫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가 근래 보며 낄낄댔던 그 ‘막드’들. 세상에 나온 이유를 대충은 알겠으니 더는 오버하지 말았으면 한다. 뒤이어 하는 자사의 과 의 체면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이지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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