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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토

등록 2009-09-29 15:20 수정 2020-05-03 04:25
게토.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게토.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제보를 받고 한 아파트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내비게이션의 친절한 안내로 아파트 단지를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는데, 그 뒤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단정하게 동 숫자가 매겨진 아파트들 사이에서 내가 가야 할 동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어찌어찌 문제의 동을 찾긴 했는데, 그때껏 내가 걸어온 길에서는 그 동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없었다. 촘촘하게 심어진 아카시아 나무들을 지나 꽤 긴 걸음을 돌아들고서야 겨우 제보자를 만날 수 있었던 나는 무슨 아파트를 이런 식으로 지었냐고 볼멘소리를 토해냈다. 그때 제보자 아주머니는 씁쓸하고 짤막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여기는 임대잖아요. 출입하는 데가 달라요.”

단지 안의 외딴섬 임대아파트

대한민국에서 험악하기로 말하자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이고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기로는 둘째 이하는 절대로 아닌 프로그램의 연출자로서, 눈과 귀에 담기 싫은 풍경과 소리들을 숱하게 접해봤지만 그날 마주했던 아카시아 담장은 좀체 떨어뜨리기 힘든 악성 종양 같은 기억으로 남았다. 같은 아파트의 명찰을 달고 있으면서도 출입구가 다르고 다른 동과의 교류마저도 어려운 외딴 동. 돌아나오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이게 뭐야 게토도 아니고.”

학원폭력 문제를 취재한 적이 있었다. 그 동네는 해당 지역의 ‘강남’이라 불리는 교육열 높은 곳이었는데, 쌀에 뉘처럼(?) 임대 단지가 있었고 학원폭력의 피해자는 그곳에 살고 있었다. 문제의 중학교를 방문했을 때 교장 선생님이 학원폭력을 취재 온 PD에게 최우선으로 설명한 것은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 수와 각종 경시대회에서 드러낸 발군의 실력에 대해서였다. 자신이 대표하는 학교에 대한 애착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학원폭력의 피해 학생이 전학을 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원교 복적을 시도할 즈음, 교장 선생님이 피해 학생에게 했다는 말에 그 애착의 향기는 깡그리 사라지고 말았다.

“다른 데 가라고. 너 맡을 선생님이 없다고. 우리 학교 애들 기백만원 과외 기본으로 받는 애들인데, 너 때문에 분위기 망가지고 피해 보면 그건 누가 책임질 거냐고.”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군자의 즐거움이라던데, 한 달에 기백만원 과외받는 가문에서 자라 외국어고·과학고에 너끈히 입학할 실력을 갖춘 학생들을 길러내는 성취감을 훼손할 소지가 있는 아이는 다른 곳으로 가주는 것이 마땅하다 보신 것일까. 그 “다른 곳”은 어디일까. 그곳을 ‘게토’라 부른다면 과한 일일까. 교육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낙인을 가슴에 찍은 그 아이가 다비드의 노란 별을 가슴에 달았던 유대인보다는 그래도 낫다고 자위할 수 있을까.

최근 국무총리로 내정된 분이 “경쟁을 촉진하되 경쟁에서 탈락한 이들을 배려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그 임명권자와 통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교육열 높은 부모들의 선망의 대상이며 10년 내에 대한민국의 주요 인맥으로 부상할 거라는 소문이 자자한 어느 외고에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단 한 명도 없다고 했다. 또 다른 한 외국어고는 학부모의 4분의 1이 ‘의료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떨떠름하기 그지없지만 이를 ‘인재들의 경쟁을 촉진’해 일궈낸 자연스런 결과라고 치부해보자. 그렇다면 ‘경쟁에서 탈락한’ 아이들, 날이 갈수록 층층 지어지고 그 층층마다 밀려날 수밖에 없는 이들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며 무슨 배려를 하고 있는가.

밀려난 아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반 평균 깎아먹으니, 분위기를 말아먹으니, 제대로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고 그렇다고 학원 다닐 형편도 안 되니 다른 곳으로 가줬으면 하는 눈치를 받는 아이들이, 또 장성한 그들이 머물 곳은 어디일까. 그것은 게토일 뿐이다. 크고 작은 게토들이 대한민국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아둔하고 눈치 없는 필자의 망상에 불과할까. 진실로 그러했으면 좋겠다.

김형민 S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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