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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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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램 예찬

등록 2009-07-16 15:18 수정 2020-05-03 04:25

학교 도서관에 가는 길에 트램(tram)을 탄다. 지상으로 다니는 5량짜리 짧은 전철인데, 우리말로는 뭐라고 옮겨야 하나. 사전에는 ‘시가 전차’라 나와 있고, 관공서에서는 ‘경전철’이라 부르는 것 같다. 지하철과 또렷이 구분하자면 ‘지상 전철’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여간 난 트램을 좋아한다. 저 멀리서 트램의 흰색 몸체가 미끄러져 나타나면, 탑승권을 깊숙이 넣고 ‘은하철도 999’를 기다리는 철이처럼 가슴이 설렌다. 몇 년째 타는데도 그렇다. 지하철이나 시내버스에는 이런 느낌이 없어 좀 미안하다. 어딜 갈 때 이왕이면 트램을 탈 수 있는 동선을 선택한다. 이 도시에 친구들이 놀러오면 꼭 트램을 태워준다. 어딜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타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프랑스혁명의 평등은 트램까지 와 있다

트램 예찬.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트램 예찬.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한 가장 이상적인 교통수단은 트램이다. 자전거가 더 생태적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짐이 많거나 유모차를 끌거나 장애인인 경우를 생각해보면 역시 트램이 최고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애벌레나 배추벌레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게 분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둥근 바퀴가 굴러서 오는 게 분명할 텐데, 왠지 엄청나게 많은 다리가 열심히 움직여서 오는 것만 같다. 문이 열리고 배추벌레 속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커다란 창문으로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고 나무들 사이로 몸이 미끄러져나간다. 기계가 벌레로 변하고, 내가 그 벌레 안에 앉아 있고, 바깥 풍경이 내 안의 심상과 구분되지 않는 환상에 몇 분간 사로잡힌다.

트램의 매혹은 신체적인 차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대도시에서 지하철을 타보면 공간에도 위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서양에서 피부색은 사회적 계층과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 유감이지만 사실이다. 그런데 자가용→버스→지하철→교외 국철로 내려갈수록 사람들의 피부도 평균적으로 어두워진다. 그러니까 계층적 위계는 추상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그대로 공간화돼 나타난다. 사람들의 피부색이 비슷한 한국에서는 이 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속사정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트램은 왠지 이 위계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다. 8분마다 오는 트램을 위해 비워놓은 선로 옆으로 자가용들이 꽉 막혀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터다. 임산부도, 유모차의 아이도, 사장도, 노동자도, 장애인도, 유학생도, 불법 체류자도, 승차권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물론 그러다 걸리면 벌금을 물지만) 배추벌레 안에 다 함께 앉아 있다. 단 몇 분이지만, 이걸 경험해보는 건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강렬한 이념은 신체적인 차원에서부터 찾아오는 것이니까. 만약 프랑스혁명의 3대 이념 중 하나인 평등이 2009년에 어디까지 와 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손을 들어 트램을 가리키겠다.

왜 트램이 고가로 올라가야 하나

한국에도 몇몇 도시에 경전철이 놓인다는 소식이 기억나 인터넷으로 조감도를 몇 장 살펴보았다. 글쎄, 사진처럼 고가도로를 세워 그 위로 전철을 놓는 경우라면 적잖이 실망스럽다. 고가도로의 흉물스러움은 차치하고라도, 그것은 지하철을 땅 위로 끌어올린 것일지는 모르지만, 몇백 개의 계단 끝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사소한 트집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질문해보자. 왜 대중교통은 자가용보다 항상 불편해야 하는가? 자가용을 타는 그 높이에서 전철을 타고, 자가용에서 내리는 그 높이에서 전철에서 내릴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는 안 되는가? 전철이 지하나 고공으로 숨어다니지 않고 지면 위로 도심을 관통할 때, 이동에 풍경과 평등이 찾아온다.

22조원을 굳이 땅을 파는 데 쓰겠다면, 이런 일에 사용하는 게 두고두고 낫지 않을까. ‘신미래’(드라마 등장인물) 시장이라면 진지하게 들어줄 텐데, 어디로 연락해야 하지?

이찬웅 프랑스 리옹고등사범학교 철학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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