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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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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자유, 선택형인 거야?

등록 2009-07-09 17:12 수정 2020-05-03 04:25

영화를 보려고 했어. 놓치지 말고 보려고 찜해둔 영화도 있었거든. 이럴 때 여러 영화를 한꺼번에 상영하는 영화관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 그런데 집 근처 상영관의 상영시간표를 보고 내가 얼마나 안이하게 살아왔는가를 깨달았지. 10개의 상영관을 가진 극장은 자유자재 변신 로봇들이 완전히 점거를 마친 상태더라고.

취향을 바꿔, 이 바보야!

시장의 자유, 선택형인 거야?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시장의 자유, 선택형인 거야?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내가 특별히 별난 영화를 보려고 했던 것은 아니야. 감상 후보작으로 고려하고 있었던 것은 이주노동자와 청소년 문제를 다룬 것으로 주목받은 와 학교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을 공포영화라는 틀로 접근한 였어. 가물에 콩 나듯 드문드문 상영하고 있더라고. 근무가 끝나고 이 영화를 보려면 아주 늦은 시간까지 기다려야 해. 기다려서 봤냐고? 이것 봐! 나는 내일 아침에도 새벽같이 일하러 가야 한다고. 하나, 이런 투덜거림도 호사에 겨운 것이었어. 1순위로 보고 싶었던 영화 은 이미 상영시간표에서 사라졌더라고.

당황한 나는 상당 시간을 인터넷 검색에 투자했지. 그리고 드디어 심오한 깨우침을 얻었지. 원하는 영화를 골라볼 수 있는 도를 깨우친 거야. 비웃지 마, 이 친구야. 이건 시장경제의 가장 중요한 장점을 살리는 방안이라고. 시장의 좋은 점이 뭔가. 선택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것 아니겠어? 수요만 있다면 시장은 언제나 그것을 충족시켜준다고 배웠거든. 그게 바로 단속을 뚫고 산꼭대기에서 마늘종을 고추장에 찍어먹으며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기적’의 비밀 아니겠어?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영화를 골라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는 것은 드디어 이 시장이 제공하는 선택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게 됐다는 얘기라고.

첫째, “내가 필요할 땐 나를 불러줘/ 언제든지 달려갈게/ 낮에도 좋아 밤에도 좋아/ 언제든지 달려갈게.” 내가 어떤 시간을 원하는지 묻지 말고 영화가 내게 언제 시간을 내줄 수 있는가를 물어라. 그리고 그 시간에 맞추어라. 그 시간이 밤 11시가 되었건 아침 9시가 되었건. 둘째,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르면/ 한참을 생각해보겠지만 / 당신이 나를 불러준다면 / 무조건 달려갈 거야.” 원하는 영화가 개봉됐다면 그 주말이 가기 전에 즉시 보라. 언제 상영관에서 사라질지 모르니까. 셋째,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당신이 부르면 달려갈 거야/ 무조건 달려갈 거야.” 계속 찾아헤매다 보면 ‘특수한’ 취향을 가진 소수 관객을 위해 ‘특수한’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그 상영관은 내가 사는 곳에서 멀리 있으니 영화관까지 한두 시간쯤 걸릴 각오를 해야 한다. 이 깨우침이 그대에게 너무 복잡하다면 간단히 말해주지. 즉, 영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특급 사랑’을 가지면 되는 거야.

깨달음을 얻은 이가 그 다음에 할 일이 무엇이겠나? 아직 깨우침을 얻지 못한 이들에게 도를 설파하는 것이 깨달은 자의 도리라네. 뭇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에 이르는 길’을 설파하던 중, 한 현명한 이가 단 한마디로 일침을 놓더군. “취향을 바꿔, 이 바보야!” 시장이 너에게 변신로봇 영화를 주면 그냥 변신로봇 영화를 사랑하면 되는 거야. 대부분의 상영관에서 30분 간격으로 변신로봇 영화를 보여주고 있으니까, 넌 그냥 어느 시간에 볼까, 그것만 선택하면 만사형통이야. 변신로봇 영화도 나쁘지 않아. 단돈 8천원에 세상 시름을 잊는 2시간을 네게 줘.

고교선택제도 이런 거 아닐까

젠장. 나는 예술영화를 원한 것도 아니었어. 그냥 변신로봇 말고 다른 것을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지금까지 내가 선택한 것을 얻는 일이 늘 조금씩 어려웠던 이유를 이제야 알았지. 나는 서술형 문제를 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 내 앞에 놓인 문제는 ①②③④⑤ 다섯 개 답지 중에 하나를 고르는 선택형이었던 거야. 시장이 내게 ‘네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어’라고 말할 때 너무 흥분해서 그 다음에 이어지는 속삭임을 놓친 거야. “단, 내가 주는 것을 네가 원한다는 조건하에서”라는 말을. 혹시 말이야, 2010년 입학생부터 교육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고교선택제를 실시한다던데 그 ‘선택’도 이런 것 아닐까?

박현희 서울 구일고 사회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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