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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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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는 정치다

등록 2009-06-17 10:44 수정 2020-05-03 04:25

1.
사람은 남들과 정보를 나누고 의견과 주장을 주고받으려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매스미디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동물적 욕구만 채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보다 고차원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문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2.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본능을 바탕으로 발현되는 현상의 하나가 소비자운동이다.
미국에서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은 월마트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열악한 노동조건을 통해 이윤을 남기는 기업이란 인식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다른 대형마트보다 가격이 저렴한 편이지만 돈 몇 푼에 양심을 팔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제3세계 어린이들의 저임금 노동으로 만든 축구공을 더 이상 소비하지 말자는 캠페인은 이미 월드컵 대회에서 이슈화될 정도로 보편화했다. 군수물자를 만드는 회사 제품은 비록 일상 소비재일지라도 사지 말자는 운동도 벌어진다. 이런 소비자운동이 세계를 호령하던 거대기업들에 인간적 가치를 일깨워준 건 당연하면서도 고마운 일이다.
이번호에 소개된 콩고 내전(90쪽)을 보자. 아프리카의 빈국에서 유혈 낭자한 전쟁을 이어가는 반군은 주석, 탈탄, 텅스텐 같은 광물 자원을 팔아 무기를 조달한다. 이곳에서 생산된 광물이 들어간 휴대전화, MP3플레이어, 비디오게임기, 노트북컴퓨터 따위를 쓰지 않는 것은 콩고 사람들의 피를 닦아주는 일이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국가인 미국에서 이런 광물의 원산지를 식별해 선택적 소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시민단체가 아닌 의회에서 추진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시장의 자유 원칙에 위배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경제가 그저 먹고 싸는 일에만 관련된 게 아니라면, 소비는 분명 정치 행위다.
지금 여기에서도 그렇다. 수구·족벌 언론이 득세하는 언론계 지형에서, 태생적으로 그들과 가까울 수밖에 없는 기업들이 광고를 그들에게만 몰아준다면, 진보·개혁 성향 언론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고 여론의 다양성은 침해받게 된다. 이때 기업의 공공적 책임에 걸맞게 다양한 성향의 언론에 골고루 광고를 집행하라는 요구를 내건 시민들이 등장했다. 폭력적 방법으로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선택적 소비를 통해 그런 가치를 조금이나마 실현시켜보려는 것뿐이다. 해당 제품을 쓰지 않음으로 인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말이다.
이를 불법이라고, 시장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난하는 이들의 머릿속이 궁금하다. 이른바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에 유죄를 선고한 판결문에서조차 “언론사의 편집 정책을 변경시키고자” “인터넷 사이트에 광고주 리스트를 게재”하는 등 설득 활동을 벌이는 것은 “합법”이라고 적시한 마당이다.

3.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장삼이사들의 추모 광고가 잇따라도 기업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이 국민장을 애도하는 광고를 일절 내지 않았다. 한 대기업 홍보담당 임원에게 이유를 묻자 “애초 추모 광고를 생각하지 않았다”면서도 “갈수록 정부 정책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되는 상황에서 정부 쪽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기업의 광고 집행에 암암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그저 기업이 낸 광고를 보고 소비로써만 반응하란다. 이것이 시장경제의 원리인가. 먹고 싸는 것만이 경제라는 강변에, 검찰은 불매운동 수사 검토로 화답했다. 참 지저분한 자본주의다.

박용현 편집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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