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디애나주의 소도시 사우스벤드에 노트러데임이라는 대학이 있다.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선 나름대로 인기 있는 사립대다. 미식축구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학교 이름이 낯익을 수도 있다. 프랑스어로 발음하면 ‘노트르담’(Notre Dame), 바로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이름이다. 미국 내 첫손 꼽히는 가톨릭 전통의 대학이다.
5년 전 수학했던 그곳이 새삼 떠오르는 이유는 지난 며칠 동안 머릿속에 자리잡은 두 가지 주제어와 겹치는 공간이어서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그리고 로스쿨. 석양 무렵이면 눈부시게 빛나는 본관 건물 금빛 돔 위에서 성모 마리아의 입상이 굽어보는 그 교정에서 가톨릭 취향에 온통 둘러싸여 1년 동안 로스쿨 연수를 했다.
대학 쪽에서 종교 또는 선호하는 종교를 묻기에, 가톨릭이라고 대답했다. 현재 신앙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 현대사에서 가톨릭이 보여준 용기와 진실성에 감복한 바 있기에 그건 진심이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학생들을 연행하려면 나를 밟고 가라”고 한 고 김수환 추기경한테 빚지고 있는 몸이기도 하다. 민주와 정의를 위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뚝심 있는 행보 또한 다른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보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노트러데임에서 접한 가톨릭은 좀 낯설었다. 미국 대학에선 흔한 동성애자 서클이 그 학교에는 없었다. 유명한 연극 의 학내 공연도 불허됐다. 이런 일들로 학생들은 데모를 했다. 정확히 말하면 가톨릭 신자인 학생들과 나머지 학생들이 싸웠다. 어느 날 아침 낙태를 반대하는 상징으로 십자가 수백 개가 교정에 꽂혀 있었고, 그날 밤 어떤 학생들은 몰래 십자가를 뽑아버렸다. 로스쿨 수업에서 낙태와 포르노그래피 허용 문제를 다룰 때면 찬반 토론이 과열됐고, 정년을 앞둔 노교수는 반대쪽 학생들을 노골적으로 두둔했다. 그러면서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선출되던 날에는 수업 중에 온 교실에 환호성이 오르고, 엄숙한 로스쿨 교수들도 옆 교실 문을 불쑥 밀고 들어와 머쓱한 표정으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가톨릭은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치고 대학 당국과 교수들은 이를 수호하는 완고한 기사인 듯했다.
그러나 또 다른 면도 있었다. 내전과 기아로 고통받는 제3세계 나라들의 문제를 알리는 심포지엄과 세미나가 하루가 멀다 하고 열렸다.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사형을 집행하고 있는 미국에서 지극히 소수의 목소리인 사형제 폐지 열기가 드높았다. 로스쿨엔 한 학기 내내 사형제 문제만 다루는 과목도 있었다. 학과마다 주변 저소득층 지역을 상대로 자원봉사와 실태조사가 결합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로스쿨에선 방학 때마다 학생들에게 미국 각지에서 낮은 보수로 공익 활동을 벌이는 변호사들을 만나고 오도록 여비를 지원하고 학점도 부여했다. 1년 뒤 학교를 떠날 때 동성애자 서클이 학교 당국의 승인을 받았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때 경험을 모아보면, 가톨릭은 생명과 절제의 종교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이 대학 로스쿨에도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에 이끌려 들어온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나 교육 과정에서 그들의 리걸 마인드에 생명의 가치와 절제의 미덕을 함께 새겨넣으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로스쿨에서 최소한 욕망과 선의의 공존마저 배우지 않는다면 이후 법률가로서 하는 짓이란 어떠할 것인가.
검찰과 법원, 그리고 새로 출발하는 로스쿨들이 보이는 행태에 실망이 겹치는 요즘, 김 추기경의 선종마저 닥치니 흐린 기억에 얕은 생각이 길어졌다. 성모의 은총이 고인과 우리에게 함께하기를.
박용현 편집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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