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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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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면 죽는다

등록 2009-02-19 10:27 수정 2020-05-03 04:25

사람에게는 이성과 논리라는 장치가 보편적으로 내장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사람들끼리의 충돌이 벌어졌을 때에 그 장치에 비추어 보아 그 충돌을 해소하는 행태가 동물학적으로 관찰되는 바이다. 물론 이성이고 뭐고 돌도끼나 핵폭탄 등의 해결 방식이 애용돼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처럼 복잡한 군집 생활을 영위하는 생물이 사사건건 돌도끼와 핵폭탄에 의존했다가는 종의 존속 자체가 불투명해진다. 그래서 자잘한 문제들은 최대한 분쟁 당사자들이 보편적 이성과 논리에 따라 충돌 없이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도록 돼 있는 것이 인간 문명의 원리다.

이제 고어가 된 말 ‘염치를 안다’

밀리면 죽는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밀리면 죽는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이는 신자유주의의 대한민국 아래에서는 갈수록 해당 없는 이야기가 돼가고 있다. 아직 일상의 분쟁과 갈등의 폭력적 해결이 만연화된 지경은 아니지만, 바로 전 단계로 들어간 것 같다. “밀리면 죽는다.” 법을 어겼으니 테러리스트요, 따라서 이들은 진압 중에 타 죽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요컨대 “법을 어기면 타 죽어도 된다”. 오히려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자들이 체제 전복 세력이니, 이들이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성폭행 미수 사건이 조직의 수뇌부 차원에서 발생했음에도 두 달 넘게 뭉기적거리다가 시끄러워지자 이명박 정권 앞에서 적전 분열 행위라며 문제를 제기하는 자들은 ‘정파적’ 불순분자들이라고 우겨댄다.

충돌이 벌어질 경우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이치에 닿는지를 먼저 돌아보고, 스스로 목소리 높이와 행동 수위를 결정하는 유사 시대 인류의 오랜 관행- 이를 고어(혹은 사어·死語)로 ‘염치를 안다’고 한다- 은 이제 찌질이 팔푼이나 하는 짓이 돼버렸다. 어떤 경우에든 나는 내게 유리한 논리와 주장은 있는 대로 끌어모을 것이며, 내게 불리한 논리와 주장은 무조건 ‘불순한 동기’를 가진 적들의 오도된 주장으로 몰아붙여야 한다. 그리고 이치의 타당성이 아니라 목소리의 크기와 눈 및 목울대의 핏대 길이가 중요하다. 어떤 경우이든 잘못을 인정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마라. 그 순간 사방에서 달려든 하이에나떼들로 인해 온몸이 살점 하나 남지 않고 공중분해될 것이니까. 이렇게 되면 논리적인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사회 전체가 공들여 갖춰놓은 모든 제도들, 즉 사법기관이나 언론매체 등은 모두 하나의 농담이 돼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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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이 바로 희비극(tragicomedy)이 발생할 수 있는 최적의 사회적 조건이다. 세상 곳곳에서는 주먹과 ‘갑빠’를 내세워 “밀리면 죽는다”고 한없이 폭주하는 일이 벌어지고, 힘없고 목소리 약한 이들은 여기에 한없이 밀린다. 그러면 또 직업상 이에 대해 논평하지 않을 수 없는 자들이 희한한 논리를 개발해 늘어놓는다. 20년 전에는 독재에 항거하던 대학생이 물고문으로 죽임을 당하는 비극이 있었고, 이를 둘러댄답시고 경찰인지 검찰인지가 “탁 치니 억 하고 죽더라”는 절정의 희극을 연출했다. 지난 몇 년간에도 이러한 희비극적 상황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연출돼왔으며, 남은 정권 4년간은 각종 희비극이 가일층 양산될 조짐이다.

희비극 다음은 부조리극

장르는 순환한다. 이 희비극의 시대도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비극도 희극도 현실과 당위의 괴리 앞에 울고 웃을 줄 아는 사람들이 남아 있을 때에만 흥행이 가능한 장르다. 지금 사람들은 급속히 지쳐가고 있고, 최소한의 이성과 양심의 허울마저 부담스러워할 만큼 시니컬해지고 있다. 마침내 모든 사람이 겨울날 아침 출근 길바닥에 얼어붙은 가래침만큼 차갑고 무감각한 덩어리가 돼버리면 희비극도 사라질 것이다. 그 다음엔 어떤 장르가 나타날까. 부조리극이 아닐까. 햇살이 따가우니 백인은 아랍인을 쏴죽이고, 가르쳐도 못 알아들으니 교사는 학생을 목 졸라 죽이는 세상. 누군가 이 잘잘못을 따지려 들면 썰렁한 ‘왕따’가 되면서 또 하나의 부조리극으로 이어지게 되는.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어쩌면 이미 대한민국은 부조리극의 시대로 들어선 지 오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희비극의 시대 어쩌고 하는 이 글도 나 같은 몇몇 찌질한 지진아들의 푸념인지도 모르겠다.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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