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선생님, 왜 우리 이름은 안 나갔어요?”
제 딴엔 기사를 쓰는 것이 녀석들한테 상처가 될까봐 죄스런 마음뿐이었는데, 질문을 받고 나니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인터뷰해서 신났었는데, 기사 찾아봐도 내 이름이 없잖아요”라며 따져묻는 아이들한테 기사에 가명을 쓴 이유를 설명하긴 쉽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이 상처받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던 제 선입견이 그들에겐 더 상처가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서요.
녀석들은 한 달여 전 제가 기사를 쓴 경기 성남의 ‘함께 여는 청소년 학교’ 아이들입니다. 밀린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는 것 말곤 딱히 하는 일이 없는 토요일, 경기 양평의 한 수목원으로 아이들 소풍을 따라갔어요. 딱 한 번 만난 것뿐인데도 아이들은 아무런 벽 없이 저를 맞았습니다. 쑥스러웠는지 낯설었는지 취재에 잘 응하지 않던 남학생들도 이날은 “선생님, 캐러멜 사과맛이랑 포도맛이랑 바꿔 먹어요”라며 먼저 말을 걸어왔고요. 아이들이 눈에 밟혀 따라간 소풍이지만, 그래도 ‘짝사랑’이 아닐까 걱정했던 마음은 금세 사라졌습니다.
녀석들이 보고 싶었던 건 고마워서였어요. 부모와 세상이 얹어준 삶의 고단함도 열세 살의 천진함과 순수함을 가리지 못하는 걸 보면서, 제가 왜 기자가 되고 싶었는지를 한동안 잊고 있었단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높으신 분들’과 비싼 밥 먹는 데 익숙해져서, 남들의 그 고단함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싶었던 마음을 잊어버렸던 겁니다. 아이들은 제게 ‘초심 다지기’라는 큰 선물을 준 거죠.
이날도 아이들은 ‘퍼주기’만 하더군요. 함께 허브가 들어간 쿠키를 만들고, 애플민트와 망고가 자라는 식물원을 구경하고, 마른 낙엽을 주워 작은 액자를 만들었습니다. 남한강을 배경으로 한 기념사진 찍기도 빼놓을 수 없지요. “시아준수가 멋지다” “쌍둥이 형이 더 낫더라”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고, 바삭바삭 구워져 나온 쿠키를 서로 먹겠다고 장난을 치면서 아이들과 또 한 발짝 가까워진 기분이었어요. 머리를 짓누르던 마감 스트레스는 당연히 깨끗이 날아갔고요.
소풍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오일화 선생님께서 “OO이가 조 기자 때문에 꿈을 기자로 바꿨다”고 귀띔해주셨습니다. 아이들이 준 선물, 잊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조혜정 기자 blog.hani.co.kr/ze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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