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청 앞을 지날 때마다 보게 되는 거대한 경고판이 있습니다. “구청에 와서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은 민주시민 대우를 받지 못하오니 제발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볼 때마다 너무 어이가 없고 기분이 나빠요. ‘민원인=생떼쟁이’로 폄훼하는 용산구청의 태도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해요.(서울 강서구민 최양)
→ 용산구에는 재개발 지역이 많아요. 용산역 부근, 삼각지 부근 등 100만 평 이상이 이미 재개발 대상입니다. 게다가 용산 미군기지가 이전하면 그 자리도 개발되겠죠. 대형 건설사와 그 하청업체, 그리고 개발정책으로 치적을 남기려는 관료들에게 용산은 서울의 ‘마지막 노른자위’죠.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 용산은 삶의 터전입니다. 오랫동안 정비되지 않은 곳이니만큼 주로 서민들이 살고 있죠. 그들에겐 일련의 대규모 개발사업이 느닷없는 ‘침략’이나 다름없어요.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려면 돈이 필요한데, 보상비는 그들의 기대에 항상 못 미치죠. 결국 거리로 나서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게 돼요. 이걸 ‘집회·시위’라고 부르죠. 집회·시위는 약자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언덕이랍니다. 그래서 헌법에서도 집회·시위의 자유를 기본권의 하나로 보장하는 것이죠.
용산 재개발 지역의 서민들에겐 그 집회·시위의 장소가 구청 앞이었습니다. 2003년 7월 이후 5년째 구청 주변에는 여러 지역의 철거 대상 지역 주민들이 농성 중입니다. 시위대는 구청 앞 인도에 천막을 치고 확성기를 크게 틀어 주장을 알렸어요. 원래 시위라는 말은 ‘위력을 보인다’는 뜻이기도 하죠. 그런데 구청 입장에선 이게 난처했나 봐요. 법령에 따라 일을 처리했고, 최선을 다해 철거민들에게 보상했는데도 ‘그 이상’을 요구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통행을 막고 필요 이상으로 확성기 소리를 높여 구청의 업무를 훼방 놓고 있다는 것이죠.
이 때문에 철거민과 구청 공무원 사이의 감정이 격해졌어요. 임이 보신 경고판은 지난해 여름에 설치됐어요. 원래 펼침막을 내걸었다가 고정 설치물로 바꿨죠. 문구는 용산구청 쪽이 직접 만들었다는군요. 구청 앞 인도에는 화단을 설치해 시위대가 상주하지 못하도록 했지요. 용산구청 쪽은 “원래 취지는 과격 시위를 자제해달라는 것이었는데, 그걸 만들 때 감정이 격해서 ‘생떼’ 같은 표현이 들어간 것 같다”고 설명했어요. 이제 와서는 용산구청도 ‘튀는’ 경고판이 부담스러운 것 같아요. “연말이나 연초에 구정을 홍보하는 알림판과 그림 등으로 교체할 계획”이랍니다.
시위를 막을수록 하소연할 곳이 없는 시위대는 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기 마련이에요. 지자체는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역 주민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고요. 용산구청이 문제를 푸는 더 현명한 방법을 찾기를 함께 기대해보죠.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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