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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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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여, 살아남으라

등록 2008-06-05 00:00 수정 2020-05-03 04:25

▣ 유해정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사람들은 ‘살아남으라’ 했고, 인권영화제는 살아남았다. 올해로 13년째. 누구나 인권을 말하고 영화가 넘쳐나는 시대에 인권영화제의 생존이 뭐 그리 대수겠냐만은, 국가의 사전검열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외치다 감옥으로 간 영화제였기에 녹록지만은 않은 세월이었다. 동네 구멍가게 수준의 인권단체가 국가와 기업의 후원에 배짱을 튕긴 것도 모자라 무료상영을 고수하며 334편, 4만여 시간 동안 영사기를 돌려왔기에 고된 시간도 많았다. 하지만 별남을 넘어 ‘까다롭다’는 눈총 속에서도 고집을 부렸던 건 영화제가 ‘한가한 오락’이 아닌 ‘인권 현장’이 되길 원했기 때문이다. 쾌적한 관람석을, 질 좋은 영상을 제공하진 못해도 스크린 속 현실을 보며 인권을 느끼고 박탈되고 유린된 인권에 함께 신음하고 고민하는 공론장이 되길 원했기 때문이다.

인권영화제가 범법을 자처한 이유

올해도 똥고집은 계속돼 5월30일부터 열리는 인권영화제는 극장이 아닌 거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진행된다. 명실상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위반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인데, 범법을 자처한 이유는 간단하다. 현행 영비법에 따르면 영상물 등급심의를 받지 않거나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심의면제추천 등을 받지 않는 영화는 어떤 경우에도 상영을 할 수 없지만, 인권영화제는 이 둘 모두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고 거부한 것이다.

그동안 비영리 영화제 등의 경우 영진위의 심의면제추천을 받아 영화를 상영해온 것이 관행이었다. 영진위 쪽은 심의면제추천이 사전심의와는 차원이 다르며 단지 서류상의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인권영화제는 심의면제추천 자체가 사전심의라고 주장한다. 실제 몇몇 영화들이 영화 내용상의 이유로 심의면제추천을 받지 못했고, 현재 공방 중인 작품도 있다. ‘형식적 서류’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누가 ‘칼’을 쓰느냐에 따라 칼의 용도가 바뀌듯 영진위 운영 방향에 따라 심의면제추천 제도가 사전심의는 물론 영화제를 관리·통제하는 기제로 작동할 여지도 농후하다.

‘청소년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운 등급심의도 따져볼 노릇이다. 유해한 표현물들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고픈 마음은 이해하지만, 청소년을 항상 미성숙하고 보호가 필요한 대상으로 위치 짓는 걸 지켜보는 마음은 불편하기만 하다. 이미 청소년들은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는데, 여전히 국가와 사회, 어른들은 표현물에 대해 청소년들이 자기 의견을 밝히고 결정할 자리를 동등하게 내주지 않는다. ‘유해하다’는 등급심의의 기준도 모호하다. 무엇이 선정적이고 폭력적이고 음란한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유해함의 한 축을 차지하는 반국가적·반사회적·비윤리적인 것의 판단 기준 역시 불명확하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한 교사가 중징계를 받고 미국산 쇠고기 반대를 외치며 거리에 나선 시민들에게 무자비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회, 그리고 동성 간의 결혼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에서 과연 무엇이 국가적이고 사회적이며 윤리적인 것인가? 하여 표현의 자유는 설 자리가 없고, 유해함의 여부는 온전히 몇몇 판정자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인권영화제는 외친다. 등급을 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영비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나도 따라 외친다. 결국 지금의 심의라는 것이 검열과 어떻게 다르냐고. 결국 사상과 표현을 국가가, 주류 이데올로기가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냐고.

유해함을 누가 판단하는가

하지만 애석하게도, 영비법 개정은 외쳐도 ‘심의를 완전히 없애자’고 말할 배짱이 아직 내겐 없다. 심의가 철폐됐을 때 야기될 자본의 횡포가 섬뜩하기 때문이다. 이익만 된다면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든 상관없이 더 선정적이고, 더 음란하고, 더 폭력적인 것, 더 국가적이며, 더 민족적인 것을 만들어낼 자본을 제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여 고작 말할 수 있는 건, ‘심의’의 새로운 대안을 함께 찾아보자는 제안뿐이다. 삶에서 인권적 감수성을 키우고 모아 표현의 자유를 신장시키는 다양한 상상과 실험을 시도해보자는 것뿐이다. 덧붙여 사정이 허락한다면 인권영화제를 기억해달라는 청탁도 넣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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